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 분노하는 이유
딸이 요 며칠 동안 울고 떼쓰기가 심해졌다. 달래기, 모른척하기, 구슬리기 등 엄마의 숙련된 스킬들을 꺼내서 요리조리 휘둘러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슬슬 인내심에 빨간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엄마와 여동생의 실랑이 속에서 아들은 눈치 보느라 바쁘다.
2년 전, 딸이 3살, 아들이 5살일 때 내 마음이 무너졌던 날이 떠오른다.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버렸다. 몸의 피곤함. 마음의 피곤함은 나의 정신력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누구에게도 더 이상의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답답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두 아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길을 잃었다. 내 생명보다 소중한 아이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완전히 방전되었다.’ - 2020년 6월 9일 일기 중에서
그전에는 아이들에게 화낼 일이 없었다. 딸이 세 살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그 여리고 예쁜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를 낸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나를 둘러싼 주변 상황에도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돌아서면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분노를 멈추어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반복되었다.
그때 마침 최희수 작가의 <거울 육아>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책에서는 사람마다 분노가 올라오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연관이 있다고 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신의 분노의 지점을 찾는 방법을 소개해주었다. 20대 때부터 치유와 회복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알고 있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은 책의 프롤로그에 나온 문장, '아이는 부모를 사랑해서 이 땅에 왔어요.'였다.
당시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지냈다. 사업하면서 첫 책을 내고 두 아이의 주양육자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 다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기 위해 잠을 더 줄이며 '엄마로서 역할과 책임'에 충실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과 상황을 아이들은 알아주지 않았다. 딸은 앙앙 울고 떼쓰며 엄마를 찾아댔고, 아들도 동생에게 엄마를 양보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만 매달리는 두 아이로 인해 내 몸은 부서질 것 같았다.
어린 두 아이들에게 당연한 것인데 내 정신과 육체는 그것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었다.
분노의 뿌리를 찾았더니 '억울함'이었다. '난 너희를 때리지도 않고, 일이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왜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거야!'라며 내 마음은 소리 지르고 있었다.
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어린 시절의 엄마와 아빠에게 따졌다. 왜 나를 때렸느냐고, 왜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냐고, 왜 내가 울 때 달래주지 않았냐고,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냐고. 그렇게 며칠 동안 어린 시절의 상처와 만나고 돌아온 후, 아이들에게 일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누구나 화가 날 때가 있다. 그 화가 분노로 이어진다면 상대방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감정을 깊이 들여다 봐야 한다.
그 후에도 아이들에게 화가 날 때가 있고, 화를 낼 때도 있다. 하지만 분노로 이어지는 일은 잘 없었다. 최근에 또다시 딸의 울음이 나의 감정을 쑤셔대고 있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의 울음에 민감하겠지만 나는 전체인구의 20퍼센트 정도에 해당되는 민감한 기질이기에 아이들의 감정적인 반응에 좀더 민감하다. 억울함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딸아, 엄마는 억울해. 일하면서도 너희 둘을 열심히 돌보고 있잖아. 제발 엄마 입장 좀 알아줄래? 엄마 열심히 사는 거 안 보여?' 이런 마음. 딸은 이제 생후 48개월을 지난, 겨우 5살인데... 억울함을 호소하자니 웃음이 난다.
며칠 전, 아침에 눈뜨자마자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떼쓰던 아들이 등원 길에 한 말이 떠오른다.
"엄마, 미안해."
"하하. 아까 엄마한테 떼써서 그래?"
"응..."
"엄마한테 사과해줘서 정말 좋다. 엄마는 시윤이가 떼써도 사랑해."
7살이 되어 더 의젓해진 아들 덕분에 그날 아침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나의 엄마는 살면서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억울한 날들을 보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자식이 최고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기억난다.
내 마음을 다 알아주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나의 아이들이다. 나를 사랑해서 이 땅에 와준 아이들과 오늘 뭘 하면서 신나게 놀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