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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May 15. 2017

마추픽추가 왜 보고 싶었을까.

페루여행 #1

히말라야 봤고, 킬리만자로 봤고, 오로라 봤고, 빙하 봤고, 세렝게티 초원도 봤다.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나라들도 가봤다.

세상에서 보고 싶었던 여행지는 마추픽추 하나가 남았고, 못 밟아본 대륙은 남아메리카가 하나 남았다.

고로 <듀엣가요제>가 종영하면서 얻은 휴가에 무얼 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남미에 있는 마추픽추를 보러 가면 내 여행의 기록에 마침표 하나가 찍힐 듯한 기분이었다.


상황이 썩 여의치는 않았다. 종영하고 휴가까지는 2주 정도가 남았는데, 나는 전에 없이 아팠다. 올봄에 유독 기승을 부린다는 바이러스가 내 편도선을 심각하게 괴롭혔고, 나는 목이 부을 대로 부어서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했다. 끼니마다 겨우 입술을 열어 죽을 쑤셔 넣다시피 했다. 귀까지 퍼진 염증이 욱신거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이 끓었다 내렸다. 

그게 꼭 이 바닥에만 해당하는 얘기겠냐마는, 아예 입원해서 못 나오지 않는 이상 어지간히 아파서는 쉴 수 없는 일터라는 게 문제다. 출근길에 병원에 들러 수액을 맞고, 끼니마다 진통제며 소염제를 삼켜가며 내 몫의 편집을 했다. 나을 리가 있나. 어느 의사든 아파서 가면 좋은 음식 챙겨먹으며 푹 쉬라는 말을 꼬박 한다. 병원을 찾는 직장인들이 하나같이 무력함을 느끼는 순간일 거다.


어쩌지. 출국할 때까지는 낫겠지 하며 아픈 와중에 비행기는 끊어놨는데, 별로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 솔직히 받아놓은 휴가 내내 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으며 요양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게다가 마추픽추를 보러가는 길은 건강한 몸으로도 쉬운 길은 아니다. 직항이 없는 페루까지 경유를 포함해 꼬박 하루를 꽉 채워 날아 가야하고, 거기서 다시 쿠스코까지 육로든 국내선 비행기든 한참을 또 이동한다.

그렇게 도착한 쿠스코는 해발 3600m의 고산 도시. 건강한 사람들도 고산병 때문에 숙소에 앓아누워 아무것도 못하기 일쑤인 곳이다. 마추픽추는 거기서 다시 요동치는 기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해서, 또 버스를 타고 어지러운 산길을 오른 다음, 짧은 등산을 거쳐야 볼 수 있다.

아 써놓고 보니 속이 다 답답해진다.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분은 점점 쎄해졌다.


마추픽추가 왜 그리 보고 싶었을까. 전 세계에서 이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숫자에 비해, 그 이유의 숫자는 꽤나 빈곤할 거다. 자기만의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마추픽추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물론 내 이유도 그 빈곤한 몇 가지 안에 들어가겠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내 상상력의 터전은 만화였고, ‘일상을 벗어나는 경험’을 나는 만화를 보고 그리는 것으로 충족시켰다. 일상으로부터 멀수록 좋았고 환상과 상상을 부추길수록 설렜다. 그맘때 유년기의 아이들이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이상한 책을 탐독했던 것도 비슷한 심리였을 거고, 더 어린 아이들이 공룡이며 공주에 환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거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라면 공중도시 마추픽추만큼 환상을 자극하는 이름이 또 있을까.

화려한 유적은 쉴 새 없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늘의 삶에 비추어보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삶의 흔적들. 그곳에서 사회를 이루고, 사랑을 나누며, 오늘과 꼭 닮았을 인생들을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두근거리는 일이다. 아마 그래서 나도 만화를 그릴 때마다 허물어진 유적들, 외딴 공동체 속 사람들의 삶을 그리며 설레 했던 것 같다. 거대한 산맥 속 허름하지만 웅장한 마추픽추는 그 설렘의 원형 자체다.

이거 중요하다. 허름함과 웅장함이 함께 있어야 느낌이 확실히 산다.

사실 마추픽추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위용에 비하면 의외로 가까운 시대의 유적이다. 잉카제국은 15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100년 정도를 존속하다가 스페인에 의해 멸망했으니까. 한반도에서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가 다비드 상을 조각하고 있을 때와 같은 시대 것이다. 500년 밖에 안 된 유적이 수천 년은 된 것 같은 노안을 하고 있다. 

신라 왕조에 지어진 불국사가 마추픽추보다 천 년은 더 오래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느낌이 꽤 이상해진다. 물론 불국사는 일제와 박정희 시대의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사실상 새로 지어진 건축물에 가깝다. 반면 마추픽추는 1911년 미국의 탐험가 하이럼 빙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질 때까지 거대한 안데스 속에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위용이 새삼 이해가 간다.

잉카는 문자도 없는 문명이었다. 덕분에 마추픽추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온갖 상상을 난무하게 만드는 것도 신비감을 더하는 좋은 수단이 된 셈이다.

역시 매력은 이렇게 관리하는 거다. 다 보여주면 안 되고 어느 정도 신비감을 유지해야 한다. 결국 나도 그 신비에 넘어간 거다. 틈만 나면 노트에 그리던 고대유적의 신비. 그 상상력을 내게 불어넣어준 최초의 이름. 그 이름이 자꾸 속삭인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내가 또 거길 언제 가겠어.’

항상 여행은 이게 문제다. 어쩐지 이번이 아니면 홀로 마추픽추를 마주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오로라를 보러 아이슬란드로 떠날 때도 똑같은 말을 하며 갔는데,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너 저번에 네팔 갈 때도 그러고 갔잖아’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 마음이 없으면 여행은 못 간다. 떠날 때는 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떠나야 한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닐수록 더욱 그렇다. 결국 진통제와 항생제를 삼키면서도 저 말을 곱씹었고, 마침내 방송이 끝나고 나는 짐을 쌌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페루에서 깨달았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땐 여행을 떠나면 안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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