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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별바라기 Nov 01. 2022

17년 전 처음 만난 핼러윈, 굿바이 핼러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뭔가를 끄적일 의욕이 생기지 않는 오늘,

주섬주섬 오랜 기억 한 줌을 꺼내 봅니다.

오랜만에 브런치 서랍을 열었습니다.  



17년 전, 처음 만난 미국의 핼러윈


2005년 미국 출장길, 마침 핼러윈과 겹쳤다.

핼러윈이라면, 종교적인 이유로 약간의 거부감과 불편함도 있었지만 종교가 아니라도 별 관심 없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식사를 하고 미국 본사 사무실로 향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기대 같은 건 없었다. 하루 일정은 뻔했다. 재미없는 쉘라쉘라 미팅으로 꽉 채운 스케줄일 테니.


사무실 한편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창 너머 회사 입구에 낯선 풍경이 보였다.

유령 복장을 한, 한 가족이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딱 5,6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남매가 함께 했다. 얼굴과 발걸음에 호기심과 흥분을 한가득 담아 온 두 아이는 사무실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어른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사탕과 초콜릿도 받아 챙겼다. 아이들의 아빠는 그 복장으로 평소처럼 일했다. 가끔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


한국 토종이었던 나에게 그 장면은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미드나 영화, 뉴스에서 본 듯한 장면이 예고도 없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다니.

신선했다.

지루했던 출장이 갑자기 흥미로워졌다.

그날 밤, 함께 출장 간 일행들과 디즈니랜드 거리로 향했다.

길거리는 온갖 분장을 하고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걸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날'을 즐기는 듯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핼러윈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진 것은.

그들의 핼러윈은 기념이나 염원의 의미가 아니라 '그냥' 함께 즐기는 문화였다.

그것이 출장길에 만난 핼러윈의 첫인상이었다.  

재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2002년 영국의 축제


그보다 3년 앞선, 2002년 5월에는 런던에 있었다.

그해가 영국 여왕 즉위 50주년이었고, 내가 간 일정에 마침 골든 주빌리 주요 행사가 열렸다.

그 축제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런던을 떠나는 티켓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 축제의 자리에 있었다.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공연장 주변에는 대형 모니터가 설치되었다. 각 모니터들 주변에는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연을 기다리는 내내 즐겼고,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키며 함께 한 사람들과 그냥 즐겼다.


그 성대한 축제를 위해 그 일대는 철저하게 통제가 되는 듯했다.

'런던은 처음이라...'라고 얼굴 표정에 써붙인 나는 이동에 더 큰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도시가 통째로 파티의 흥에 일렁이는 분위기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 속에 스며들지도, 그곳을 빠져나오지도 못하는 이방인.

한편, 나라의 이벤트가 열린 곳에서 자신을 위한 파티가 열린 것처럼 즐기는 그들이 왠지 부러웠다. 


그 며칠 후, 한국에서 월드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국이 축제 분위기라는 소식을 접했다. 멀리서 본 한국은 통째로 흥에 겨워 덩실거렸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며칠 전에 본 영국의 흥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2022년 이태원의 핼러윈


이태원은 자주 찾던 곳이다.

결혼 전에는 친구들과 주말에 놀기 좋았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맛집이 많아서 자주 찾았다. 일 할 때는 기업의 파티와 이벤트를 열기 좋은 장소가 많아서 수시로 찾아다니기도 했다.

술 한 잔을 다 못 마시는 주량이지만, 그곳의 아무 바에서라도 마냥 좋았다.


아들이 두 살 즈음되었을 때, 이태원에서 식사를 하고 함께

이태원 밤거리를 걸었다. 친구들과 함께, 남편과 함께 걷던 길을 사랑하는 아들과 걸으니 참 좋았다.

"아들이랑 엄마가 좋아하는 이 길을 걸으니 꿈만 같아. "


이태원에 못 가본 지도 몇 해가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비극을 맞았다.

이제 4일째를 맞았다.

재미있는 핼러윈, 설렘을 주는 이태원, 친구와 함께 하는 흥겨운 파티.

이 모든 것이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아픈 단어'가 되었다.


그렇게 떠난 그들이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 가장 아프다.

누군가에게는 우주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적이었던, 아무 이유 없이도 그 존재 자체가 너무나 소중한 한 명, 한 명이다.

'슬픔'이라는 표현조차 닿을 수 없는 곳으로 그렇게 떠나 버렸다.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비난, 비방, 공격의 말들,

어제 있었다는 홍대 앞의 핼러윈 파티 소식들, 외면하고 싶은 기사가 쏟아진다.  

당분간 신문도, 기사도 피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기록을 마음에 새기는 것뿐이다.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마음이 아프면 아픈 대로 깊이깊이 새겨 본다.


만약 나의 바람이 허락된다면,

그날을 기다리며 품었던 며칠 간의 셀렘만을 안고 영원히 잠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핼러윈과도 작별이다.

이제는 10월의 마지막이 되면 가슴을 쓸어 내릴테이까.

떠난 이들과 그 가족들을 마음으로 다독여야 할 테니까.

  

할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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