어떤 상황에서도 부드러운 엄마의 말하기 3가지
"엄마, 보들보들하게 좀 말해."
딸이 4살 때였다. 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고 '강력한 요구'보다는 '작은 용기'가 묻어 있었다.
그때 화내고 있지 않았는데 딸이 그렇게 말해서 당황스러웠고, 표현이 앙증맞아서 웃음이 났다.
"지안아, 엄마가 어떻게 말하고 있어?"
라며 이유를 물었다. 딸은 정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지 눈을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음... 음... 안 보들보들해."
"엄마, 화 안 냈는데? 엄마 말이 안 보들보들했어?"
"응, 엄마, 화 안 났어? 알겠어."
라고 대답하더니 품으로 쏙 안겼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는 말투가 2가지로 나뉜다. 보들보들한 말투와 보들보들하지 않은 말투.
딸에게서 시작된 '보들보들하게'는 나에게 미션이 되었다. 내 말투는 평소 부드럽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나의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고, 딱딱한 말투를 보들보들하게 말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내가 노력하는 방법은 다음 3가지이다.
1. 천천히 저음으로 부드럽게 말한다.
"혹시 기분 나쁜 일 있으세요?"
예전에 회사에서 거래처 담당자와 전화 통화가 끝난 뒤 옆에 있던 직원이 나한테 물었다.
"아뇨. 왜요?"
"전화로 너무 딱딱하게 사무적으로 대해서요."
"아, 진짜요?"
좀 놀랐다. 중요한 업무 전화라서 상대방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귀 기울이느라 미처 내 목소리를 매만지지 못했을 것이다. 직원이 말을 이었다.
"일하다 가끔 통화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유독 차갑고 딱딱하게 들려요. 상대방은 목소리만 들으니까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전화 통화할 때 천천히, 부드럽게 말하려고 신경 썼던 기억이 있다.
내 말투의 치명적인 약점은 빠른 것이다. 마음이 급하거나 긴장하거나 감정이 오르면 더 빨라진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이들은 화가 안 났는데 화났냐고 나한테 간혹 묻곤 한다.
평소보다 엄마의 목소리가 크면 아이에게는 엄마가 화난 것처럼 들린다. 평소보다 말투가 빠르고 목소리가 고음이면 엄마가 신경질난 것처럼 아이에게 들린다. 말투에는 감정이 담기기 마련인데, 특히 아이들은 엄마의 말투에 담긴 감정을 더 민감하게 읽는다. 내 아이들처럼 물어보고 확인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엄마의 감정을 그대로 가슴으로 받아 경험으로, 상처로 쌓는 아이들도 있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항상 좋은 감정일 수는 없다. 꼭 육아가 원인이 아니더라고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일 수 있다. 그럴 때 아이에게 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기 위해서는 천천히, 저음으로 말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소리치거나 고음을 내서 화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엄마는 지금 화가 났어. 그래서 엄마가 부드럽게 말을 못 하겠어. 엄마 말을 좀 들어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내가 해 보니 항상 잘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이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연습과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2. 부드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띤다.
2013년 한 방송에서 <웃는 엄마 VS 무표정 엄마>라는 주제로 아기의 반응을 실험한 적이 있다. 아기와 엄마 사이에는 '시각 벼랑'이 있다. 시각 벼랑은 투명한 유리판 아래로 낭떠러지처럼 연출되어 있다. 시각 벼랑 건너편에 있는 엄마가 무표정하면 아기들은 시각 벼랑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되돌아갔다. 반면, 엄마가 웃고 있으면 시각 벼랑을 지나 방긋 웃으며 엄마에게 기어갔다. 이에 대해 배승민 소아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심리학적으로는 '거울 이미지 효과'라고도 하고요. 부모의 부정적인 감정이나 태도가 아이들한테 결국은 대물림 되고 전달될 수 있는 효과입니다."라고 말했다.
엄마가 무표정하면 차가운 말투, 엄마가 이마를 찌푸리고 있으면 짜증 내는 말투처럼 아이에게 전달된다. 비언어 신호 중에서 '미소'를 연구하고 훈련할 때가 있었다. 내가 언제 미소를 띠는지, 미소를 띠면서 대화할 때와 미소를 띠지 않고 대화할 때 상대방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지, 혼자 있을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설거지를 하면서 미소를 띠면 기분이 어떻게 바뀌는지 등 다양한 상황에서 미소를 연구했다. 이때 발견했다. 우리가 의외로 무표정할 때가 많고,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때 표정을 바꾸면 내 기분이 바뀌고, 말투가 바뀌고, 대화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딸은 내가 무표정하게 말하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 눈썹을 찌푸리고 있으면 화났냐고 물어보거나 보들보들하게 말하라고 한다. 그럴 때는 바로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또 한 가지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서 빨리 화를 풀어야 할 때도 미소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다. 아이를 야단치거나 화를 내고 나서 뒤돌아 서서 미소를 띠면 바로 화가 가라앉는다. 곧바로 아이를 마주하면 부드럽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거실 중앙에, 집안 곳곳에 "오늘도 미소 짓자."라고 써 붙여 놓았다. 아이를 볼 때도, 혼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을 때에도, 설거지를 할 때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 기분이 한결 보들보들해진다.
3. 시선을 맞춘다.
<천일의 눈맞춤>라는 책을 쓴 정신분석가 이승욱은 '눈맞춤보다 중요한 육아는 없다'라고 했다. 특히 0에서 3세,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기 전까지, 아이와 엄마의 가장 중요한 대화가 바로 '응시'라고 했다. 어른이든 아이든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과 시선을 맞추면 신뢰감이 형성된다. 아이는 부모의 시선에서 사랑과 관심을 느낀다.
나의 대화법에서 대해 가장 크게 반성을 하게 된 계기가 '눈맞춤'이었다. 눈맞춤에 대한 연구를 할 때 내가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눈을 잘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진짜 감정을 읽지 못하고, 중요한 말을 놓친 후 되묻곤 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TV 프로그램 중에서 지금은 종영된 '아이컨택트'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가까운 사람들과 눈 맞춤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렇지 않았던 한 부부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2020년 세계 부부의 날'에 '올해의 부부' 대상을 받은 현실판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주인공 노태권, 최원숙 부부이다. 그들의 눈맞춤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다소 불편한 대화를 할 때에도 서로에게 따뜻한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엄마는 참 바쁘다. 아이들을 위한 정보를 찾기 위해 늘 손과 눈이 스마트폰에 가 있다. 엄마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지만 정작 아이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눈을 맞추며 교감하기를 원한다. 오은영 박사는 아이에게 좋은 체험을 해주기 위해 하루 종일 함께 다녔는데 집에 와서 "엄마, 놀아줘."라고 하는 것은 아이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아이와의 눈맞춤을 강조했다. 한 육아 전문가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이와 놀 때 마주 앉으라고 했다. 아이와 눈맞춤을 할 수 있고 아이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나의 뒷모습을 가장 길게 보여주는 순간이 설거지를 할 때이다. 딸이 "엄마는 설거지하는 게 그렇게 좋아?"라고 물어볼 정도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딸이 와서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때 눈을 맞추면서 "지안아, 왜?"라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하고 웃으며 가서 놀곤 한다.
책을 읽어 줄 때, 함께 놀 때, 밥 먹을 때, 아이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에 눈맞춤은 보들보들한 사랑의 표현이 된다.
한 남자를 처음 만난 날, 그 남자가 물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사실 남자로 보이지는 않아요."
둘 다 웃었지만 나중에 들으니 남자은 씁쓸했다고 한다. 대화가 잘 통했지만 연하남이라는 것이 계속 걸렸다.만났던 장소에서 나가는데 비가 조금 내렸다. 택시를 타러 가는데 남자가 내 손을 잡고 뛰었다. 인생에는 언제나 반전의 순간이 있다. 그 남자의 손이 너무 보들보들했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 손은 (나와는 다르게) 요리를 많이 해도 여전히 보들보들하다.
얼마 전, 시어머니께 미역줄기 볶음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인데 내가 해도 남편이 해도 맛이 없었다. "어머니, 보들보들하게 해 주세요." 당분간 나의 혼밥에서는 보들보들한 미역줄기 볶음 하나만으로도 풍성한 식탁이 될 것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서 '보들보들하게'는 행운을 부르고, 행복을 선물한다. 오늘도 입가에는 미소를, 건조한 손에는 핸드크림을 듬뿍 바르고 보들보들한 하루를 준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