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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Nov 16. 2020

독수리다방 테라스의 남은 이야기들

<톡이나 할까?> 김영하 편, 편집된 대화들.


<톡이나 할까?> 시작 이후 처음으로 게스트와 함께 찍은 사진. 연예인에겐 뭔가 쑥스러운데 작가님에겐 왠지 훨씬 더 부담 없이 들이댈 수 있어서 좋다.

<톡이나 할까?_김영하 편>은 애정이 많이 가는 편이었다. 김영하 작가님의 모교는 내 모교이기도 하니, 모교 인근에서 좋은 촬영장소를 찾는 것은 아주 수월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졸업 이후까지 즐겨 찾아온 '독수리다방'은 작가님에게도 대학시절의 추억이 깃든 만큼 '김영하 편'의 촬영지로서도 적절하면서, 서울에서 보기 어려운 묘한 느낌의 매력적인 풍경도 자랑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그 풍경에 반해 '독수리다방'을 소재로 한 단편도 개인적으로 만들었던 바, 나로서는 즐겁고 그리운 촬영이었다. 마침 그날 나눈 대화들이 풍경과 무척 잘 어우러져 더 좋았다.


실제로 이 편은 방송된 뒤로 캡쳐와 인용이 유독 많이 돌아다녔다. 거의 장면마다 다 캡쳐 했다면서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이 날 유독 두 분이 즐겁게 대화를 나눈데다, 김영하 작가님은 아이패드에 키보드를 가져오는 반칙(!)까지 했으니 대화 분량이 다른 녹화보다 워낙 많았다. 방송 분량에 애매하게 넘쳐서 내지 못한 아까운 대화들을 여기에 옮겨 본다.


1.'갑통알'이 '갑자기 통장보니 알바하고 싶다'의 줄임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김영하: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래요.

               부자들은 재산이 수시로 평가액이 달라지잖아요.


김이나: 오 그래서 작가님은?

              가늠 되시나요???


김영하: 저는 원래 깨알 같이 잘 알았어요.

               매일 아침에 잔고 확인하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김이나: 저도 저도요

               저작권 특히ㅎㅎㅎ


김영하: 맞아요 입금 잘 안 해주는 사람들 있잖아요.

              옛날에는 홈뱅킹도 없어서 입금 됐나 안 됐나

              은행 가서 통장 주고 확인했거든요.

              그런데 분명 입금 됐다는 말 듣고 갔는데

              안 들어와 있으면 정말 화나죠.

            그래서 전화하면 "어? 들어갔을 텐데요?"

            이러는 거예요.

            그럼 또 은행 가고...

            가면 또 없고....    


김이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김영하: 제가 그 회사와는 평생 일을 안 해요.


/ 이 뒤로 '제때 돈 안주는 나쁜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두 분이 한참 나누셨다. 자기 재산이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는 말이 인상적.


2. 강연을 많이 다닌 경험에 대해.


김영하: 강연도 많이 했죠. 그것도 좋았어요.

              강연 가면 자기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싶어하는 분들의 눈이 보여요.

             청중들과 질의 응답 하는 순간을 제가 참 좋아하는데,

              그때 뭐랄까

           당대의 사람들이 절실하게 고민하는 문제들을

             볼 수 있어요.


김이나: 이 얘기 약간 작가님 시간 여행자 같아요

             최근은 뭐던가요?


김영하: 최근에는 강연을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

               작년까지 느낀 것은,

             '불안'이었어요.


김이나: 아하

             그럴만하네요


김영하: 다들 매우 심하게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요. 불안하니까 과도하게 열심히 살고, 노력하려고 하고,

            자기를 혹독하게 밀어붙이고...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하고.


김이나: 그런 시기 없으셨나요?

             저는 자리잡기 전까진 딱 그랬어서


김영하: 저는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편이 아니었어요.

             지금도 저는 인간은 자신의 능력의 100%를

             다 쓰면서 살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런 말 하면 사람들은

             "너는 성공했으니 그렇지." 그러시지만

              그렇지 않아요.

            100퍼센트를 쓰면서 살다가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이 닥치면 대응할 수가 없잖아요.

            능력을 남겨둬야 대응할 수가 있지요.


김이나: 백프로가 얼만큼인지를 몰라서

             조절이 어려울 것 같은데 ㅠㅠ


김영하: "아, 너무 지친다" 싶도록 뭔가를 하고 있으면

                전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쉬어요.


 (중략)


김영하: 그래서 예술이......

             사람들 일 넘 많이 하지 말고 좀 즐기라고.


/ 저자 강연류의 행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을 개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눈'을 본다는 말, '당대의 사람들이 절실하게 고민하는 문제'를 만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늘 '너무 지치는' 110%의 삶을 사는 것 말고는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상처가 될 지도 모르겠다.


3. 작사를 하고 나서, '아이들이 쓸 것 같은 가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육성으로.


"예술가들이 대부분 어떤 경지에 이르면 아이 같음을 추구한다.

할머니들에게 시계를 그려보라고 하면, 저녁 9시부터 아침까지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는, 왜곡돼 있는 시계를 그린다. 자신들은 잠드는 그 시간이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그리는 것이다.

그 시계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같다. 아이처럼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재해석하는 것이 예술의 한 가지 아닐까."


/ 이 이야기가 참 좋았지만, 작사 이후에 육성으로 길게 나누는 대화는 최대한 줄이려다 보니 편집되었다.


4. 프로필 사진

방송 화면에서도 작게 보였을 김영하 작가님의 프로필 사진. 작가님이 직접 그린 '배트맨'이라고 한다. 작가님 인스타그램에도 올라와 있다. 작사에도 배트맨이 등장하는 걸 보니, 촬영 즈음 이래저래 배트맨에 꽂히셨던 모양이다. 차기작이 이상한 바이러스가 퍼진 나라에 대한 이야기라고 살짝 언급했었는데, 거기에 쫄쫄이 입은 자경단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지.


김영하 작가님의 그림 실력은 유명한 편이다. <여행의 이유> 새 에디션에는 직접 그린 표지 그림을 실었을 정도이니. 촬영날 이 프로필 사진을 비롯해 아이패드에 본인이 그린 다양한 그림을 가져오셨는데, 다른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결국 그림 얘기는 못했다. 마당 작물이랑 고양이 사진들만 자랑하다 가셨다. 보통 프로필 사진은 한 번씩 언급을 하는데, 그것도 못 할만큼 작사가님도 대화에 푹 빠지셨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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