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한 3가지 방법
나는 첫째 아들 임신 상태에서 극심한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아들이 생후 4개월 되었을 때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우울증을 1년 정도 앓은 것이다. 내가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결심한 후 회복의 속도는 빨랐다.
남편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증상은 무기력과 불안감이었다. 남편도 두번째 방문한 병원에서 약을 지어왔다. 약은 한 두 번 먹고 안 먹었다. 지금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그 때와는 다르다.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새벽 2시면 출근하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말이다.
우울증의 증상과 치유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찾아 오는 이유는 같다. 자신의 마음을 봐달라는 울부짖음이다.
엄마가 되어 살다 보면 ‘엄마가 되어서 얼마나 행복한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우울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문득 외롭거나 불안하기도 하다. 이유 없는 억울함이 툭 튀어 나오기도 한다. 그런 감정이 불편하고 낯설어서 모른 체 하기도 하고, 타인에게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안의 감정이 화살이 되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원망과 분노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감정은 다 이유가 있다. 기쁨은 나의 품을 넓게 해 주고, 아픔은 나의 품을 깊게 해 준다. 이제는 나에게 오는 우울증을 꼭 안아줄 수 있다. 잘 왔다고, 반갑다고. 예전에 몰라줘서 미안했다고.
"내가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고 싶은데... 같이 가볼래?"
6년 전, 남편이 불쑥 말했다.
남편이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하니 진단을 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주말, 남편은 나와 4개월 된 아들을 차에 태우고 1시간을 넘게 내달렸다.
15년쯤인 된 듯한, 적당히 오래된 상가 건물에 주차하고 병원에 들어섰다. 병원 대기실에는 소파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고 노인들이 많았다. 주말이어서인지, 원래 환자가 많은 건지, 대기실이 좁아서인지 앉는 자리가 꽉 찼다. 아들을 안고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여기 선생님이 꽤 유명하대. 온 김에 자기도 상담받아 볼래?"
대기실에 앉아서 남편이 물어봤다. 정신과 상담은 어떨까. 호기심에 그러겠다고 했다. 나의 호기심이 때로는 쓸데없는 일을 만들기도 하는데 새로운 뭔가 앞에서 어김없이 발동한다. 의사가 하는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했더니 검사지로 좀 더 상세하게 체크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한다.
검사지는 꽤 양이 많았다. 학창 시절, 아이큐 검사할 때가 생각났다. 시험과는 다르게 알고 모르는 것이 명확하지 않은, 알쏭달쏭한 문제가 많았다. 알쏭달쏭한 검사지의 문제를 열심히 풀고 한참을 기다린 후 의사를 다시 만났다.
"일상생활에 불편이 많았을 겁니다."
미드를 보면서 정신과 의사는 경청하며 여유롭게 대화를 이끌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사무적인 말투, 무표정한 얼굴, 시크해 보이는 여자 의사의 말을 들으며 불신하고 싶은 반감이 일었다.
"어떻게 이 상태로 사업을 하고 아기를 돌보셨어요? 많이 힘드셨을 텐데요."
빠른 말투로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우울증 진단을 내렸고, 당장 약 먹기를 권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아야 한다고. 완쾌되는 데까지 4년 정도 걸릴 거라고. 남편은 별이상이 없고, 내가 이상이 있다고... 했다.
약봉투를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약봉투와 마주 앉아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정신과라면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떠올랐다. 희미했던 그 오래 전의 기억에 내가 투영되었다. 뭔가 억울하고 분하고 서럽고 답답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고, 세상이 잘 못된 거라고 원망했다. 울었다 멍 때렸다를 반복했다. 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하루 밤을 그렇게 보낸 후 결심했다. 셀프 치료, 자가 치유를 해보기로. 그리고 약은 버렸다.
어릴 적, 겨울이면 내 몸을 무겁게 누르던 솜이불은 따뜻했지만 가슴이 참 답답했다. 봄이 되면 그 이불을 안 덮어도 되니 한결 잠들기가 좋았다. 실컷 울어서인지, 결심을 해서인지 목까지 덮여 있던 솜이불을 가슴 아래까지 걷어낸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머리는 맑았고 가슴은 시원했다.
자가 치유를 선택했던 첫 번째 이유는 아들이었다. 그 작은 아이를 안고 주말마다 병원에 갈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원인이 내 안에 있다고 하니 노력할 힘이 생겼다. 신이 나를 버려서, 사람들이 나에게 큰 잘못을 해서, 과거의 잘못된 나의 선택 때문에 내가 고통당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말할 수 없이 무기력 했었다.
심리치유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내 안에 있는 나쁜 감정을 덜어내는 것을 먼저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른 뒤, 깊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무표정해서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은 의사의 행동은 친절하고 세심했다. 우리 집 주소를 확인하더니 너무 멀다며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일일이 검색한 후 몇 군데 추천해주었다. 완쾌되는데 오래 걸릴 수 있지만 꼭 병원 가서 치료받으라고 당부했다. 왜 병원 로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어느 날, 남편이 무기력하다고, 가끔 가슴이 아파서 숨을 쉬기가 어렵다고 했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도 했다. 함께 집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간 김에 나도 상담을 받았다.
"밤에 잠은 잘 주무세요?"
정신과보다는 소아과나 가정의학과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의 남자 의사였다.
"네, 잘 잡니다."
"다행이네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의사의 표정이 참 밝다.
"지금 많이 불편한 건 없어요. 육아하다가 힘들거나 예전에 힘들었던 일들이 떠오르면 우울해지거나 눈물이 나기도 해요."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내 표정도 밝았다.
4년 전에 다른 병원에 갔었던 이야기와 그때 나의 상태도 이야기했다.의사는 지금은 별 이상이 없어 보인다고, 그런 힘든 시기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며 회복된 것을 축하한다고 했다.
의사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리고 2년이 더 흘렀다. 시커먼 연기 속과 같은 우울하고 암울했던 날들이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내가 왜 환자냐고, 가당치도 않는 진단이라고 거부했던 우울증은 나에게 ‘그럴만한’ 흔적을 남겨 주었다. 우울증을 겪고 치유되는 과정을 통해 나의 마음을 알아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분노가 일고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과거와 다른 것은 분노의 이유를, 눈물의 원인을 내가 안다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면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이제 '내 마음의 의사'가 되었다. 이제 누가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덤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살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우울증을 인정해야 한다. 병원 치료를 병행할 것인가, 혼자 할 것인가는 중요치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상태를 자신이 알아주는 것이다. 거기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두 번째는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 내야 한다. 우울증은 불안, 후회, 자괴감,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몸과 정신을 장악한다. 메모지에 떠오르는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심이나 다짐만으로는 벗어나기 어렵다. 나쁜 감정을 덜어내는 행동을 해야 한다. 나는 메모와 일기를 활용했다. 나쁜 감정과 생각을 메모하고 찢어 버렸다. 그 비워진 자리를 좋은 감정으로 채웠다. 좋은 감정과 생각, 감사한 일들을 틈틈이 메모하고 그 메모는 모아 두었다. 그리고 나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펼쳐 보았다.
세 번째는 주변에 알려야 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우울증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알리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라는 것은 '공감과 이해'이다. 우울증이 심할 때 뾰족한 말로 남편과의 갈등에 불을 지피곤 했는데, 남편에게 "내가 지금은 마음이 아픈 환자이니까, 나을 때까지 좀만 이해해줘."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첫째 아들 임신 상태에서 극심한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아들이 생후 4개월 되었을 때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우울증을 1년 정도 앓은 것이다. 내가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결심한 후 회복의 속도는 빨랐다.
남편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증상은 무기력과 불안감이었다. 남편도 두번째 방문한 병원에서 약을 지어왔다. 약은 한 두 번 먹고 안 먹었다. 지금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지만 있지만 그 감정을 피하지 않고 씩씩하게 마주한다.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우울증의 증상과 치유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찾아 오는 이유는 같다. 자신의 마음을 봐달라는 울부짖음이다.
엄마가 되어 살다 보면 ‘엄마가 되어서 얼마나 행복한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우울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문득 외롭거나 불안하기도 하다. 이유 없는 억울함이 툭 튀어 나오기도 한다. 그런 감정이 불편하고 낯설어서 모른 체 하기도 하고, 타인이나 외부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내 안의 감정이 화살이 되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세상을 향해, 과거의 자신에게 원망과 분노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감정은 다 이유가 있다. 기쁨은 나의 품을 넓게 해 주고, 아픔은 나의 품을 깊게 해 준다. 이제는 나에게 오는 우울증을 꼭 안아줄 수 있다. 잘 왔다고, 반갑다고. 예전에 몰라줘서 미안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