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이 엄마를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동네 한적한 곳에 예쁜 한옥카페가 있다. 오며 가며 눈길을 사로잡는 고즈넉한 자태에 손님 오면 한번 가야지 하다가 마침 그날이 왔다. 미취학 아동,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기본 모드인 아이 셋이 역시나 먼저 뛰어들어갔다. 들어가는 꽁무니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어른 발걸음 하나를 보태서 뛰어나왔다. 카페 주인이었다. 그는 마치 아이들에게는 비밀이라는 듯, 작고 낮은 목소리로 "노키즈존이에요."라고 말했다.
카페 대문 안으로 머리만 쏙 들여보냈더니 오돌토돌 촘촘하게 돌들이 깔려 있는 작은 마당이 있었다. 맥락 없이 일단 뛰는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장소였다. 고요한 마당으로 한 발만 살짝 들여보냈다. 마당 너머에 자리 잡은 실내를 얼핏 훑어보는 사이, 내 입가에는 나도 모르는 미소가 흘렀다.
노키즈존, 오랜만에 들어본 말인데 왠지 반가웠다. 가끔은 엄마가 아닌 나만을 위한 공간을 내어 주고 싶은 속마음을 미리 알아채 주어서일까. '이곳은 엄마만을 위한 공간입니다. 편하게 머물다 가세요.'라는 긍정의 주석을 달았다.
7년 전, 한 산부인과 분만실 앞이 웅성웅성했다.
"산모 나이가 만 42세래..."
민증 나이 43세, 어릴 적 친구들끼리 통하는 코리안에이쥐 무려 44세에 첫 출산을 했다. '기적'이었다.
내 인생에 가끔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특별한 애정을 보여준 담임선생님 덕분에 소심하고 조용하던 내가 '밝고 명랑한 어린이'가 되었다. 동대문에 새로운 쇼핑몰에 구경 갔더니 오픈 이벤트를 한다며 현금 다발을 쌓아 놓고 있었다. 추첨볼을 뽑았는데 1등, 현금 20만 원에 당첨되었다. 20여 년 전이니 상당한 액수다. 뉴질랜드에 어학연수를 간지 2주 만에 현금 200만 원을 도둑맞았다.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로또 400만 원 당첨되었다며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 스펙보다 상향 지원한 회사에서 최종 합격을 통보받은 것, 33살 노처녀 대열에 끼어, 치아교정기를 끼고 있던 내 얼굴에서 후광을 보았다는 한 남자의 고백 등. 나한테 일어날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오는 기분 좋은 일들을 선물, 행운 또는 기적이라 부른다.
그저 신기하고 신나고 즐거운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적, 꿈에서조차 꿈꾸지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그렇게 나는 - 내 기준의 나이 - 43살에 아들을 만났고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그 순간에는 마냥 신기하고 좋기만 했다. 몇 년이 흐른 후 '노키즈존'이라는 말 앞에서 미소를 띠게 될 줄은 몰랐다. 육아의 세계는 예상보다 훨씬 더 다이내믹하다.
노 키즈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라며 반대하는 입장과 소란하게 하는 어린이들 때문에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찬성하는 입장이 있다.
노키즈존이 생기게 된 계기는 2011년 한 식당에서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던 종업원과 10살 어린이가 부딪혀 화상을 입었다. 2년 간의 법적 공방 끝에 법원은 식당 주인과 종업원에게 4,1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어린이 부모의 책임을 30%로, 식당 주인과 종업원의 책임을 70%로 본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시작되어 식당은 물론 비행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되고,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0년 영화 <겨울왕국 2>로 인해 노키즈존이 다시 화두가 되었다. 시끄러운 아이들 때문에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한 언론사에서 20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9%가 아이들 때문에 영화 관람에 방해를 받았다고 느꼈고, 62%가 노키즈존 상영관 도입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과연 20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2020년 한 시장 조사 전문 기업에서 만 19세부터 59세 사이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1%가 노키즈존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굳이 한 표는 던지자면 나는 찬성이다. 장소의 공간적인 특성과 장소 이용의 목적을 고려하고,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는 서비스 제공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도 뛰고 움직이는 것이 기본이다. 얌전 모드로 식사하거나 기다리는 것은 길어야 20~30분. 많은 엄마들은 민폐 대신 스마트폰 보여주기를 선택한다. 나는 식사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하지 않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엉덩이를 붙잡기 위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거나 그에 준하는 신박한 재능을 탈탈 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때가 있다.
아이들과 가급적 외식을 하지 않는 '우리의 선택'은 아직 유효하다. 가끔 외식할 경우에도 나는 음식을 먹긴 하지만 무슨 맛인지 기억에 없다. 그렇게 아이들의 행동을 자제시키고 신경을 쓰는데도 아이들의 작은 움직임에 험상궂은 표정을 드러내는 주인이 있다. 부드럽게 말해주어도 엄마의 머리는 조아려지는데 말이다. 애초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입구에서 화살표를 돌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방해받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을 수 있다.
반면, 정말 좋은 키즈존들이 많다. 우리 동네에 맘들 사이에서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가본 사람은 없다'는 대형 정글짐이 있는 카페가 있다. 카페의 한 부분에 키즈카페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데 예약제, 시간제로 이용할 수 있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2시간 동안, 나는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언젠가 아시아 4개국이 공동 주최하는 '저출산 대책 마련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초대받은 것도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에 가 본 것이다. 가보니 대부분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그야말로 탁상공론이었다. 그들이 기왕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면 한 공간을 키즈존으로 내어 주는 식당과 카페에 매력적인 로열티를 주는 방안에 대해 논의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사실 나는 과거에 노키즈존에 찬성도, 반대도,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카페에 책 읽으러 갔다가 시끄럽게 하는 아이들 때문에 책장을 덮었을 수도 있고, 눈썹을 찌푸렸을 수도 있다. 단지 기억에 없을 뿐. 별 의미가 없던 '노키즈존'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엄마가 되니 다양한 생각의 지도를 펼치게 된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예의 바르게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개념 있는 어른'이 되자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뛰어다니거나 떼를 쓴다면 그 부모가 개념 없는 사람이라 단정 짓기보다는 어쩌다 오늘은 실패했을 수도, 아이의 컨디션이 유난히 난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노키즈존은 엄마만의 공간을 준비해둔 배려 있는 곳이라고 긍정적으로 애용하자.
43살에 기적처럼 엄마가 된다고 해서 헬육아의 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땐 노키즈존에서 노키즈의 순간을 즐기는 것도 꽤 괜찮다. 노키즈존인 동네 한옥 카페는 평일에 한번 찾아갔다. 노트북을 들고, 그 고요한 마당의 느낌을 내 글에 실어 보리라는 기대를 잔뜩 안고.
마당 너머에 자리 잡은 실내는 비좁았다. 천고도 낮고 테이블 사이 간격도 좁아서 옆 테이블 대화에 자꾸만 대답하려는 내 입을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1시간도 채 못 있고 그곳을 나왔다. 나오는데 비가 쏟아졌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생이 재미있는 건 언제나 예상을 뒤엎는 찰나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공간이라고 늘 고요와 여유가 있지 않다는 교훈을 얻는 그날, 소음과 폭우에 나의 빨간 가죽 구두는 흠... 한결 더 쪼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