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2년차였는데, 처음에 배정됐던 팀들이 유독 재미가 없었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퇴근하면 뭐 없나 눈알 굴리다가, 마침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을 만나 팀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과 뛰어든 첫 프로젝트가 이 초록우산 공익광고였다. 팀원 중 하나가 초록우산 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영상의 경우, 기획만 참여하고 회사 일 때문에 본격적인 촬영 현장에는 잠깐만 있다 왔다. 외도의 한계다. 내 연출이 아닌 만큼 '내 꺼'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 감은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혼자 어려 보이는 아이, 그리고 학교에 찾아오는 아버지, 차 유리문을 내리자 사라지는 아이. 실종된 아이는 아버지 마음 속에서 아직도 아홉 살이다.'라는 메인 서사는 내 기획이었으니 내 꺼라고 해도 되지 싶다.
이것과 함께 두가지 안을 냈었는데, 나머지 하나는 '아이 방에서 조용히 사진 앨범을 뒤적이는 엄마. 앨범 속 아이의 모습들이 사랑스럽다. 그 중 유독 환하게 웃는 예쁜 사진에 눈이 멈추는 엄마. 한참을 들여다보는 눈길에서 사랑이 느껴진다. 커트 바뀌자 실종아동 전단에 붙어있는 그 사진. 엄마는 전단지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는 중이었다.' -는 내용이었다.
이쪽도 처음부터 실종 아동 광고라는 걸 모르고 보면 마지막에 쿵, 하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무심코 보고 지나가는 전단지들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솔직히 난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초록우산 쪽에서는 저쪽을 골랐다.
그리고 이 광고는 꽤 대박이 났다. 이제 7년이 다 지나가는데 아직도 가끔 잘 만든 광고로 온라인에 돌아다니는 걸 본다. 그 때 나는 회사 몰래 했던 재능기부라 참여만 하고 사이트에 올라가는 크레딧에서도 그냥 이름을 빼달라고 했었는데, 이 광고가 꽤 유명해져서 광고회사 다니던 팀원들은 포트폴리오로 잘 써먹었던 모양이다. 메인 시나리오 짜놓고 나만 못 써먹어서 좀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냥 이름 넣어달라고 할 걸 그랬나.
앞의 것들은 그래도 재능기부라는 명목으로 어느 단체에 보내기라도 했지, 이 두 편은 MBC 해직기간에 정말 아예 혼자 만든 것들이다. 혼자 만들어서 개인 유튜브랑 페이스북에만 올렸다. 오히려 그래서 더 언론과 입소문을 타고 화제가 많이 됐던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세월호를 가지고 너무 마음대로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게 화가 나고 힘들어서 만들었다. 동기가 분노여서 그런지, 영상의 톤도 꽤 공격적이고 감정적이다. 그만큼 논란도 많이 낳았고, <10억>편의 경우는 실종자 가족 한 분께 항의도 받았다. 반어법의 메시지가 뜻하지 않은 상처가 될 거란 생각을 미처 못했다. 따로 찾아뵙고 사과 드리고, 원하시면 올라가있는 모든 곳에서 영상을 내리겠다는 말씀도 드렸는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더니 그럴 필요는 없겠다고 하셔서 다행이었다.
지금 봐도 조금 거친 구석이 있다. 감정이 격할 때 영상을 만들면 이렇게 되는구나, 조심해야겠다 생각을 했는데, 또 존경하는 어느 PD님은 이렇게 감정이 드러난 영상이라 사람들이 더 강하게 호응했던 거라고, 조금 덜 조심해도 될 거란 얘기를 들려주셨다. 어렵다.
이것도 시간이 많았던 해직 기간에 만들었던 단편들. <트루맛쇼>, <MB의 추억>, <미스 프레지던트>, <칠곡 가시나들>을 만든 김재환 감독님이 그냥 너 해보고 싶은 거 해보라며 제작비를 지원해주셨다. 본인 회사의 웹 컨텐츠 공간이 비어있는데 거기 채울 용도로 쓸 테니 아무거나 만들어 보라고.
매번 재능기부 성격의 목적이 있는 영상들만 만들다가, 모처럼 그냥 재미로 영상을 만들게 되니 꽤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내가 서울에 와서 제일 오래 머문 신촌에 대한 이야기. 그 신촌이란 공간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볼 사람은 정말 생각 안하고 그냥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1편 <아름다운 시절>은 꽤 반응이 좋았다. '아름다운 시절'은 연대 사과대생들이 꽤 오랜 선배들로부터 죽치고 가던 술집인데, 솔직히 나는 진성 아싸라 학교 다닐 때 이 공간을 제대로 향유해본 적이 없었다. 실은 술도 안 마셨으니 갈 일이 없었다. 대신 거길 들락거리는 학교 극회의 공연을 좋아했고, 졸업하고 나서야 이 중 몇몇과 알고 지내면서 따라가 본 게 전부다.
독특한 공간이긴 했다. 거기서 보고 느낀 걸 담아보고 싶었다. 졸업을 하고 학교를 떠나도 여전히 그 모습으로 남아있는 술집이란 공간은 저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술을 즐기지 않던 나에게는 더러 술자리의 분위기가 낯설고 불편할 때도 많았는데, 그런 감정도 담아보고 싶었다. 적절하지 않은 나쁜 농담도 그냥 술김의 분위기에 실려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
<아름다운 시절>이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자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 보고 싶었는데, 나에겐 술집보다 '독수리다방'이 더 익숙하고 편한 공간이었다. 죽치고 앉아서 공부하고 책 보고 할 수 있는 아늑한 카페가 흔치 않았어서 더욱 좋았다. 그래서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보고 싶었는데, 죽치고 앉아서 공부하고 책 보는 카페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어차피 재밌으려고 하는 거, 내용 말고 연출 방식을 좀 새롭게 해볼까 했다. 그래서 두 배우를 먼저 부르고, 그네들이 카페에서 실제로 무슨 얘기를 할 것 같은 지를 물었다. 그 이야기 조각들을 모아서 대강의 흐름만 짜고, 대사는 알아서 자기 말로 하시라고 했다. 내용과 흐름은 있는데 대본은 없는 작업. 재미있을 것 같았다.
결과는 꽤 아쉬웠다. 일단 연출 방식으로 재미를 보자기엔, 두 배우가 너무 연극판에서 열심이었던 분들이라 편한대로 하시라고 했던 자기 말들도 그냥 대사처럼 나와 버렸다. 흐름만 파악하시라고 드렸던 대본과 대사들이 정제된 톤으로 나오니 애초에 기대했던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잘 안 나왔다. 본업에 충실한 배우들이라 겪었던 아이러니 같은 느낌. (두 배우는 그 뒤로 꽤 큰 상업영화들에서 단역으로 종종 얼굴이 보인다. 그 때마다 얼마나 반가운지.)
의도가 잘 안 살았으니, 당연히 카페에서 할 법한 평이한 이야기들이 재미있을리가. <독수리 다방>은 <아름다운 시절>만큼의 호응은 없었고, 내가 이어나가고 싶었던 '신촌의 공간들' 프로젝트는 내 복직으로 해직이 끝나면서 그렇게 같이 끝났다.
해직기간 동안 마냥 놀 수는 없어서 '뉴스타파' 협력 PD로 일을 했는데, 그 중 제일 손이 많이 갔던 웹단편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앞두고, '만약 이렇게 노동법이 바뀌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보여주려고 제작했다. 그냥 노동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져 줄까봐, '초능력 히어로 회사'라는 설정으로 이목을 끌어보려고 했는데 저예산과 짧은 제작기간 동안 급하게 만들다 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건이다.
아무래도 시의성을 다투는 사안이다 보니 정말 급하게 제작했다. 씬이 꽤 많은데 딱 이틀 동안 아침부터 한밤까지 미친듯이 달려서 다 찍었으니까. 저예산이라고는 했지만 뉴스타파로서는 꽤 많은 제작비를 투자했고, 안석환, 김병춘 선생님 같은 큰 배우분들이 열악한 조건임에도 뜻을 모아 출연해주신 만큼 잘 만들고 싶었다.
주어진 조건 안에 메시지도 담으면서 최대한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다시 보면 볼수록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보인다. 그래도 필요할 땐 서둘러 해야 한다. 마냥 만족스러울 때까지 시간과 공을 들일 수 없을 때가 많다.
그게 싫어서 일이 아닌 외도로 만든 영상들을 기록한다고 했는데, 회사 밖이라고 항상 모든 게 내가 만족스러운 만큼 갖춰지진 않는다.
2017년 파업 기간 동안 MBC 조합 동료들과 함께 작업했던 '마봉춘 세탁소'. 회사 사람들과 함께 하긴 했지만 파업기간에 돈 안 받고 만든 거니 이것도 외도는 맞다.
그 중에서도 내가 만든 이 두 편은 유독 애착이 많이 간다. <사랑하는 가족과 파업을 이야기했다>는 만들면서 나 스스로도 눈물을 많이 흘렸던 영상이다. 영상 속에 나오는 가족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언제 다시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
<방송장악 메이커>는 '프린세스 메이커'로 한 시대를 즐겁게 보냈던 내 유년기의 헌사다. 거기에 못생긴 사람 얼굴을 자꾸 집어넣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열심히 싸웠다. 지금의 MBC가 저렇게 싸워서 얻어낸 만큼의 가치를 하고 있는지는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지만, 적어도 아무 이유 없이 수백명씩 자르고 징계하고 쫓아내는 회사는 더 이상 아니니 나는 일단 그걸로도 싸울 이유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싸움에서 꼭 바꿔야했던 소유구조 개선은 지금도 요원하다. 사장 선임 방식도 조금은 개선된 듯 하지만 큰 구조는 그대로다. 정치권의 영향력이 이렇게 남아있는 구조 채로 다시 정권이 바뀌면 그땐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일어날 텐데.
그리고 그땐, 내가 보고 겪었던 싸움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거다. 조합원들이 함께 싸우고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서 무언가 부딪쳐 볼 수 있었던 건 이 영상들을 만들던 2017년이 마지막인 것 같다. MBC는 꽤 오랜 세월 많은 싸움을 해왔지만, 이제 미디어도 시민사회도 그런 싸움이 가능한 시대가 끝났다. 앞으로의 위기는 다른 방식으로 헤쳐가야 할 것이다.
내가 MBC에 있는 동안, 어떤 한 시대의 끝을 보고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저 영상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이상하다.
회사에서 일로 만든 거지만, 만들면서 처음으로 온전히 즐거웠던, 일 같지 않았던 방송이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정규편성을 받지 못한 아쉬움은 더 크지만, 어쩌겠나 결정이 그렇게 난 걸.
그래도 만들면서 스스로 아쉽거나 후회되는 지점 없이, 온전히 내 작품으로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방송. 이쯤 되면 외도가 아니어도 일이 일이 아니게 된다. 일로 해도 그 어떤 외도보다 마음 속 깊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회사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걸까. 좀 더 '일처럼' 했어야 했을까. <가시나들>이 정규편성이 됐어도 내가 MBC를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돌아보면 저렇게 딱 네 편으로 끝난 게, 할머니들께는 어쩌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 길게, 더 오래 했으면 그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그게 좋은 것이 되도록 애썼겠지만, 어느 순간 내 손을 떠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