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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만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이 시간을 만들어 내는 방법

by 행복별바라기

30대 초반, 4시간만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 결혼 전이라 경험이 없었기에 육아와 집안일에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 계산에 대해 착오가 있었다. 4시간만 일하면 일과 육아의 병행이 순조로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일과 육아의 병행이 현실이 된 지금, 깊은 한숨과 나를 자책하는 내 안의 목소리로 아침을 시작했다.


집안일 경력 8년 차, 아직도 빨래가 서투르다니...


세탁기에 돌려서 건조대에 걸어 놓았던 아들의 새 체육복이 다 말랐다. '착착 개어 옷장에 넣으면 빨래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 다 마른 옷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하얀 종이 조각들을 떼내어야 했다. 롤 클리너로 20분 간 돌돌돌. 나의 뇌 세포는 10분 동안 나를 구박하고, 10분 동안 나를 칭찬해주었다. 체육복을 단독으로 돌린 것은 신의 한 수, 안 그랬으면 최소 3시간의 일감이다. 집안일, 왜 끝도 없다고 하는지 너무나도 공감되는 순간이다.


체육복을 세탁기에 돌릴 당시의 상황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주말 중 이틀째인 일요일, 집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엄마들은 이 날 '집안 정리 포기'라는 피켓을 든다. 침대 위의 모든 아이템들(이불, 베개, 인형 등)은 바닥으로 내려와 아이들의 새 보금자리로 둥지를 틀었다. 거실은 레고 조각들과 책들이 뒤엉켜 영토 분쟁 중이다. 아이들의 방은 말할 것도 없다. 먼지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장난감들로 빼곡하다.

토요일 하루 세탁기를 못 돌렸는데 빨랫감이 쌓여 있다. 아이들이 놀이에 필요해서 꺼내어 입고 던져 놓은 '안 빨랫감'들이 진짜 빨랫감들 사이에 엉켜 있다. 골라내지 않고 세탁기를 돌렸다. 두 번째 빨랫감을 건조기에서 빼냈을 때, 소파 위에 있던 아들의 새 체육복이 발견되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나의 월, 화, 수, 목, 금요일은 전투적이다. 토, 일요일은 더 열렬하게 전투적이다.




30대 초반, 외국계 게임회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친하게 지내던 옆팀의 팀장이 퇴사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유능하고 성실했다. 투명하고 하얀 피부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인이었다.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나서 하얀 피부는 눈 아래 다크서클을 더 선명하게 했다. 이어 쌍둥이를 낳았다. 마치 전쟁터에서 힘겹게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지친 모습으로 매일 출근했다. 하얀 피부는 더 이상 투명한 빛을 내지 않고 창백했다. 결국 그녀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업주부인 친구들을 보았다.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 있었다. 엄마가 되어 분명 행복하지만 가끔은 서글프다고 했다.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회의감도 들고,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은 도태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맘들을 보았다. 9 to 6 직장의 현실은 8 to 8 또는 8 to 11이었다. 다들 버거워했다. 집안일과 육아를 맡아주는 도우미든지, 가족 중 한 명이든지 완벽하게 커버되지도 않았고, 직장 퇴근 후 시작되는 육아 출근으로 인해 하루 24간은 숨 막히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아이에게는 늘 미안함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4시간만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4시간만 일하는 엄마가 되기로.


가족의 도움 없이 육아와 일을 '완벽하게' 병행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품었다. 그때부터 언제 될지도 모를 워킹맘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먼저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내 일'을 경험해보기로 했다.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이 재미있었다. 하루 24시간 사업에 매진했다. 잘 되는 듯하다 역풍을 맞았다. 5년 만에 망했다.




인생은 삽질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4시간만 일하는 엄마가 되겠다며 시작한 사업 때문에 엄마가 되는 길은 멀어졌다. 남편을 만났을 때 이미 40살이 넘었다. 사업은 다시 시작했지만 워킹맘은 안 되겠고 워킹우먼으로 살기로 했다.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아들이 생겼고 '워커홀릭 임산부'가 되었다. 당시 사업이 막 성장세를 타기 시작했을 때였다. 아들 출산일 하루 전날까지 야근했다. 출산 후의 상황이 예측이 되지 않아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또 다시 반전, 언제나 일이 우선이었던 내가 아들의 얼굴을 마주 하는 순간, 모든 기준이 바뀌었다. 회사는 리스크 최소화의 방법으로 성장보다는 유지를 택했다. 나는 주 4일 출근했고, 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애썼다. 주변의 만류가 없었다면 전업주부까지도 불사할 판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작가가 되면서 사업, 글쓰기, 육아를 병행해야 했고, 일하는 시간을 좀 더 확보해야 했다. 아들과의 시간을 줄일 수 없었기에 건강을 더 챙겼고, 잠을 줄였고, 자투리 시간들을 모았다.


[4시간 일하는 엄마의 시간 관리 원칙]

1. 흩어져 있는 조각의 시간을 모아야 한다.
2. 모은 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3. 드라마는 청소하거나 설거지할 때 봐야(들어야) 한다.
4. 친구는 전화로 만나야 한다.
5.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은 후기만 들어야 한다.


몇 번의 계기로 시간에 대해 놀라운 발견을 했다. 꼭 필요한 시간은 만들면 만들어지는 '탄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우선 순위가 아니거나 아직 간절하지 않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사업 초창기에 혼자 시간을 관리하는 훈련을 한 적이 있다. 직장 생활과 다르게 '내 시간이 곧 돈'이었기에 시간을 어떻게, 어디에 쓰는지가 중요했다. 쓸모없이 보내는 시간은 없는지 체크하기 위해서 '30분 단위의 시간일지'를 써 보았다. 30분 단위로 계획을 기록하고, 실제로 그 시간에 한 일을 기록했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쓸모없는 일을 하지 않는 습관, 조각의 시간을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 기사 한 줄에서 시작해서 엄청난 정보의 파도 속에 풍덩 빠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타기를 하기 때문이다.




막상 엄마가 되어 일하는 시간 4시간을 확보하려니 '아! 진짜, 신은 왜 육아맘에게도 24시간 밖에 주시지 않는 걸까. 딱 1시간만 아니 딱 30분만 더 주면 숨통이 트일 텐데...'라는 한탄이 절로 된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데는 정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든다.

'완벽하게'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서 빼 버렸다. 일도, 육아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충 할 수도 없기에, 원칙을 지키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과 일을 챙기다 보면 나의 개인적인 욕구는 늘 최하 순위가 된다. 당장 일이나 육아에 필요한 책이 아닌, 그냥 읽고 싶은 '내 취향의 책'은 예스 24 장바구니와 밀리의 서재 서재함에 한 가득 모아 두었다. 나를 위한 소소한 쇼핑과 창고처럼 되어 버린 서재방을 정리하는 것은 계속 미루기에 딱 좋다.

언젠가 일 때문에 백화점 화장품 매장을 지나는데 낯선 듯, 익숙한 향들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화려한 옷, 화려한 액세서리에 매일 다른 향을 뿌리고 다녔던 과거의 내가 거기에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눈물 나게 그때가 그리웠다.


가끔 만나는 9 to 6 직장맘들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점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하원하면 함께 놀이터에서 놀 수 있고, 아이들이 갑자기 아파도 급히 대안 찾으라 동동거리지 않아도 되니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어린 지금 그렇게 할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우아해 보이는 백조는 물아래에서 쉼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다고 했던가. 여유 있어 보이는 나의 시간 뒤에는 쉼 없이 움직이는 나의 손과 발, 뇌가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내 삶이 더 만족스러울까? 육아에만 전념하면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일을 더 많이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수도 없이 해본 생각이다. 가끔은 어느 쪽도 좋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지만 결국 나는 4시간만(때로는 조금 더, 때로는 조금 덜) 일하는 엄마를 선택한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중학생만 되어도 엄마에게 여유의 시간이 생긴다고 들었다. 그때 더 일해도 되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길이 최고길이다. 좀 전투적이어도, 좀 치열해도, 가끔은 전쟁 같아도 괜찮다.


오래 전, 결혼한지 얼마 안된 한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친구는 큰 상의 모서리까지 빈틈없이 음식을 차려 놓았다. ‘우아!’라는 감탄의 순간은 짧았다. 초대받은 친구들이 그 상을 클리어하기에는 맛이 치명적이었다. 보다 못한 친구의 남편이 김밥을 말아 주었다. 모양도 맛도 일품이었던 ‘네모난 김밥’은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오래동안 웃을 수 있는 추억도 만들어 주었다. 그 친구는 주부 18년차가 되었다. 두 아이에게 ‘음식 솜씨 좋은 엄마’가 되었고, 네모 김밥 말던 남편은 아내의 요리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한다.

엄마마다 아이와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다. 시간의 쓰임도 다르다. 하지만 모든 엄마의 시간은 자신과 가족의 삶을 빛나게 한다. 나는 일할 때의 내 모습이 참 좋다. 내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참 좋다. 비록 가장 잘하는 메뉴가 유부초밥과 김치볶음밥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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