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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등원 시간, 영치기 영차!

등원 시간을 아이들에게 추억으로 만들기

by 행복별바라기

무엇보다 가슴이 아픈 건 엄마의 그런 행동이 익숙한 듯한 무심한 아이의 표정이었다.

조금 일찍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밤에 일찍 자야 하는데 내 아이들에겐 쉽지 않다. 더 놀고 싶다고 밤마다 아우성이다. 일부러 글밥 많은 책을 골라 오기도 한다. 에너지를 소진하기 위해 놀이터에서 원 없이 뛰어놀게 하기도, 저녁 식사 시간을 1시간이나 앞당겨 보기도 했다. 눈꺼풀이 이미 반은 감겼는데도 잠이 안 온다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잠에 빠져들면서도 말이다. 저녁 식사 후의 계획표를 만들고, 잠자리 준비 시간을 알람으로 알려주고, 10시면 불을 끄는 원칙을 적용해서 겨우 10시 30분 이전에 잠든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참 힘겹다.

몇 개월 전, 책에서 본 몇 줄의 문장은 내 육아의 세계에 일침을 가했다.


‘유치원에 다닐 때, 내가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유치원 버스가 오기 전이었다. 버스가 오기 30분전에 미리 밖으로 나가 엄마와 함께 배트민턴을 쳤다. 배드민턴을 치고 유치원에 간 날의 컨디션은 항상 최고였다’


이임숙 작가의 <4~7세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라는 책에 나온 내용이다. 현재는 성인이 된 딸과 아들이 책의 추천사를 써 주었는데 아들의 추천사 중 일부이다. 책의 앞 부분에서 이 내용을 읽은 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내 아이들의 등원 길이 영화 필름처럼 눈 앞에 펼쳐졌다. 뭔가 크게 잘 못되었고,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두 아이를 깨워서 먹이고 입히고 집에서 나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등원 전쟁'이다. 거실에서 현관문까지 고작 5미터도 안되는데 49.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것처럼 힘을 뺀다. 두 아이가 유치원 등원 버스에 오르고 나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아이들의 등원 모습을 보게 된다. 등원 버스를 놓칠까 봐 서둘러 가는 부모와 아이들도 있지만 등원 버스를 이미 놓친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등짝 스매싱과 함께 톡 쏘는 엄마의 말, "버스 떠났잖아. 빨리 나오자고 했잖아."

차가운 눈빛을 아이의 정수리에 내리꽂고, 아이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되돌아가는 엄마.

등원 버스의 뒤꽁무니를 한 없이 바라보며 한숨을 푹푹 쉬는 엄마.

분주한 아침에 꼼지락 거렸던 아이에게 비난이 쏟아진다. 엄마 입장에서 네버엔딩 헬육아의 한 장면인데 피식 웃음이 나는 이유는, 그 순간에도 기죽지 않려는 천진한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가슴이 아려올 때가 있다.


며칠 전이었다. 4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아파트 지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 끝에 엄청난 짜증과 신경질이 묻어났다.

엄마의 표정에는 불만과 짜증이 가득했고, 딸은 무심한 듯 무표정했다. 그들과 함께 있던 시간은 고작 몇 분, 그 짧은 순간에 내가 느낀 공기는… 무겁고 차갑고 답답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나와 아이들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달달한 아침 기상 의식에도 불구하고, 고성이 동반되어야 무사히 등원 버스를 탑승할 수 있는 날들이 있었다. 그런 날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나에게 화가 나서 하루가 너무 무거웠다.




책에서 ‘등원 길의 추억’을 본 다음 날부터 내 아이들의 즐거운 등원 길을 위해 2가지 원칙을 세웠다.


1. 10분 더 일찍 나간다.

2. 가는 길은 즐겁고 신나야 한다.


일찍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밤에 일찍 자야 하는데 내 아이들에겐 쉽지 않다. 눈꺼풀이 이미 반은 감겼는데도 잠이 안 온다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잠에 빠져들면서도 말이다. 놀이터에서 에너지를 빼고, 저녁 식사 후의 계획표를 만들고, 잠자리 준비 시간을 알람으로 알려주고, 10시면 불을 끄는 원칙을 적용해서 겨우 잠든다. 아이들을 일찍 재우는 것과 아침에 일찍 깨우는 것은 나에게 오랜 미션이다.


'즐거운 등원 길 원칙'을 정한 뒤에는 아이들을 조금 더 재우려고, 아침식사를 조금 더 먹이려고 애쓰지 않았다. 가는 길은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을 적극 반영했다. 엄마와 달리기 경주를 하고 싶다, 이야기를 해 달라, 햇볕을 보면서 가고 싶다, 돌을 줍고 싶다, 킥보드를 타고 싶다와 같은 소소하고 귀여운 요구들이었다. 10분만 더 일찍 나가면 충분히 가능했다.

한 번은 늦어서 뛰어가야 할 때가 있었다. 난감했다. 아이들의 요구 사항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 늦었어. 뛰어야 해."라고 말하고 나서 "영차, 영차."라고 외쳤다. 아이들은 "영치기, 영차."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신나게 뛰었다. 구호 하나로 이리 신날 일인가.

집에서 등원 버스 정류장까지는 3~4분 거리이다. 버스 타기 전까지 단 10분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인데 하루의 에너지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아들이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화이팅!’을 가르쳐 주었다. 아들이 힘찬 손짓과 함께 ‘홧팅!’을 외치면 보는 사람도 힘이 절로 났다. 아이들과 힘이 나는 말, 응원의 말을 주고 받으면 짧은 순간에 밝은 에너지를 만든다. 그 에너지는 엄마와 아이 사이에 신뢰를 쌓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좀 전까지 빨리 서두르라고 소리 친 엄마와 손잡고 '영치기, 영차.'를 외치며 활짝 웃을 수 있는 아이들. 그 맑은 동심의 세계로 나를 초대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최근 새 학기가 시작되어 버스 탑승 시간이 앞당겨졌다. 등원 준비 시간은 더 분주해졌다. 마법 같은 말, '영치기, 영차.'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꽃은 나무나 풀에만

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니라고 그랬다

사람도 꽃그림이 들어 있는

옷을 입으면 사람에게도 꽃이 피는 것이고

예쁜 여자아이

두 볼이 빨개지면

그것도 꽃이 된다고

그랬다


- 나태주 <동심> 중에서


아이들만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두 볼이 빨개지는 나도 꽃이 되어 본다. 엄마와의 등원 시간이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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