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린 말 했어?"가 남기는 것
나는 오랫동안 저격수로 살았다. 무기는 ‘말’이었다. 누군가 논리적 허점을 보이면 기가 막히게 포착해 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팩트는 이거지.”
“앞뒤가 안 맞잖아.”
일상의 대화가 싸우자고 덤비는 꼴. 내 주변에서 얼마나 긴장하며 살았을까.
나의 지적은 비교적 정확했고, 예리했으며, 무엇보다 옳았다. 상대가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면, 나는 그 침묵을 동의라고 착각했다. 내 논리가 이겼다는 승리감에 취해, 상대의 표정을 식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말싸움 전승무패의 기록을 세우면서 뭔가 이상했다. 사람들에게 "말 참 잘한다", "똑 소리 난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정작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는 불편한 사람이었다. 회사 팀원들은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지만, 결코 먼저 말을 걸어오지도 않았다.
논리로는 승리자였을지 몰라도, 관계에서는 패배하고 있었다.
마흔이 넘으며 조금씩 깨달았다. 관계는 법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소중한 사람과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으려는 것이지, 피고석에 앉혀놓고 시비를 가리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채점을 하고 있었다. 상대의 말에서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느라, 정작 그 말 뒤에 숨겨진 마음은 읽지 못했다. “나 요즘 좀 힘들어”라는 말에 “네가 운동을 안 해서 그래, 수면 패턴부터 바꿔”라고 처방전을 던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사람들은 ‘맞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지만, 곁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람은 옳은 말이 아니라 “그럴 수 있어”라며 인정의 말로 품어 주는 사람이다.
똑똑한 머리는 문제를 해결하지만, 따뜻한 가슴은 사람을 남긴다. 그 단순한 진리를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을 잃고 나서야 배웠다.
나는 ‘말싸움 고수’의 타이틀 대신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논리의 칼날을 거두고, 공감의 품을 넓히는 연습을 한다. 결코, 쉽지는 않다. 남편에게 또 한 마디 톡 쏘아붙인 걸 보면...
“내 말이 맞아”보다 “네 마음이 그랬구나”가 더 힘이 세다는 것을 기억하자. 논리로 이기면 순간의 자존심은 챙기지만, 내가 져주면 '우리’라는 관계가 이긴다는 것을 새기자.
오늘도 입이 근질거리는 순간이 온다. 팩트로 뼈를 때리고 싶은 유혹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나는 주문처럼 되뇐다.
“이 대화로 남는 것이 무엇인가? 잠깐의 승리감인가, 사람인가.”
이기는 대화보다, 곁에 남는 대화를 하자.
옳은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하지 용기가 먼저 필요하다.
by 신경원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