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우는 아이의 습관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할 말 3가지
어릴 때 별명이 '울보'였다.
그 별명이 정말 싫었다.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우는 건데 놀리기만 해서 속상했다. 내 기억으론 6살까지... 아니 더 길었을 수도 있다. 엄마는 늘 "꼭 너 같은 애 낳아서 키워 봐라."라고 하셨다.
첫째인 아들은 울음이 많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둘째인 딸은 순하기까지 했다. 신은 나의 육아에 꽃길만 준비해 놓으셨나보다 했다. 둘째가 3살이 되었을 때 상황이 달라졌다. 딸의 눈물샘은 나를 닮았다. 안아 달라고 울고, 오빠가 안 놀아 준다고 울고, 밥 안 먹고 간식 먹겠다고 울고... 눈치 빠른 딸이 엄마의 아킬레스를 모를 리가 없었다. 나의 상처 때문에 그 눈물에 마구 휘둘렸다.
울면 무조건 안아 주었다. 어린 나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그리고 안아 주면 점차 나아지리라 몹쓸 기대를 했다.
몹쓸 기대는 화를 불렀다. 딸이 4살이 되고 나서 강도가 더 심해졌다. 우는 횟수가 심하게 많은 날이나 해야 할 일이 쌓여 있거나 아들의 떼쓰기까지 가세하면 그야말로 헬육아의 블랙홀로 빠져 들었다. 딸은 안아주면 바로 울음을 그쳤지만 눈물이 관심의 수단으로 자리를 굳게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체력이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습관을 고쳐 보기로 했다.
아이의 떼나 우는 습관을 고치는 방법 중 하나가 '친절한 무시'이다. 실패했다. 딸은 안고 달래줄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울다 지쳐 잠이 들면 깨서 다시 울었다. 울다 잠든 것이 억울한지 더 강렬하게, 포효하며 울었다.
딸에게 돌아가는 길이 필요했다. 잘 우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다음 3가지 말을 해주기로 했다.
1. 언제나 엄마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말
2. 울지 않고 표현해야 엄마가 들어준다는 말
3. 울면 딸도 힘들고 엄마도 속상하고 힘들다는 말
단계별로 진행했다. 1단계는 꼭 안아 주면서 말했다. "엄마는 지안이를 많이 사랑해. 울지 않고 '엄마, 안아줘'라고 말하면 안아 줄 거야. 아기들이 말을 못 할 때 우는 거야. 지안이는 말할 수 있지?". 1단계의 과정을 1개월 정도 한 후에 2단계로 넘어갔다.
2단계는 안아 주지 않고 말했다. "지안이는 아기가 아니니까 울지 않고 말할 수 있지? 울지 않고 말하면 엄마가 들어줄 거야. 계속 울면 지안이도 힘들고 엄마도 속상해.". 그리고 울음을 그치면 꼭 안으면서 "아주 잘했어. 고마워. 지안아, 왜 울었어?"라고 우는 이유를 물어봤다.
평소에도 수시로 말해주었다. 엄마한테 바라는 것이 있으면 그냥 울면 안 되고 말해야 한다고. 울지 않고 안아 달라고 말할 때는 바로 안아 주면서 칭찬도 해주었다. 5분이 멀다하고 울던 딸은 2개월 여만에 드라마틱하게 줄었다. '잘 우는 아이'가 아니라 '잘 웃는 예전의 그 아이'가 되었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나의 울보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 아이들은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엄마는 어릴 때 별명이 울보였어. 엄마는 울면서 외할머니가 달래주기를 바랐는데 안 달래줘서 너무 속상했어. 그래서 더 울었는데 외할머니한테 혼만 났어."
엄마가 울보였다는 말에 두 아이는 깔깔 거리며 웃어댔다.
"그런데, 엄마는 다시 아이가 되면 그렇게 울지 않을 거야. 그냥 엄마한테 '안아주세요.'라고 말할 거야."
라고 말했다.
며칠 후 아들이 문득 말했다.
"엄마는 좀 불쌍해. 울어도 엄마의 엄마는 달래주지도 않고..."
어린 아들이 어린 나를 위로해주다니 감동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 별명이 울보였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서러움과 외로움이 조금씩 잊혀 가나보다. 울보라는 별명 앞에서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맘껏 울어야 할 때가 있다. 마음이 상하거나 몸이 아플 때, 화가 났을 때이다. 그럴 때는 울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충분히 울도록 안아 주고 기다려 준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어릴 때부터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 기쁨이나 행복과 같은 좋은 감정 뿐 아니라 슬픔, 화남, 서운함, 불안함, 억울함, 두려움과 같은 감정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울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 우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나는 속마음과 감정을 표현 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약해 보일까 봐, 무시할까 봐, 거절할까 봐, 함부로 할까 봐 감추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나의 진짜 감정을 나조차 알기 어려웠고, 알면서 외면하기도 했다. 그러다 소중한 관계들을 속속 잃어야만 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나의 진짜 감정과 마주 하는 용기가 생겼다. 소중한 관계를 지킬 힘도 생겼다.
어른이 되어도 엉엉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엄마가 되고 나니 그런 날이 더 많다. 내 아이들도 그런 날이 있겠지. 그럴 때 편히 엄마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울보 엄마가 아닌 단단한 엄마가 되어 보자고 다짐한다. 다 큰 어른이 되어 노인이 된 엄마 품에서 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어른 아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