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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Aug 07. 2020

어떤 사진예술의 종말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동의 없는 촬영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네팔 산골 마을에서 만났던 어느 노인의 사진이다. 우리 눈에는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이는 것보다 10년 쯤은 젊은 나이일 거다. 네팔 고산촌에 사는 이들은 뜨거운 태양과 고된 노동에 변변한 화장품이나 의료 혜택도 없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아 보인다.

그는 나무를 하고 오는 길이었다. 머리에 보이는 새끼줄은 네팔에서 쓰는 지게다. 네팔의 지게는 무게를 이마에 지고 양쪽 손으로 끈을 잡아 무게를 분산시킨다. 경추에는 분명 안 좋겠지만 어깨에 메는 것보다 고통은 덜 것 같다.


관광지가 아닌 고산촌 마을에 묵는 중이었다. 마을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 오는 일은 극히 드문 곳이라, 온 마을은 물론 옆 봉우리 마을에서도 내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 그도 내 이야기를 듣긴 했을 것이다. 산길에서 마주친 이방인을 향해 너무도 반갑게 내보이는 웃음이 아연했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 물었고, 그는 흔쾌히 허락하며 렌즈를 향해서도 활짝 웃어주었다.


사진작가들이 여행지에서 초상사진, 포트레이트를 찍을 때 동의를 구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매너다. 1달러짜리 지폐를 잔뜩 준비해서 그때 그때 촬영을 허락한 모델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상식이 된 지 오래다. 물론 그렇게 찍은 자신의 사진을 이렇게 블로그에 올려도 된다거나, 전시장에 건다거나, 심지어 판매를 해서 수익을 내도 된다고 그들이 허락한 적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되고 있다.

기술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하는 지역의 이들은 이러한 내용들을 설명해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하라고 끄덕인다. 심지어는 자기가 찍힌 사진을 정작 본인은 영영 보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사진은 나에게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만, 정작 이 초상의 주인은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네팔에서 똑같이 나무를 하며 지내고 있다. 그 사실이 묘하게 불편해, 네팔에서 돌아온 뒤 현지에 계시는 분께 인화된 사진을 본인들에게 전해주도록 부탁드렸다.

이런 지역에서는 사진이 귀하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자기도 찍어 달라고 먼저 다가오기도 자주 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찍은 사진을 바로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그렇게 뷰파인더로 자기 모습을 확인하고는 즐거워하며 돌아간다. 그런 이들에게 인화된 사진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은 몹시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운이 좋은 경우다. 대부분의 거리 사진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초상들 역시 정작 그 초상의 주인은 자신의 얼굴이 그토록 유명하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우리는 그 눈빛으로부터 역사와 정치와 사회와 비극과 희극을 만나지만, 초상의 주인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 초상을 찍은 사진작가가 부와 명예를 누리는 동안 초상의 주인은 자신이 찍히게 된 그 역사와 정치와 사회와 비극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묘한 불편함에 사로잡힌다. 인스타그램이 일상으로 들어온 시대에, 사진 윤리에 대한 감각은 더 이상 포토저널리즘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로버트 카파,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 ]이란 제목의 유명한 사진이다. 포토 저널리즘, 전쟁 사진의 기념비적 사진이다. 이 사진이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진작가가 저 좁은 앵글 안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는 군인의 찰나를 이토록 생생하게 포착해낼 수 있겠는가. 스페인 내전의 한 장면을 담은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은 그러니까 스페인 내전 시기인 1930년 대에 찍힌 이다. 이 시기의 카메라는 지금의 휘황한 디지털 카메라들처럼 가볍지도 재빠르지도 못했다. 그렇기에 이 찰나의 포착은 더욱 경이롭다.

더구나 저 역동적인 포즈, 군인임을 확실하게 확인시켜주는 총과 탄띠의 완벽한 실루엣, 인물의 형태를 보란듯이 부각하는 말끔한 원경. 마치 이 사진을 찍으라고 저 완벽한 언덕 위를 달려와 정확히 프레임 안에 들어서는 순간 총을 맞고 쓰러진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이 사진은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연출이라는 논란에 끊임 없이 시달려 왔다. 참전 중인 군인의 옷이 너무 새하얗다는 주장도 있었고, 언덕을 뛰어오다 총을 맞으면 뒤가 아니라 앞으로 고꾸라진다는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카파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이 사진이 연출이라고 밝혀줄 결정적인 증거는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의심스러울만큼 완벽한 순간의 포착이라는 뜻이기도 할 거다.


이 사진의 연출 여부가 그토록 논란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사진이 놀라운 이유는 이 결정적 순간의 포착에 있다. 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카파 자신이,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 한가운데서, 당시의 무식한 카메라를 들고, 놀라운 순발력과 용기로 마법 같은 타이밍에 셔터를 눌렀다는 사실이 경이로운 것이다. 연출, 혹은 조작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사라진다. 동시에 사진의 가치도 없어진다.


수많은 기록 사진들은 카메라를 든 사람이 그 순간,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중요해진다. 거기서 진실된 순간을 포착해야 가치있는 사진인 것이다.

전쟁사진은 그 시초부터 연출의 영역이었다. 최초의 전쟁사진은 1855년 크림 전쟁에서 탄생했는데, 이는 영국 정부가 파견한 '공식' 사진작가 로저 팬턴으로부터였다. 당연히 그의 임무는 여론을 긍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전쟁을 숭고한 것으로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니 '진실'을 촬영하면 안 되었다.

더구나 당시의 카메라는 15초 정도의 노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성능이 나쁜 스마트폰 카메라로 어두운 밤에 사진을 찍으려면 셔터가 열렸다 닫히는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15초보다는 짧다. 로저 팬턴은 병사들로 하여금 대포를 손질하고 있는 자세를 연출한 채 15초 동안 가만히 있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전쟁터는 사진을 촬영하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다. 그 후로도 많은 순간 연출이 동원되었다. 알렉산더 가드너의 유명한 사진, [어느 반란군 저격병의 집]은 살아있는 병사들에게 연기를 부탁하진 않았다. 다른 곳에 누워있던 시신을 좀 더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는 장소로 옮겨 왔을 뿐이다. 시신 옆에 소총도 가져와 적당히 기대 세워놓고 찍었다. 그러니 제목과는 달리 그 병사는 저격병도 아니고, 당연히 소총도 저격병의 소총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면 실망한다. '가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실망시킨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는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입맞춤]이었을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며 파리의 낭만을 떠올린 많은 사람들은, 이 연인이 두아노에게 일당을 받고 고용된 연기학교 출신의 배우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원성을 쏟아냈다. 두아노는 이 사진이 정말 우연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 스스로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진실된 순간의 포착이라고 믿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TV프로그램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개인 인스타계정에 올리는 사진에서도 프레임 안에 동의한 적 없는 타인의 얼굴이 모자이크 없이 들어 있으면 문제가 되는 시대다. 처음에는 불순한 의도로 촬영하는 범죄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부지 중에 포착된 우연의 순간에도 똑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미디어가 단촐했던 시절, 그것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미미했던 시절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영역이다. 매스미디어의 힘은 오히려 그때가 훨씬 강했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강력한 힘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에게 카메라가 있고, 모두가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도처에 있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찍히며, 일상의 영역에 들어온 만큼 그 사실에 민감하다. 사진 예술의 역사 속에서 변함 없이 사람들이 기대해왔던, '연출 되지 않은 우연의 순간'은 이제 범죄와 무례에 지나지 않는다. '보도 사진'이라는 공익적 목적에도 아주 엄밀한 기준들이 요구되는 시점에, 예술 혹은 여흥의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촬영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기준 아래, 사진 예술의 유구한 장르였던 '거리 사진', '스냅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수만 장의 놀라운 사진 작품을 찍었지만 단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채 그저 평범한 유모로 세상을 떠난 '비비안 마이어' 같은 놀라운 이야기는 이제 수용될 수 없다.

그는 카메라를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 위해 일부러 렌즈와 뷰파인더가 수직으로 이루어져 있는 카메라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카메라를 들어 뷰파인더에 눈을 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사진을 찍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가슴 언저리에 들고 그저 카메라를 살피는 척 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담겨진 순간에는 거리 위 사람들의 진실된 모습이 담겼다.

물론 그들의 동의 없이. 엄연한 도촬이다.

그나마 그가 오늘의 기준에서도 비난을 피할 여지가 있다면 이들 사진을 생전에 한 번도 발표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으며, 당연히 이를 통해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어떤 금전적 이익도 누리지 않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의 사후에 가라지 마켓에서 수만 장의 필름을 발견한 어느 끈질긴 남자 덕분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이 세간에 퍼지긴 했지만.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3983)


카메라를 인지하지 못한 피사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날 것의 순간이 있다. 그렇게 포착한 순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생의 어떤 진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예술과 진실도, 본인의 동의 없이 포착되어 인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반박할 수 없는 맞는 말이다.

포토 저널리즘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 전쟁은 베트남전이었다. 베트남전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이르러 카메라는 마침내 완전한 경량화를 이루어낸다. 이제 연출하지 않아도 전장에서 숨가쁜 사진을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종군기자들은 베트남전의 참상을 코앞에서 촬영했다.

이러한 사진들이 배포된 미국의 시민들은, 숭고한 전쟁을 치러내고 있다고 믿었던 자국의 군인들, 즉 자신의 아들들이 민간인을 향해 이런 참혹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이 사진들은 전쟁사진이 처음 태어났던 시절과 완벽히 반대의 역할을 하게 된다. 베트남전은 미국 내에서 정당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이 전쟁은 미국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패배한 전쟁이 된다.

미국은 이때 배운 교훈을 다음 전쟁에서 완벽하게 적용한다. 걸프전의 보도사진과 영상에서는 그 어떤 시체도, 선혈도, 참상도 노출되지 않았다. 철저하게 통제되었다. 미국의 찬란한 국방력과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첨단 전투 기술만이 영화처럼 화려하게 화면을 수놓았을 뿐이다. 너무나도 영화처럼 연출된 걸프전의 장면들은, 실제 지휘부에 헐리우드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이렇게 세련된 스펙터클은 화면을 보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이토록 강한 나라 미국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불러 일으켰다. 뛰어난 학습자, 미국의 전쟁 성적표는 다시 우수한 점수를 회복했다.


네이팜탄을 피해 나체로 뛰어나오는 저 베트남 소녀의 사진은, 오늘의 보도 윤리 기준에서는 실릴 수 없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을 고발하는 보도사진은 이제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더 많은 윤리적 논란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이제 사진 기자들은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더 많은 고민을 거쳐야 한다.


진실이라 믿었던 입맞춤이 연출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던 기준은, 이제 거꾸로 동의 없이 포착한 우연한 순간이 배포되는 것에 분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동의 하에 이루어지는 연출이 기준이 된 사진. 이제 앞으로의 수많은 사진들은 두아노가 고용한 배우들이나 걸프전의 스펙터클처럼 '재현된 진실'을 담는 것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카파의 사진은 지금의 기준으로는 차라리 연출이어야 비난을 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화면 뒤에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동의의 윤리와 진실성의 추구 사이의 더 치열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어떤 예술은 이제 생명이 끝났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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