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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Dec 06. 2020

가시나들, 1년이 지나고.

해질녘 쌀쌀한 공기에 남순 할머니는 마당에 앉아 찬물에 무를 씻고 계셨다. 등이 작았다. 연락이 닿질 않아 미리 알리지 못하고 찾은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불쑥 인사를 내밀자 화들짝 돌아보고는 누가 온 건지 잠시 눈을 꿈뻑인다. 아이고나, 우째 여길 왔어. 일렁이며 잡는 손이 얼음장 같았다.


추운데 왜 밖에서 이러고 계세요. 무순 할머니 계시면 따뜻한데 잠깐 들어가셔요. 손을 붙들고 아랫집까지 걸어가는 내내 아이고나, 아이고나.

마침 무순 할머니도 방에 계셨다.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어디 한 발짝도 제대로 못 나갔는데, 보건소에서 치매 예방 교육을 받으러 오라고 해서 모처럼 나갔다 온 날이었다고 한다. 그 잠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내내 안절부절하던 남순 할머니는 이내 버티지 못하고 또 냅다 어디로 나가신다. 금방 들어오시겠거니 싶었던 시간이 지나 따라 나서보니, 처마에 널어놨다가 다 마르지도 않은 곶감이며 사과를 정성스레 싸고 계셨다. 지난 번 왔을 때 빈손으로 보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앉아 얼굴 보는 것보다 한 상자 싸서 보내는 게 더 급한 마음.

우째 우리 같은 사람들을 안 잊어묵고 여기까지 왔어. 잊을만 하면 한 번씩, 무순 할머니는 이 말을 계속 되뇌었다. 잊어버리긴요. 제가 어떻게 잊어버려요.

작년 봄에 한 번 왔다가, 여름에 옥수수 먹으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참이었다. 8월 즈음 정말로 가려고 미리 연락을 한 번 드렸더니, 그 날은 추석을 앞두고 가족들과 벌초를 하러 갈 참이라 안 계신다고 했었다. 그렇게 한 번을 놓치고 나면 다시 날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일상은 늘 쉼 없이 몰려든다. 그렇게 시기를 놓친 채 거의 1년을 보냈으니, 무순 할머니는 우리 같은 사람들 벌써 잊어묵었을 거다, 하고 서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계속 마음을 쓰고 계셨구나. 머릿속에서 자꾸 말이 맴돈다. 우째 우리 같은 사람들 안 잊어묵고 여기까지 왔어.

코로나는 울타리가 낮은 곳부터 찾아든다.

문해학교와 노모당은 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일상을 찾고 사람을 만나며 생기를 얻던 할머니들은 혼자 누울 방으로 돌아왔다. 여름 내 비가 왔다. 방에 머물러야 할 이유만 많았다. 설레던 학생은 사라지고 노인이 남았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에 윤기가 부쩍 메말랐다. 원래 사회활동이 많은 편인 승자 할머니, 판순 할머니는 그래도 힘이 있었다. 점금 할머니는 백내장 수술이 영 자리를 못 잡았는지 시종 눈물이 나왔다. 눈이 시큰거려 글자는 못 보신다고, 공부는 다시 접었다고 한다. 동윤이가 사놓은 안경도 무용지물. 다시 병원에 가보시라 종용했지만 겁이 나시는지 한사코 이제 됐다신다. 귀찮아도 이래 살라꼬.  아니 남은 날이 한 5년이면 몰라도 30년은 더 사셔야 되는데 눈이 그래가 어찌 사실라고요, 해도 아이고 몰라. 노인들은 병원에 쓰는 돈이 매번 그리 귀하고 아깝다.


무순 할머니는 허리가 더 많이 안 좋아지셨다. 어디 읍내에도 마음대로 못나가니 마음에도 병이라신다. 배달도, 인터넷도 없는 산골에 사람 발길이 못 지나가면 그대로 세상과 끈이 끊어진다. 치매예방 교육은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혼자 지내는 게 제일 나쁜 병. 가시나들 촬영이 좀 더 길어졌다면 나았을까. 아니, 역병이 돌면 제일 먼저 그것부터 멈춰야 했을 거다.

그래도 치료약도 나오고 한대요 이제. 나아질 거예요. 자신 없이 말해 본다. 1년 뒤면, 2년 뒤면 모든 것이 돌아올까. 노인에게 말할 때는 그 거리가 다르게 다가온다. 날 풀리고 또 올게요. 그때까지 꼭 건강하세요. 응, 그때까지 안 죽어.


확진자가 나올 리 없는 작은 마을에도 마스크 안 쓴 사람 하나 볼 수 없었다. 찻집에 모시고 가도 찻잔에서 입을 떼면 마스크를 올렸다. 조심스레 문해학교를 다시 시작하며 찍은 사진 속에서도,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에도 모두 마스크. 지키자는 대로 착실히 지키고 있는 분들에게도 코로나는 일상을 깊숙이 묻어버렸다. 긴 휴교를 지나는 동안 학생 수는 부쩍 줄어있었다.


그래도 군청에서 나와 노인들 매주 와서 들따보고 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손톱도 칠해주고 갔는데 다 벗겨졌다고 한다. 학교도 다시 시작하고, 노모당도 조심스레 다시 열린다. 올해 안에 배정된 예산을 써야해서 급식도 다시 시작했다. ZOOM도 배달의 민족도 마켓컬리도 없는 곳에 세금이 있어서 다행이다.


곶감이 무척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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