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성민 Dec 07. 2020

존재하지 않는 선의에 의존한다면.

<더 보이즈>, 아마존프라임비디오.

1. 도로에서 거대한 대형트럭을 만나면 그 거대한 몸집에 일단 공포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운전하는 방식이 상당히 위협적일 때가 많다. 몸집이 큰 만큼 같은 이동을 하는데 시간도 공간도 훨씬 많이 필요한데, 그래서 보통의 차들처럼 배려하며 운전했다가는 차선 한 번 제 때 바꾸기도 어렵다보니 어느 정도는 그냥 밀고 들어와버리는 거다. 그럼 다른 운전자들은 반강제로 대형차량에게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대형차량 운전자들의 매너가 거칠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실제로 그런 거대한 차량을 운전하다보면 다른 차들이 '같잖아' 보일 때가 많다고 한다.


사실 도로 위에서의 안전규칙 준수란 준법 이전에 상호 간의 안위를 위해 이루어진다. 내 과실이 전혀 없는 사고라 하더라도 일단 부딪히면 차 망가지고 수리비 들어 성가셔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나도 다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아무리 매너 없는 운전자를 만나더라도 일단 나 다치기 싫으니 양보할 수 밖에 없는 거다.

내가 도로 위에서 난폭 운전을 했는데도 무사히 목적지까지 도착했다면 내 운전실력에 감탄할 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이들의 양보를 받았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건 도로 밖 일상의 인간관계에서도 반영된다.


근데 대형특수차량의 입장에서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이 차들은 어지간한 차랑 부딪혀도 별 문제가 없다. 차가 좀 상하기야 하겠지만 내가 다칠 걱정은 거의 안해도 된다.

이렇게 되면 이런 차를 운전하는 이들에게 안전운전은 순전히 호의다. 보통의 차라면 난폭운전 하는 차가 보여도 사고나면 내 손해니까 참고 양보해야 하지만, 내가 다칠 걱정이 없는 대형차 입장에서는 난폭운전하는 차와 부딪치지 않는 건 그냥 봐주는 거다. '같잖으니까.' 이들에게 두려울 건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른 민형사상의 책임 뿐이지 자신의 안위는 아니다. 이 차들 앞에서 내 안전은 순전히 이들의 선의에 달렸다.


2. 만약 인간의 신체능력을 압도적으로 뛰어넘는, 그러니까 도로 위의 대형특수차량 같은 히어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들을 만날 때 나의 생사여부도 오로지 이들의 선의에 달린다.

<어벤져스>의 한 장면처럼 어느 패스트푸드점에서 우연히 헐크를 마주친다면, 반가움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껴야한다.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어디까지나 그의 선의에 달렸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한 손으로 내 목을 꺾을 수 있으니까. 그가 그러지 않을 이유는 그저 선의, 혹은 민형사상의 책임 뿐이다.

그러니까 헐크를 만난 장면은 연예인을 만나서 신난 장면이기 보다는, '안물어요'라고 확인시켜준 대형견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는 장면에 가까워야 한다. 반갑고 좋긴 한데 언제든 얘가 나를 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뒤섞인.

일상적으로 만나는 개보다, 말을 실제로 쓰다듬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실감할 수 있을 거다. 순한 눈망울을 하고 있지만 내 눈높이를 거뜬히 넘어서는 이 거대한 동물은 '푸르릉'하는 콧소리마저 얼마나 크고 위협적인지 모른다. 신기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이 묘한 긴장의 감정. 보통 '경외감'으로 표현되는 이 감정의 영어 번역은 'fear'다.


3. 이 긴장감을 마블히어로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의 <더 보이즈>다. 'DC 히어로즈'의 간판스타인 '저스티스 리그'를 대놓고 패러디해 옮겨온  <더 보이즈>의 '세븐'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초능력 히어로가 실존한다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상상을 보여준다. 모두가 선망하는 이 수퍼스타를 자본이 그냥 둘 리가 없고, 그리하여 이들은 사회, 문화, 엔터테인먼트를 총망라하는 거대한 아이콘이 된다.

생각해보라. 물리적으로도 초인이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모든 지지를 받고 있다면, 보통 사람들이 얼마나 '같잖아' 보일지.

사람이 어떤 의미로든 '파워'를 갖게 되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로 증명되어 왔다. 그래서 이 드라마 속 초인들 또한 이런 쓰레기들이 없다. 이미지 관리하느라 예의바른 척 나이스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보통사람들의 목숨값'이 하찮아진지 오래다.

사실 이게 더 현실적인 묘사라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간단하게 수많은 목숨을 살리다 보면 그 목숨의 가치가 시나브로 가볍게 느껴질 수 밖에. 어마어마한 파워를 당연하게 가진 이들은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이렇게 오만해질 수 밖에 없다.

'한 달 2,000원이면 살릴 수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생명' 같은 문법으로 구호단체가 끊임 없이 재생산하는 빈곤포르노가 수혜자의 인권 뿐 아니라 광고를 보는 이들의 영혼에게도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마블/디씨가 그리는 수퍼히어로들이 대단한 것은 그들이 가진 수퍼파워 때문이 아니라, 그런 수퍼파워를 갖고 있으면서도 '보통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힘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우리는 이미 수퍼파워도 아니고 고작 알량한 인기나 권력을 조금만 얻어도 쉽게 변해버리는 사례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나 자신도 그런 걸 얻게 되면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4. 우리가 사회 윤리를 준수하면서 사는 것은 물론 선의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 '나도 손해볼까봐'다. 마음 내키는 대로 했다가는 어디가서 두드려 맞거나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사회를 굴러가게 만드는 건 가식과 위선이다. 도덕과 윤리는 많은 경우 선의와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좆될까봐' 지켜진다. 배려는 눈치가 만드는 거다.

그런데 이런 초인들 입장에서는 적어도 맞을 걱정은 없다. 그러니 이들을 마주할 때 나의 물리적 안위는 오로지 이들의 '선의'에 달렸다. 혹은 민형사상의 책임이나.


<더 보이즈>는 이 히어로들의 실체가 얼마나 쓰레기인 지 알려줌과 동시에 이들의 물리력이 얼마나 강력한 지를 계속해서 실감나게 묘사한다. 덕분에 시청자는, 보통사람이 이들 앞에 서서 대화하는 장면마다 묘한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평온하고 일상적인 장면이어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얘기하다 수틀리면 한 방에 죽을 수 있거든. 근데 하필이면 성격도 더러워. 긴장이 안될 수가 없다. 이게 현실에 히어로가 존재한다면 느껴야하는 진짜 감정이다.


5. 근데 히어로가 없는 현실에도 현격한 물리력의 격차는 이미 일상 속에 상존한다. 성차다. 남성과 여성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수많은 서술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지만, 신체적인 차이는 분명한 현실이다.


나는 남자 중에서 별로 힘이 센 편이 아니다. 팔씨름 같은 걸 했다하면 어지간하면 진다. 아내는 운동을 꽤 좋아한다. 헬스장에 다녀와서 나에게 단단해진 이두삼두를 만져보라는 게 즐거움이다. 하지만 내가 아내와 팔씨름을 하면 허무하리만치 쉽게 내가 이긴다. 어라? 하는 긴장의 여지도 없이, 온 힘을 쓰는 아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큰 힘 들이지 않고 내가 이길 수 있다. 반대입장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 힘의 차이가 주는 느낌을 떠올리기 어려울 거다.


물론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내가 죽었다 깨나도 못 이기겠다 싶은 여자도 종종 본다. <더 보이즈>에서도 히어로들의 실체를 깨달은 보통사람 주인공 몇명이, 아주 가끔 히어로를 제압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 역은 정말 많은 노력과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이루어진다. 무방비의 세팅이라면 <더 보이즈>의 주인공들은 히어로 한 명에게 순식간에 끔살이다. 보통의 여성은 보통의 남성에게 물리력으로 손쉽게 제압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보통의 여성에게 물리적인 의미에서 자신의 안위는, 마주치는 남성의 선의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아진다.  <어벤져스>에서 헐크를 보고 반갑게 달려드는 아이들처럼, 저 상대를 잘 알고 나를 해치지 않을 거란 확신이 필요하다. 아무리 순한 얼굴을 하고 있고 '안물어요'라고 해도 쓰다듬으려면 긴장될 수 밖에 없는 대형견처럼, '선의'가 사라지는 순간 언제든 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인 것이다. 심지어 여성이 당하는 많은 폭력은 확신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이로부터 가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본질적인 두려움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런 사람은 <더 보이즈>에서 저 또라이 히어로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도 얼마나 긴장이 되는 지를 느껴보면 어떨까.


헐크처럼 확실히 안전하거나, 그나마 <더 보이즈>처럼 나쁜 새끼인걸 확실히 알면 피할 수라도 있지. 대부분 일상에서 무작위로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걸 알 도리가 없다는 게 문제다. 언제 서울역에서 내 뒷통수를 후려칠지 모르는 일이다. 아무 남자 뒷통수는 함부로 갈겼다간 굉장히 귀찮아질지도 모르지만, 여자는 어지간하면 쉽게 제압할 수 있어서 '같잖아' 보일 테니까.


6. 일상에서 체급이 다른 수퍼히어로들은 또 있다.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는 수많은 재벌기업들이 <더 보이즈>의 히어로들과 비슷한 취급이다. 이들은 늘 선량한 얼굴을 하고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히어로에게 그러하듯 이들에게 열광하고 있지만, 실체가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야 모두가 알고 있다.

이들 또한 수없이 선의를 내보인다. 사회공헌사업을 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한다. 그게 다 거짓말이고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 자체로 선이다. 어느 정도는 가식이겠지만, 말했듯이 사회는 가식과 위선으로 굴러간다.

하지만 이것이 선의로 존재하는 이상, 그 선의를 거두어 버리는 순간 그 선의의 수혜자였던 이들은 한순간에 무력해진다. 그 어마어마한 재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실존하는 수퍼파워인데, 이 수퍼파워가 내 편이 아니게 되는 순간부터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7. 그저 보이지 않는 '선의' 말고 이걸 제어할 수 있는 또 한 가지가 결국, 민형사상의 책임이다. 이게 물리력 이상으로 분명하고 무시무시해지면 함부로 그럴 수 없어진다.


<더 보이즈>도 결국 시스템의 힘을 말한다. 무소불위의 존재 같았던 히어로들도 결국 시스템 앞에서 제어당하고, 또 다른 히어로들은 수퍼파워를 넘어 이 시스템을 장악하기 위해 움직인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천민자본주의, 황색저널리즘, 레드넥으로 대표되는 극우진영을 비판하는 듯 하면서, 동시에 리버럴을 자처하는 진영 또한 자본과 엮였을 때 별다를 바 없다는 듯이 대놓고 비꼬는 이 드라마의 태도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즘이 그러한데,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이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안일하게 이용하는 것을 비아냥거리면서도, 동시에 그렇다고 자신들이 그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듯 한 발 더 나가는 연출을 확실히 보여준다. 교묘하고 영리한 드라마다.

대놓고 DC히어로즈로부터 비롯된 '수퍼히어로 산업'을 비꼬는 듯 하다가, 후반부에 가서는 미국의 특정 스타 정치인들을 대놓고 모사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 이 모델들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해 나갈지 더 기대가 된다.


8. 물론 세상에는 생각보다 선의를 가진 사람이 많다. 그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위안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가시나들, 1년이 지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