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주의 엄마를 꼭 닮은 아들에게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리가 아파서 유치원에 갈 수가 없다고 했다. 어젯밤까지 멀쩡하던 다리가 왜 때문에? 어제 유치원에서 친구와 장난치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병원에 갈 정도는는 아니라는 판단이 드는 순간, 나의 뇌는 풀가동된다. 이 순간을 해결할 최고의 한 수는 무엇일까.
"병원 가서 엑스레이 찍어 보고 싶어?"
"응. 병원 가고 싶어."
"엄마가 보기엔 뼈에는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엄청 아파. 걸을 수가 없어."
"뼈가 다쳤으면 가만히 있어도 아파. 엄마가 보기엔 약 바르면 나을 것 같은데..."
보통 이 정도 말하면 수긍하는 아들인데 좀처럼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병원 가는 길에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느라 유치원 앞에 도착했더니 아들이 차에서 내려서 걸어 갔다. 동생을 배웅한다는 생각에 다리 절룩거리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시윤이 걸을 수 있네?"
"어, 아깐 못 걸었는데... 이제 걷네."
아차 싶었나 보다. 정말 귀엽다.
"시윤이 병원 안 가도 되겠다. 유치원 가서 약 바르자."
"유치원 안 가고 싶어. 병원 갈 거야."
이 정도면 의지를 꺾을만한데도 계속 병원을 고집했다.
"시윤아, 다리 아픈 거 말고 다른 이유 있어?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해 줄래?"
"어... 어제 선생님한테 혼났어."
들어보니 어제 친구와 장난칠 때 선생님이 장난치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낸 것도 아니고, 부드럽게 말했다는데.
평소 아들에게 칭찬만 하시던 선생님이라 작은 꾸중에도 마음이 불편했나보다.
아들에게 심하게 장난쳤으면 야단맞을 수 있다고, 야단맞아도 씩씩하게 받아들이자고, 부드럽게 말씀하셨으니 좋은 선생님이라며,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황을 정리하려고 애썼으나 실패했다. 아들은 계속 병원을 가 보겠다고 했다. 유치원에 정말 가기 싫은 모양이다.
엄마가 되어 가장 곤란할 때가 원칙과 예외 사이에서 판단이 애매할 때이다.
평일은 엄마와 아빠는 일하고,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아플 때는 예외라는 것을 오늘은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이다.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에게 오늘 몸도 마음도 푹 쉬고 내일은 유치원에 가자고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해주었다.
"오늘은 다리가 아파서 못 가는 게 아니야. 시윤이 마음이 아파서 못 가는 거야. 앞으로 시윤이 마음이 불편하면 솔직하게 말해줘."라고.
아들에게 마음이 아파도 유치원에 안 갈 수 있다는 새로운 예외가 생길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원칙보다 아들의 마음을 더 헤아려 주는 엄마가 되기로 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음이 정말 불편할 때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싫으니까. 예민한 엄마가 예민한 아들을 이해해주지 않으면 누가 이해해줄까.
집에 도착해서 유치원 끝나는 시간까지 엄마는 재택근무한다는 것을 한 번 더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아들과 함께 있어서 좋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내가 일할 때 아들이 옆에 있으면 참 좋다.
어린 시절, 엄마가 말씀이나 학교에서 배우는 소소한 원칙들을 잘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길에 쓰레기 버린 적은 당연히 한 번도 없고, 욕이라면 장난을 고약하게 친 남자아이에게 "이 나쁜 놈!"이라고 나만 들리게 말한 것이 다였고, 규칙을 어기는 아이들은 '나쁜 친구'라고 분류했다. 길거리 음식은 먹으면 안 된다는 말에 달고나 한번 못해봤고, 오락실에 가면 안 된다는 말에 문 밖에서 쳐다만 봤다. 학교는 결석하면 안 된다기에 고열로 응급실에 다녀 온 날도 아빠 등에 업혀 학교에 갔다. 덕분에 초, 중, 고 개근상을 받았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엉덩이로 열일했다. 돌이켜 보면 그런 삶의 태도가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는데 분명 도움이 되었으나 소소하게 재미있는 순간들을 놓치고 살았다. 엄마 몰래 친구들과 달고나를 해 먹는 재미도, 상사 몰래 동료들과 수다 떨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재미도,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이 참 아쉽다.
인생에서 질서와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예외를 두는 말랑말랑한 유연성이 없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원칙을 잘 지키는 아들이 가끔은 일상에서 살짝 비껴 난 소소한 재미를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다시 질서와 원칙으로 돌아가는 탄성도 있어야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