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철학자가 건넨 일의 위로와 응원
작가라는 이름으로 밥벌이를 하는데, 정작 글 쓸 시간이 없다.
작가라 새 책을 쓰고 싶은데, 정작 내어놓을 새 글이 없다.
마음속에 꿈틀대던 불만은 갱년기를 틈타 터져 나온다.
"대체 나는 언제 글을 쓰냐고!"
글쓰기 수업하랴, 기업 강의 다니랴,
아직 손 많이 가는 초등학생 두 아이 키우랴.
나는 주 7일을 일한다.
아이들의 겨울 방학 두 달은 그야말로 '스페셜' 시즌이다.
주 7일, 2배속으로 돌아가는 인생.
이미 현대 고전이 된 키워드 '워라밸'은
우리 집이 아닌 옆집 강아지 이름쯤 되나 보다.
불러도 오지 않는 그 이름이 야속할 뿐이다.
생각하면 답답하고, 속상하고, 때로는 화가 치민다.
왜 나는 오롯이 글 쓸 시간이 없을까.
내 인생은 어디로 가고 있나 회의감이 들 때면,
갱년기라는 그럴싸한 핑계 뒤에 숨어 허공에대고 긴 한숨을 토해낸다.
그렇게 숨 가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이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펼친 신문에서
존경하는 김형석 교수님의 칼럼을 봤다
너무 큰 위로가 되어 한 부분을 남겨보자면,
제목 :4.5일 근무제가 희망일 수 있는가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나는 경험은 100세가 넘은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노후에는 더욱 그렇다. 일없는 사람은 이미 인생을 끝낸 셈이지만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일을 게을리했거나 포기한 사람은 나이 들수록 허무한 인생을 계속한다.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성공하지만 일을 게을리한 사람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일을 왜 하는가. 돈과 수입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밖에 모른다. 일의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인생의 3분의 2를 찾아 누린다. 내가 하는 일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며 서로 행복을 나누기 위한 일의 가치를 깨닫는 사람은 나이 들수록 존경과 감사를 받는다.
(중략)
나같이 학문을 위주로 하는 교수는 일주일에 4일 일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신체적 균형을 위해 가벼운 운동이나 신체적 잡무로 운동을 대신하면서 거의 평생을 살아왔다. 공부를 놓치면 정신적 성장이 끝나고, 일을 중단하면 삶의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에 4.5일 같은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
"이제 쉰이 넘었으니 좀 쉬엄쉬엄하자"는 자아와
"할 수 있을 때 더 치열하게 살자"는 자아가 매일 다투는 요즘.
100세 스승의 문장은 나의 치열한 두 번째 자아 손을 들어주었다.
나에게 일이란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나의 행복과 성취를 위한 도구이며,
타인을 돕기 위한 소명이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은 묻는다.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니?"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모든 이유가 있기에 해낼 수 있다는 것을.
100세가 넘어서도 현역으로 사유하시는 김형석 교수님의 말씀은
바쁨을 핑계로 투정 부리던 내 뼈를 때리고,
동시에 뜨겁게 안아주는 위로가 되었다.
이 짧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독감에 걸린 둘째가 다섯 번이나 엄마를 찾았고,
먹성 좋은 첫째가 남긴 빈 접시들로
개수대는 금세 수북해졌다.
오늘은 미처 시작하지 못한 강의안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다’는 믿음으로
2배속 인생을 살아가는 오늘의 나를 응원한다.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나의 이 글쓰기를 응원한다.
- 작가 신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