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와 어른처럼 대화하는 법

아이의 어휘력을 높이는 3가지 방법

by 행복별바라기

"엄마, 대화하자."

딸이 4살 때, 저녁 식사하는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무슨 대화할까?"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당황했다. 흔들린 눈빛을 추스르며 내가 물었다.

"엄마는 오늘 사무실에서 어땠어?"

"엄마는 오늘 좀 바빴어. 새로 나올 책 수정해서 출판사에 보내주고, 다음 주 행사 때문에 고객사 담당자와 통화 많이 했어."

"아, 그랬구나."

"지안이는 오늘 어린이집에서 어땠어?"

"나는 친구랑 놀았어. 그런데 OO 이는 자꾸 나한테 장난만 쳐.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해."

밥 먹으면서도 계속 쫑알쫑알거렸다. 사실인지 상상인지 구분하기 애매한 '4살들의 놀이 세상'에 대해 쏟아 냈다. 가끔 엄마는 또 뭐했냐며 질문도 했다. 귀엽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어른과 아이의 대화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첫째인 아들이 10개월 즘이었다. 요로감염으로 서울대 어린이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2인실 병동이라 4살 된 남자아이와 함께 있었다. 면역계 질환이 있어서 1년에 한두 번 정도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볼이 통통하고 잘 생긴 아이였다. 4살의 남자아이, 그렇게 태도가 어른스러운 아이는 처음 봤고 지금까지도 보지 못했다. 아이 엄마와 그 아이가 대화하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엄마는 마치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아이와 대화했다. 자연스럽고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늘 그렇게 하는 듯 보였다.

그때부터 아들과 '어른처럼 대화하기'를 시도했다. 어른의 어휘로, 주고받는 대화를 했다. 그 과정이 내 아이들의 언어 인지와 어휘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내가 시도한 '아이와 어른처럼 대화하는 방법, 아이의 어휘력을 높이는 방법 3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기

돌 전후로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아기들의 귀여운 발음들이 쏟아진다. 할아버지를 '하삐', 할머니를 '함미'라고 하기도 하고 과자를 '까까'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 귀여운 발음을 따라하고 싶은 욕구를 누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아 언어 사용하지 않고 정확한 발음으로 바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이의 언어 능력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이 "하삐가..."라고 말하면 "할아버지가 주셨구나."라고 정확한 발음과 문장으로 다시 말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내 아이들은 유아 언어를 쓰는 기간이 짧았다.


2. 다양한 어휘로 말하기

아이가 모르는 어휘를 수시로 노출시켜 자연스럽게 아는 단어가 많아지도록 했다. 예를 들어, 걸어다니면서 "차도로 차가 지나가네. 사람은 인도로 걸어 다녀야 해. 차도로 걸어 다니면 위험해. "라는 말을 한다. ‘차도’와 ‘인도’라는 단어가 귀에 익숙해졌다고 느껴지면 단어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는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게 되고 책에 '차도'가 나오면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말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그 단어를 사용한다. "엄마, 저 아저씨는 왜 차도로 걸어가? 위험한데." 이것이 내 아이들이 3살 때부터 의사 표현을 잘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3. 질문하고 답하기

정말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단계이다. 나는 아이들이 말을 못할 때에도 아이들의 생각을 묻곤 했다. 정말 궁금했다. 이 작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은 질문을 하면 어떤 답이든 하려고 애를 썼다. 문장이 되든 안되든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해지고, 나는 그 재미에 푹 빠졌다. 어떤 때는 아이들과 수다 떠느라 잠드는 시간이 한없이 늦어지기도 했다. "시윤이는 어떻게 생각해?", "지안이 마음은 어땠어?"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아이가 대답하면 그 대답에서 또 다른 질문이 떠올라서 대화가 이어진다. 중간중간 엄마의 생각과 감정도 말한다.

1~2살 때는 질문을 던지고, 아이의 생각을 내가 대신 말했다. 아들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시윤이는 나무가 어때 보여?"라고 질문하고, "시윤이는 초록색 잎을 좋은가보네. 엄마도 어릴 때 초록색 좋아했어.", "나무가 오늘 기분이 좋은가 봐. 살랑 살랑 춤을 추고 있네."라고 아들의 생각을 읽은 듯이 말했다.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응, 응."이라고 대답했다. 진짜 다 이해하는 것 같아서 대화의 재미가 솔솔했다.


아이와 어른처럼 대화하기는 아이가 3살 이전에 가장 집중했다. 안고 산책할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 자기 전에도 끊임없이 이 대화를 시도했다. 엄마의 말이 아이의 뇌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이미지화하면서 계속 시도했다.

아이에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평소 말이 많지 않은 엄마라면 더 그럴 것이다. 나도 그리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단지 교육적인 효과만 노렸다면 힘들기만 했겠지만 그 과정에 느끼는 감동과 기쁨은 덤으로 따라온다.

아이가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과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3살, 4살 아이들의 순수한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부모만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이다. 엄마에게 꽃을 따주며 "엄마를 사랑해서 예쁜 꽃을 주고 싶어."라고 표현하는 어린 아들, 밤하늘을 보며 "별이 내 가슴에 와닿아."라고 말하는 어린 딸을 보면 엄마 미소는 폭죽을 터뜨린다.




아이작 유의 <질문 지능>이라는 책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 이시도어 아이작 라비가 한 말이 소개되어 있다.

"전혀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를 과학자로 만든 분은 내 어머니다. 자녀가 학교 다녀올 때 브루클린에 사는 유대인 어머니 대부분은 '그래서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하고 묻는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는 늘 이렇게 물었다. '오늘은 선생님께 어떤 좋은 질문을 했니?' 바로 이 차이가 나를 과학자로 만들었다."


유대인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고 한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를 성장시키고,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하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질문을 잘하는 것도, 대답을 잘하는 것도 어릴 때부터 잘 훈련되지 않아서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다. 나의 아이들은 그런 한계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노력 중이다. 질문을 잘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딸이 식탁에서 대화하자고 했을 때 하루 일과에 대한 대화가 끝나고 나서 물었다.

"지안아, 엄마한테 대화하자고 얘기해줘서 너무 기뻤어. 왜 그렇게 말했어?"

"엄마가 밥 먹을 때는 대화하는 거라고 했잖아."

내 아이들은 식탁에 앉으면 이야기해 달라고, 책 읽어 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엄마도 식사하는 시간이니 대화하자고 항상 말한다. 오랜 반복이 있던 어느 날 딸이 불쑥 대화를 주도한 것이다.

얼마전부터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하브루타 대화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한 후 나에게 다시 물어 본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식탁에서의 대화는 계속 되고 있다. 나에게 좋은 대화 친구가 되어 주는 아이들, 참 감사한 요즘이다.


IMG_0222.JPG 엄마의 대화법
IMG_0219.JPG 엄마의 대화법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