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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별바라기 Mar 10. 2022

투병 중인 친구가 가르쳐준 친구의 의미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던 친구의 찐우정

"나 유방암 이래."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잘 안 되었다.

"길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졌어."라고 말했으면 바로 이해했을 텐데.

건강검진하면서 가슴에 좀 이상이 있는 듯하다고,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해 볼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다. 그런데 유방암이고, 바로 수술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픈데도 없던 친구에게 갑자기 암이라니... 한참을 어리둥절하던 나는 친구의 폭풍오열에 현실을 깨알았다. 

그렇게 친구의 투병이 시작되었다. 큰 수술 후 친구가 보여준 것은 놀라운 씩씩함과 강렬한 수술 자국이었다. 


"왜? 또 무슨 일 있어?"

내가 전화를 할 때면 친구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친구가 암과 투병 중일  나는 마음과 투병 중이었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밤낮으로 울며 세상을 원망하며 살았다.  과정을 오롯이 지켜봐야 했던 친구는 몸도 마음도  아파야 했다.

 

어느 날, 몸이 아픈 친구를 더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내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친구는 내가 선택한 가족인데! 형제자매는 선택한  아니지만 친구는 스스로 선택했잖아. 뭐가 미안해? 힘들고 아플  나누는  당연한 거지."

나는 그런  친구가 있어 이를 악물고 잘 살아야 했다.




"행복이(아들 태명) 선물 보낸다. 너는 일하느라 시간 없을 것 같아서 내가 만들었다. 이틀 꼬박 바느질했더니 손가락이 너무 아프네." 첫째 임신 때  손바느질로 아기베개와 모빌을 만들어서 보내준 친구.

", 있다 전화할게."라고 대답하고 며칠 동안 전화를 못해도 바쁜가 보다라며 이해하는 친구.

내가 울면 나보다 더 많이 울어주는 친구.

내가 철없는 소리 하면 "그래, 그래." 하며  들어주고선 마지막에 철든 말 한 마디로 바른 길의 이정표를 내미는 친구.

친구가 수술한  벌써 9년쯤 되어 가나보다. 수술과 약물 치료후유증으로 불면증과 우울감에 시달리고, 여기저기 이상 신호가 와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병원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예쁜 내 친구.


"내일 아침에 그냥 눈을 안 떴으면 좋겠다."

가끔 친구가 말한다. 쓸데없는 소리 한다며 나는 구박한다.

이제 와서 친구의 투병을 다룬 <서른아홉>이라는 드라마를 보며 자꾸만 운다. 남편은 보면 눈물 나는 드라마를  자꾸 보냐고 보지 말라고 한다. 재미있어서 보고, 친구한테 미안해서 보고,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서 본다.


"네가 행복하게  살아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친구  대견하고 대단하다."

얼마 ,  번째  출간 소식을 전하면서 아이들이 5, 7살이 되니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쫑알대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예전에 그리 힘든 세월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살아줘서 고맙다고. 나를 보면 흐뭇하다고.

"네가 나를 살린 거지. 너 덕분에 내가 잘 살고 있는 거야."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며 노는 걸 보면서 앞으로 어떤 친구의 모습으로 커나갈지, 어떤 친구와 찐우정을 쌓아갈지 기대가 된다.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길고 긴 생에 눈물 콧물 다 보여 줄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건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굳이 많은 친구를 곁에 두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정보다 더 깊은, 사랑보다 더 따뜻한 사이의 친구라면 한 명도 충분하고, 두 명이면 넉넉하고, 세 명이면 넘친다고.


10년, 20년, 30년... 긴 세월 친구로 지내다 보면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친구의 아픈 과정을 통해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뼈 아프게 느꼈다. 속상한 일이 있다고, 몸이 아프다고, 그냥 궁금하다고 전화해 주는 친구가 오늘도 참 소중하다. 있어줌에 감사하다. 문득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p.s.

피노키오의 '사랑과 우정 사이' :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찐친구의 '사랑과 우정 사이' : 우정보다 더 깊은, 사랑보다 더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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