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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Sep 03. 2020

모바일 콘텐츠란 뭘까

카카오TV모닝 <톡이나 할까?> 제작기

<톡이나 할까?> 첫 방송을 냈다. 실은 방송이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에 올라가 있는 거라 진짜로 방송을 냈을 때랑은 기분이 다르기도 하다. 플랫폼의 접근성이나 UI가 아직 좀 어수선해서 도대체 보고 싶은데 어디서 볼 수 있느냐는 아우성이 들려오는 건 속상하지만 어쨌든 그건 내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고, TV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을 옮기고 첫 결과물이다.


상반기 내내 모바일 콘텐츠란 뭘까 고민했다. 새 회사에서는 TV PD들을 불러와, '모바일에서도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라 '모바일이라 더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줬으면 했다. 여기엔 익히 알려진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짧은 길이와 빠른 호흡 같은. 그거 말고 뭐가 더 있을까.

'활동사진'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로형 프레임이 아닌 세로형 프레임. 지극히 개인화 된 기기임을 고려한 타깃 공략. 스마트폰 UI를 그대로 활용해 실제 내 전화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같은 현실감 주기 같은 것들.


우리보다 앞서 모바일 전용 콘텐츠를 만들어 온 제작사들도 비슷한 고민의 결과물을 내어놨었다. 여기에 기술이 더 상용화 되면 카메라를 활용한 AR이나 VR, 혹은 아직은 미비한 인터랙티브 시나리오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 때부턴 사실상 게임의 영역과 모호해지고, 그냥 편하게 넋놓고 보고 싶은 '비디오 콘텐츠'의 전통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카카오TV모닝을 제작하는 우리 팀은 일단 세로형 프레임은 취하기로 했다. 가장 확연하게 기존 미디어와 달라 보이는 지점이니까 이걸 전제로 몇 가지 기획을 해보기로. 영상예술의 역사가 가로형 프레임과 함께 발달해 온 만큼 수많은 미장센 이론 또한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밥을 먹으며 일해 온 우리도 이게 익숙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고민을 많이 했다. 세로 프레임만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일까.


영상예술은 가로형 프레임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지만, 시각예술 전반으로 시선을 돌리면 세로 프레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이나 회화 예술에서 세로 프레임이 더 선호될 것이 '인물화'다. 오죽하면 세로형 프레임 자체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portrait'이겠는가. 세로 프레임은 거의 대부분의 앵글에서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인물만큼은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그것도 오직 원샷일 때 만큼은.

가로 프레임에서는 인물이 누워있지 않은 이상 화면 가득 담아내기 힘든데, 세로에서는 부담스러운 클로즈업까지 가지 않아도 인물이 프레임을 가득 채운다. 이럴 때 주는 압도감과 생생함은 확실히 매력이 있다. 일찍이 그걸 발견했던 모바일 콘텐츠 제작자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모바일 콘텐츠의 강력한 브랜드로 자리잡은 딩고의 '세로 라이브'나, '직캠'에서 출발한 아이돌 개별 멤버들의 단독샷 콘텐츠들이 그렇다.


세로 프레임을 떠오르게 만든 또 다른 콘텐츠는 고전 아케이드 게임들이었다. 가정용 TV와 게임기가 보급되기 이전의 비디오 게임은 오락실의 아케이드 게임들이었고, 이 기기들은 과거 카지노나 유원지의 아날로그 게임기로부터 이어받은 세로형 화면을 가지고 있었다. 콘텐츠의 구성도 수직적 동선을 따른다. 종스크롤 슈팅게임들, 플랫포머 게임들. 의외로 세로 프레임의 역사는 꽤 길었다.


나는 인물 원샷 중심의, 수직적 운동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처음 기획할 땐 '뭘 할까'하는 소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떻게 보여줄까'의 방식을 먼저 정하고 소재를 맞춰보기로 한 거다.

거기에 모바일. 회사는 카카오. 그럼 메시지가 수직으로 쌓이는 카톡의 이미지를 활용하되, 인물의 매력적인 타이트 원샷을 보여주자.

포스터에 듬직한 어깨가 내 꺼인 건 비밀.


<톡이나 할까?>는 그렇게 나왔다.


처음 착안한 건 소개팅이었다. 난 소개팅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 번호를 교환하고 카톡에 친구추가를 해서, 말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채팅하는 그 긴장감은 안다.

비슷한 긴장감이 소개팅에 있다는 것도 안다. 카페에 앉아 있을 때 어쩌다 옆자리에 소개팅하는 두 사람이 걸리면 귀가 쫑긋 서곤 했으니까. 조심스러우면서도 적극적인 그 미묘한 분위기는, 일부러 엿들으려 하지 않아도 귀를 파고 든다. 저 둘도 오늘 약속 카톡으로 잡았을 거 아냐. 지금도 저렇게 간질간질한데, 카톡으로 서로 통성명하고 약속 잡을 땐 얼마나 더 그랬을까. 이거야 이거.


재료가 된 또다른 경험은, 내가 카톡을 하면서 느낀 어떤 순간들이다. 대개 사람들은 손으로 쓰는 텍스트와 실제 표정이 늘 상응하지는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카톡창에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를 쓰는 경험은 누구나 매일 한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1이 사라진 뒤 답변을 기다릴 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아주 적절한 농담이 적힌 메시지를 보았을 때, ㅋㅋㅋ와 ㅎㅎㅎ도 고민하는 정중한 사이에서 처음으로 이모티콘이 등장했을 때 긴장이 풀리는 순간들.

그럴 때 나는 혼자 있지만 표정을 짓는다. '현웃'이란 표현이 왜 나왔겠는가. 텍스트로 웃는 'ㅋㅋㅋ'가 아니라 진짜 현실에서 웃음이 터지는 순간. 그 때 우리는 쾌감을 느낀다.


그걸 화면으로 보여주면 분명 볼만 할 거다. 더구나 카톡하는 상대와 어색하게 마주 앉아 있다면, 그런 미세한 표정들, 눈짓 하나하나가 더욱 큰 의미를 가질 거다. 그걸 담아낼 수 있다면 아주 볼만 하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건 실행으로 옮길 만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면 카톡 토크쇼. 이 기획안을 들고 출연자들을 섭외하려고 하니, 이야기를 듣는 사람마다 그게 뭔지 감이 안 온다고 반문했다. '마주보고 있는데 왜 카톡으로 해요?'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말로 설명해서 도무지 알아듣는 사람이 드문 걸 보니, 이게 새로운 기획이라는 것 만큼은 확실했다. 다행이다.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으니까. 이제 알아듣게 설명만 잘 하면 되겠는데.


일단 호스트는 여성이었으면 했다. 타이트한 인물 원샷이 들어갔을 때 화면의 질감 같은 것들은 아무래도 피사체가 여성일 때 일반적으로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단어와 표현을 고르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채팅 대화를 잘 리드할 사람도, 통계적으로 여성 집단에서 찾기가 더 수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체 콘텐츠에서 여성 출연자의 비율을 늘리고 싶기도 했다.

작사가 김이나는 모든 게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단어와 표현을 고르고 다듬는 게 본업인 사람. 게다가 몇몇 방송에 출연했던 것을 모니터 해보니 센스도 탁월했다. 적당히 짓궂기도 적당히 세심하기도 했다. 방송 경험으로는 비교가 안 될 내로라하는 예능인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자기 말을 챙기는 것은, 이른바 '업계탑' 직업인 만이 가질 수 있는 심지가 아닐까 싶었다. '업계탑'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적절한 사람을 찾았으니 자, 이제 섭외만 되면 되는데. 실은 기획안을 전달하고 미팅이 잡히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다. 나는 속을 태우며 미팅 때 조금이라도 더 어필해 볼 수 있을까 그의 책 두 권을 다시 완독했다.

그가 답변하기까지 숙고한 정확한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사실 예능계 전반에 여성 출연자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적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예능 제작진들이 남성 출연자를 더 선호하는 경향도 분명 있겠지만, 여성 출연자들 스스로가 남성 출연자들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까다롭게 섭외에 응하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이 여성 출연자들에게 더 엄격하기 때문이다. 남자 출연자였으면 웃고 넘어갔을 많은 일들이 여자 출연자들에겐 꽤 험한 반응으로 돌아온 일이 잦았다.

그 때문인지 예측 불가능한 기획에 응해주는 여자 출연자는 몹시 드물다. 남자 출연자보다 섭외하기 몇 배 어렵다.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훨씬 더 크니까. 심지어 이 기획은 말로 설명하고 기획안을 보여줘도 뭔지 잘 모르겠다는 말만 수없이 들었는데. TV도 아니고 처음 시작하는 플랫폼에, 처음 해보는 기획. 까일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다.


김이나 씨가 온라인 문화 전반에 해박하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이 기획에 대한 상상을 좀 더 수월하게 해준 듯 했다. 새로 시작하는 카카오라는 플랫폼의 가능성도 훨씬 좋게 봐주었다. 언제 그렇게 속을 태웠냐는 듯 출연을 결정해주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톡이나 할까?'라는 제목까지 일사천리로 나왔다.

박보영 씨가 첫 게스트로 출연해 준 것도 천운이었다. 그 역시 기획안을 받고 꽤나 숙고하는 시간을 거쳤지만, 정작 카메라가 돌아가자 이 기획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내가 이 콘텐츠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첫 회가 이 두 사람의 투샷이라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간질간질 묘한 긴장감의 어색한 대면 카톡. 김이나 씨도 녹화를 거듭해 갈수록 이 상황에 익숙해질 테니, 첫 회에서만큼은 이 느낌을 확실히 뽑아내야 했다. 그게 김이나 박보영이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만약 첫 게스트가 남자로 섭외 됐다면 또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 거다. 이성 간의 간질간질한 느낌은 질감이 좀 달라진다.


계속해서 이런 질감으로 갈 수는 없다. 호스트인 김이나 씨도, 출연하는 게스트도, 보고있는 시청자들도 점차 이 '대면 카톡'이란 포맷에 익숙해질 거다. 프로그램의 입체성을 위해서도 다양한 색깔의 게스트를 섭외해야 한다. 그런 만큼, 처음 기획할 때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그 느낌을 첫 회에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다는 건 큰 복이었다.


'OO은 생물이다'라는 말은 아마, 자기가 있는 업계마다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일 거다. 방송도 생물이라 일단 만들어서 내놓으면 그 때부터는 온전히 제작진의 생각대로만은 되지 않는다. 방송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기 색깔을 쫓아가며 엎치락 뒤치락이 시작된다. 그 과정들도 기대가 된다.


한 가지 다행인건, 이제 첫 회가 나왔으니 더 이상 게스트 섭외할 때 말로 설명 안 해도 된다는 거다. 보여줄 게 있다는 건 참 편한 일이다.


https://tv.kakao.com/v/412097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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