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엔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며칠 전 시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내일 김장 준비할 때는 애비만 오면 돼. 애비 올 때 김장통만 보내. 모레 김장하는 날은 서둘러서 안 와도 된다. 이모들이랑 같이 하면 금방 해. 와서 고기 삶아서 점심 먹고 김치 가져 가."
결혼하고 나서 지금까지 김장 때마다, 명절 때마다, 제사 때마다 늘 그러셨다.
애들이 어려서일까, 음식이나 집안 살림에는 도통 재주가 없어 보이는 며느리라서 일까.
어떤 이유이건 며느리에 대한 배려를 감사하게 누렸다.
그날 밤, 김장통을 씻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40이 넘고, 50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어. 부모가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어. 우린 아직도 어른이 아닌 것 같아. 어머니가 계셔서 그런가 봐."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문득문득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장 안 해주셔도 좋으니까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언젠가 어머니가 떠나시면 김장철마다 얼마나 생각날까.
처음 만난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늘 어른 같았는데 과연 나도 어머니처럼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몇 해 전, 어머니가 엄마를 떠나보낼 때 그 슬픔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쉽고 죄송하고.
신혼 초, 남편과 싸울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가 낳아서 키운 아들이니 어머니를 닮은 구석이 어딘가 있겠지.'
내 아이들만 챙기느라 정신없는 틈에 문득 생각한다.
'어머니한테 귀한 아들도 여기 있네. 어머니의 아들도 좀 챙겨줘야겠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나도 나중에 저런 시어머니가 되어야겠다.'
굴곡진 인생을 사셨음에도 늘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주시는 시어머니는 나에게 또 다른 부모상을 보여주시는 '진짜 어른'이다.
따뜻했던 지난 5월, 갑자기 떠난 엄마가 요 며칠 부쩍 생각난다.
엄마가 떠나고 매일매일 울던 어느 날, 7살인 아들이 부탁했다.
"엄마, 그만 좀 울어. 제발."
아들과 그만 울기로 약속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설거지하다가, 운전하다가 혼자 울기도 했지만
그래도 눈물 흘리는 날보다 흘리지 않는 날이 점점 더 많았다.
그렇게 여름을 지냈고, 가을을 맞았다.
결혼하고 나선 늘 시어머니 김장김치로 일 년을 살았는데
김장철이 되니 엄마가 왜 이리 생각날까.
시어머니 김장김치 앞에서 결국 눈물샘이 터졌다.
엄마가 그립고, 어머니께 감사하고.
지난 토요일, 어머니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말했다.
"지금 가면 이모할머니들도 와 계셔. 이모할머니들 오랜만에 보네. 그렇지?"
5살인 딸이 말한다.
"엄마, 나는 할머니들 중에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제일 좋아."
"왜?"
"엄마의 엄마니까."
멀리 사셨고 코로나 때문에 (2년 전인) 3살에 만난 게 마지막인데 무슨 기억이 남아 있을까.
그날 밤 잠자리에서 딸에게 물었다.
"아까 낮에 외할머니가 제일 좋다고 했잖아. 왜 그랬어? 외할머니가 진짜 좋아? 아니면 엄마 기분 좋으라고?"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주려는 어린 딸의 말이 큰 위로가 된다.
나도 엄마에게 그런 딸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머니가 정성껏 해주신 김장김치 먹고 힘을 내보려고 한다.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이제 두 달이 지나면 나도 50이다.
나는 50이 되어도 어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진짜 어른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어머니가 오래 우리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