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우울증과 갈등을 극복하는 법
죽상:거의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는 표정
결혼 후 3년 정도, 남편의 표정은 늘 죽상이었다.
남편은 그때 이야기 꺼내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때의 남편은 죽을 만큼 괴로운 남자였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 가장 행복해야 할 시기에 죽상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그런 때가 있었나 싶어 웃음이 나지만 그 땐 답이 없었다.
철이 좀 없었을까. 인생이 마냥 신나기만 했던 나는 인생의 큰 파도를 수년에 걸쳐 연타로 맞았다. 다시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느라 앙상한 상태일 때 남편을 처음 만났다. 굶기를 밥먹듯이 하고, 먹는 밥은 반공기도 안 되는 나를 보며 결혼하면 세 끼를 잘 먹일 자신이 있다고 남편은 장담했다.
결혼 후, 남편은 약속을 묵묵히 지켰다. 임신한 나를 위해 새벽마다 생과일 주스를 만들어 주었다. 어릴 때 먹었던, 오이와 토마토가 아삭하게 어울리는 엄마표 햄버거를 그대로 재현해주기도 했다.
길고 긴 힘든 일들의 누적에, 호르몬의 변화까지 더해진 임신 기간 동안 나는 예민할 대로 예민해졌다. 출산 후에는 산후우울증까지 더해졌다.
엄마와 눈을 맞추며 옹알이를 하는 아기의 얼굴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기에게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불러주다가 갑자기 서럽게 운다. 어느 날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이 내 아이를 빼앗아 가려고 해. 너무 무서워."라며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안방 소극장, '침대'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1인 공연은 스릴러물이었다. 넷플릭스에서 튀어나올만한 아찔한 장면은 매일 연출되었고, 남편은 유일한 관객이었다. 남편의 죽상은 어쩌면 당연했다.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 나의 뒤엉켜버린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들은 남편과의 갈등을 극으로 몰아갔다. 남편을 대화가 안 통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고, 남편은 그대로 독박을 썼다.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어?"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나오면서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 밥 생각이 나?"
'우울증이라잖아! 내가 뭘 잘 못해서 이런 병까지 얻은 건데? 억울해 죽겠는데 맛있는 걸 먹자고?'라는 뾰족한 감정의 날을 세우며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무뚝뚝한 남자다.
"맛있는 거 먹자." 이 말은 남편이 하는 가장 다정한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크고 작은 파도를 함께 넘다 보니 남편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저 취미였던 요리는 나와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언어가 되어 식탁에 차려진다.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하면 식사 대접에 진심이다. 어른이면 "식사 대접을 뭘 하지?", 아이라면 "뭘 먹이지?"라며 며칠 전부터 고민한다. 밥 한 그릇, 반찬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음식 위에 다정을 소복이 담는다.
오래전, 엄마가 한 말이 떠오른다. "아빠한테 너무 화가 나서 며칠 씩 말을 안 해도 밥상을 안 차린 적은 없다."는 말. 엄마도 먹는 것에 늘 진심이었다. 손님이 오면 수라상만큼 차려서 내놓으셨다. 자라면서 밥은 물론이고 사소한 간식까지도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셨다. 엄마와 남편의 다정한 말은 닮았다. 무뚝뚝한 성격도 닮았다.
나는 무뚝뚝한 여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웃는 나의 표정과 친밀한 말투로 인해 내가 무뚝뚝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모른다. 둘이 있을 때 조근조근 말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편이고, 가끔 오가는 애교스러운 말과 몸짓의 출처도 남편이다. 나는 언제나 용건만 간단히!
그런 나도 남편에게 보내는 다정한 말이 있다. 남편이 해준 음식이나 선택한 메뉴에 "역시 최고!"라는 감탄의 말과 함께 맛있게 먹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의 아재 개그에 빵빵 터져주는 웃음이다. 남편이 가장 으쓱해지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한때, 다정한 말은 간질간질하고 보들 보들한 '언어와 비언어의 합'이라고 여겼다. 내가 낯간지러워서 못하니 잘 표현하는 사람이 좋았고,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결혼 후 '사랑해.', '보고 싶어.'라는 간지러운 말들이 줄어든 남편을 향한 오해는 상처가 되었다. 상처는 불신으로, 불신은 갈등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간질간질하지도, 보들보들하지도 않지만 다정한 남편의 말을 알고 난 후 상처는 사라지고, 신뢰는 회복되고, 갈등 대신 대화가 오간다.
오늘도 남편의 다정한 말은 "밥 먹자.", "뭐 먹을래?", "맛있는 거 먹자."라며 쉼이 없다.
죽상은...(이 단어가 왜 이렇게 웃기는지... 자꾸 웃음이 난다. 남편 미안!)
우주 이전의 세상, 카오스로 가버렸다.
우리는 가끔 손도 잡고 다니는, 멀리서 보면 다정해 보이는 부부이지만 여전히 소소하게 싸우고, 여전히 무뚝뚝한 부부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무뚝뚝한 부부의 다정한 대화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