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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성민 Dec 17. 2017

무지랭이의 언어로 이야기 해보는 영화 속 천문학(1)

영화 [인터스텔라]

고등학교 때, 수학을 참 못했다. 언어나 외국어는 비교적 쉽게 느껴졌기에, 다 제껴놓고 자율학습 시간 내내 수학만 파도 점수는 오르질 않았다. 해도해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들고 선생님을 찾아가기도 했고, 수학만큼은 눈 감고도 풀어내는 친구에게 매달려 괴롭히기도 했다.
다만 그들의 설명은 도무지 와닿지가 않았다는게 문제다. 내가 한참 씨름한 문제를 눈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순식간에 풀어내 버리는데, 허탈한 건 둘째치고 '아 나는 죽었다 깨나도 저 방법을 생각해낼 수는 없겠다' 싶은게 요점이었다.

오히려 귀에 들어왔던건 차라리 나랑 점수가 비슷한 친구들의 설명이었다. 나나 그네나 수학머리는 애초에 글러먹었던지라, 출발하는 지점도 비슷했고 막히는 곳도 근처였다. 덕분에 그 길을 거쳐 어렵사리 문제를 풀어낸 친구들의 해법은, 그야말로 내 눈높이에 꼭 들어맞고는 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거쳐 수학을 나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나를 벙찌게 만든 수학쟁이들은 한 눈에 스윽, 문제의 구조를 파악하고는 내가 발견하지 못한 어느 언저리에 숫자를 밀어넣는다. 자물쇠를 따듯 그들이 풀어내는 수학은 마치 퍼즐과도 같아 보였다.
그들에 비해서 내가 잘했던 영역은 언어였다. 결국 수학도, '언어'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 내 수학점수가 오른 지점이었다. 복잡한 퍼즐처럼 보였던 기호와 부호들은 실상 '다른 언어의 문자'였고, 이를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생각하자 퍼즐이 글로 읽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화제목을 걸어놓고 엉뚱한 수학공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변이다. 내가 잘 모르는, 그것도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낮은 이해수준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 비슷한 수준의 이해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 가치있을 때도 있다. 각본작업을 위해 물리학까지 수강했다는데, 영화 전반에 녹아있는 물리학, 천문학적 지식들에 대해 불친절한 [인터스텔라]는 딱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물론 그걸 다 설명하려들면 상업영화가 아니라 EBS 대학물리 방송특강쯤 될테니 '이론을 영화에 구현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긴 했지만, 영화 볼 때는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드라마에 집중해달라'는 감독의 요구이기도 하다.

사실 상당한 자문과 연구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가득한 '영화적 허용' 때문에 전문가들의 눈에는 [인터스텔라]도 결국 상상력으로 가득찬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그럴 듯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한 상상력. 그런데 물리학, 천문학에 대한 아무런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에게는 반대로 특별한 설명도 없이 난무하는 개념들이 낯설기만 할테다.

'각본 작업하려고 물리학을 수강했다던데. 영화제작하다가 오히려 학계에 영향을 끼쳤다던데' 그 와중에 영화 홍보를 위해 동원된 각종 일화들이 뇌리를 스치며 도대체 어디까지가 이론의 구현이고 감독의 상상인지 갈피가 안잡힌다. 물리학 지식은 어차피 장식일 뿐 결국 영화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감독의 뉘앙스에 동의한다면 쿨하게 신경꺼도 좋겠다. 하지만 영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지식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본다면 설명도 안해주고 자기들끼리만 알 수 없는 대사를 주고 받는 주인공들이 살짝 덜 재수없어 보이지 않을까.


해서, 내가 여기저기서 읽고 배웠던, 그래서 영화를 보는데 도움이 되었던 내용들을 '무지랭이의 언어'로 적어둘까 한다. 강조하건대 '무지랭이의 언어'다. 곁가지를 치고 나간 본격적인, 나도 잘 모르는 무수히 많은 얘기들은 건너띄고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이해만 이야기해보자.


(*이 글에는 아직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원래 스포일러 내용까지 포함된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잘랐어요. 그래서 영화의 결정적인 내용들에 대한 언급은 없으니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 빅뱅
일단 우주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현재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빅뱅 우주론'이다. 거대한 에너지가 크게 꽝!(Big BANG!) 하고 폭발하면서 우주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우리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태양을 커다란 화산이라고 생각해보자.

팽팽하게 차오른 땅 밑의 지열과 가스가 어떤 이유로 지층을 뚫고 솟아오르면서 엄청난 양의 가스를 뿜어낸다.
당연히 땅을 뚫고 나왔으니 용암 덩어리, 혹은 용암에 뒤범벅이 된 암석 덩어리들이 지글거리면서 공중을 날아 온갖 곳에 떨어진다. 떨어진 곳이 바다라면, 용암덩어리는 물에 닿으며 급속도로 식어서 굳어버리고 그대로 작은 섬이 되기도 한다. 이 거대한 화산이 태양이라고 한다면 튀어나가 식어 굳은 섬들이 지구를 포함한 우리 태양계의 행성들이다.
우주도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을 거라는 얘기가 빅뱅 우주론이다. 단순히 별과 행성들이 그렇게 태어나기 때문에 우주도 비슷할 거라고 때려짐작하는 것은 아니다. 관측, 그러니까 눈으로 본 내용들을 바탕으로 얻어낸 결론이다.
1929년에 이 관측을 한 사람은 허블이라는 사람인데, 몇 년에 걸쳐 은하들을 관측하다가 은하들이 죄다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중요한 건, 죄다, 전부 다 멀어지고 있다는 거다. 지구로부터만 멀어지고 있는게 아니라 은하들끼리 서로의 거리도 멀어지고 있다. 심지어 멀리있는 은하일수록 그 멀어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모든 은하가 서로 다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왜 중요하냐면, 이런 거다. 공간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면 '모든 은하'가 서로 멀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림의 사각형을 일정한 공간이라고 할 때, 이 공간이 균일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 한 은하와 멀어질 때 반드시 다른 은하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A, B, C 각각의 은하가 서로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면 이들은 그 바깥에 있는 또 다른 어떤 은하에는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도 마찬가지다. 저 그림 안에서 별들을 아무리 잘 계산해서 움직여도 어느 두 별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만큼 다른 어느 별에는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
그럼 모든 별이 서로에게서 죄다 멀어지려면? 공간이 확장하면 된다. 저 테두리를 이루는 사각형이 커지기만 하면 간단하다. 천문학에서는 이 현상을 대중적으로 설명할 때 '풍선 위에 찍어놓은 여러개의 점들'을 즐겨 인용하는 것 같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다.

바람 빠진 풍선 위에 여러 개의 점을 찍어놓고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으면, 풍선이 부풀어 오르면서 면적이 커지고, 자연히 점들 사이의 거리도 멀어진다. 모든 점들이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풍선이 계속 부풀어 오르는 한 서로 가까워지는 점은 없다. 또 서로에게 멀리있는 점일수록 더 빨리 멀어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허블의 관측은 우주 전체가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풍선과도 같다고, 다시 말해 우주는 점점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우주는 고정되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점점 팽창하는 운동을 하는 유동적 공간이다."

이 사실이 어떻게 빅뱅을 증명하는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팽창하는 우주를 머릿 속에 그려보다가, 이번에는 비디오를 되감기하듯 거꾸로 돌려보자. 그럼 우주는 점점 쪼그라든다. 점점 쪼그라드는 우주를 계속 뒤로 돌려보다보면 마지막에는 한 점에 이를 것이다. 비디오가 다 감겼다. 이제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한 점으로부터 우주가, 펑! 하고 팽창하기 시작한다. 우주의 탄생이다.


(*내가 제법 독실한 신앙인인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조금 의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조주를 믿는 사람이 빅뱅을 우주의 탄생이라고 하다니. 헌데 창조주 신앙과 빅뱅 우주론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창세기 1 : 3)" 펑-! 빅뱅 발생. 그 뒤로 묘사되는 창세기의 서술들을 보면, 묘하게 별의 형성 과정, 생물의 진화 과정과 겹치는 느낌을 받는다.

빅뱅 우주론은 빅뱅으로부터 어떻게 우주가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할 뿐, 그것을 '누가' 일으켰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신앙이 들어서야할 자리는 거기라고 생각한다. 간혹 창세기에 나오는 '7일 창조'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종종 본다. 첫째날, 둘째날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건 '넷째날'이다. 그나마도 극지방에서는 여름 내내 낮이고 겨울 내내 밤이다. 고대 문명권에서 활용하던 24시간 단위로 전 세계 표준시를 정한 건 1972년이다.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첫째날, 둘째날'이 하루일 지 10억년일 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학은 관찰과 논리로 증명하는 것이고, 신앙은 삶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그리스도인들은 빅뱅우주론, 진화론과 싸우기보다는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데 힘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


/ 중력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끝없이 팽창해서 결국에는 그 밀도가 옅어져 점점 흐트러 사라질 지(텅 빈 우주), 팽창할 수 있는 임계치에 다다른 채 힘의 평형을 이루며 그대로 유지될 지(편평한 우주), 아니면 하늘을 향해 던진 공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팽창하는데까지 팽창하다가 다시 쭈그러들기 시작할 지(닫힌 우주)는 아무도 모른다.

(이미지출처: 이석영,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물론 우리는 기껏해봐야 앞으로 100년 정도 살게 될테고, 어느 정도 직접 관계가 있다고 할 만한 후손도 그래봐야 100년일테니 우주의 최후 같은 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상과학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물리학자들은 궁금한가보다. 저 그래프의 기울기 값이 얼마가 될지를 계산할 수 있다면 우주의 정체를 조금 더 알 수 있으니.
우주가 팽창하고 있는 속도는 관측을 통해서 측정이 가능하다. 팽창하려는 힘만 있다면 당연히 끝없이 팽창하는게 맞을텐데, 어째서 기울기가 줄거나 아예 다시 감소해버리는 가능성을 생각하느냐면, 우주에 존재하는 또 다른 힘인 '중력'이 있기 때문이다.


중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대로 지구가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이다. 중력은 질량이 존재하는 곳에서 나타난다. 이 힘을 처음 언급한 것은 뉴턴이다. 그는 '만유인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걸보고 깨달았다는게 이거다.

"사과가 땅에 떨어진다. 왜지? 아! 땅이 끌어 당겼구나!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 당기는구나! 그렇구나! "

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냐고? 그건 모른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눈 앞에서 사과가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과학의 출발은 관찰 아닌가. 이제 이걸 설명을 해야한다. 왜 사과가 떨어지는지 설명을 하려다보니 모든 물체는 서로 끌어당긴다고 한거다. 그리고 거기다 '만유인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렇게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일단 질량이란, 말 그대로 '물질의 양'이다. 물질이 거기 있으면 그만큼의 질량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사실 거의 같은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먼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무'인 공간을 상상해보자. 거기에, '질량'을 가진다고 말하기에도 어려운, 아주아주아주아주 작은 먼지 단위의 물질들을 뿌려보자.

뭔가 있긴 있는데 있다고 하긴 어려울만큼 미세한 물질들이, 무한한 공간에 퍼져있다. 이 물질을, 편의상 초등학교 과학실습 시간에 만져봤던 철가루라고 해볼까. 그럼 무한한 공간에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미세한 철가루 입자들이 퍼져 있는거다. 그럼 여기에, '보이지 않는 자석, 그 힘 자체'를 던져넣는다면? 자석 주변에 있는 철가루들이 자석으로 뭉치게 되고, 비로소 '물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만큼의 덩어리가 생겨날 거다. 이 철가루들이 질량,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석의 힘이 중력이라고 할 수 있을거다.


애초에 우주는 무한한 공간이다. 근데 거기에 '질량'이 존재한다는 말은, 어떤 힘에 의해 아주 작은 입자 단위의 물질들이 뭉쳐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질량의 존재는 곧 중력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 만유인력이라는 힘의 정체가 좀 그려진다. 질량이 먼저 존재하고, 그 질량들이 중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중력이 존재하기에 질량이 있을 수 있는거다. 그리고 물질을 뭉치게 만들어 질량을 형성하고도 남은 힘으로, 주변의 다른 사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보면 좀 이해가 간다.


어쨌든 그 설명대로라면 지구는 사과를 끌어당기고, 사과는 지구를 서로 끌어당긴거다. 근데 왜 서로 당겼는데 사과만 지구 쪽으로 움직였지? 지구가 사과보다 훨씬 무거우니까. 서른살 삼촌하고 네살바기 조카가 손 붙잡고 서로 땡기면 조카만 휙 딸려온다. 삼촌은 꿈쩍도 않는다. 그러니까 질량이 무거운 쪽의 당기는 힘만 살아남는다. 그게 곧 중력이 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모든 질량이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작동하는데,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중력은 어느 정도 큰 질량에서부터가 될 거다. 빅뱅으로부터 시작된, 그리고 각각의 행성들이 자신들의 태양으로부터 태어날 때 받은, '바깥으로 팽창하려고 하는 힘'과 그 '태양의 중력'이 만나면 공전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공전은 말하자면 딱 이거다.

성경에 등장하는 돌팔매 지존 다윗이다. 저걸로 골리앗을 때려잡았다. 고대 이집트로부터 사용되어 온 저 돌팔매 무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방식이 지구를 비롯한 천체의 공전 원리와 비슷하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경우라면 돌팔매를 쥔 다윗의 손이 태양,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돌이 지구, 그리고 둘 사이를 연결한 돌팔매 줄이 태양의 중력에 해당한다.

태양이 폭발할 때 태양으로부터 수많은 별조각들이 튕겨져 나왔다. 그런데 동시에 태양은 강력한 중력 또한 지니고 있다. 해서 튕겨져 나온 힘이 너무 약한 별조각들은 중력에 이끌려 다시 태양 속으로 끌려들어갔고, 튕겨져 나온 힘이 너무 강한 별조각들은 태양의 중력권 밖으로 벗어났다. 그리고 튕겨져 나가려는 힘과 끌어당기는 태양의 중력이 비슷하게 평형을 이룬 별조각들은, 그 운동에너지의 방향이 뒤틀리며 빙글빙글 돌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돌기 시작하면 안정적인 궤도를 그리며 똑같은 속도로 공전운동을 시작한다. 속도가 줄어들지 않고 공전궤도를 그리며 안정되는 이유는, 우주공간에 마찰이 없기 때문이다. 중력과 마찰이 존재하는 지구에서는 공을 던지면 어느 정도 날아가다가 떨어지지만, 우주공간에서 공을 던지면 다른 무언가에 부딪히지 않는 한 영원히 똑같은 속도로 날아간다. 물론 공을 던진 사람도 반작용 때문에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영원히 날아간다(...)
[인터스텔라]와 즐겨 비교되는 두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그래비티]는 이 무중력, 무마찰의 공포를 굉장히 잘 보여준다.

어쨌든, [인터스텔라]의 주인공들이 어느 행성에서 긴박하게 탈출하는 장면에서 "됐어! 궤도를 벗어났어!"라며 소리치는 대사를 들을 수 있다. 비행선이 중력권을 탈출하려는 힘이 중력의 힘보다 강해서, 중력권을 벗어나는 순간이다. 즉 돌팔매의 줄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이 순간부터는 엔진을 꺼버리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 방향만 제대로 잡혀있다면 말이다. 우주공간에서 한 번 방향을 잡은 운동에너지는 그대로 영원히 등속운동을 하니까.


후에 아인슈타인은 '질량이 있는 곳에는 중력이 생긴다'는 말을 뉴턴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질량의 존재는 시공간을 일그러뜨리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이게 뭔소릴까. 시공간이 일그러진다는게 어떤걸 말하는걸까. 우주의 팽창을 설명한 풍선그림처럼, 이 알 수 없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 매번 동원되는 그림은 이거다.

(이미지출처: http://scienceblogs.com/startswithabang/2013/05/01/putting-einstein-to-the-test/)

대박 간단하다. 이해가 한 방에 될 것 같다. 우리한테는 3차원인 공간을, 2차원인 면으로 바꿔서 상상해보면 이런 그림이 될 거라는 얘기다. 매트리스 위에 공을 올려놓은 느낌이다. 근데 사실 우주공간은 마찰력도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비어있는 공간이라 매트리스처럼 휠게 없다.


그럼 일그러졌다는 '시공간'은 무엇인가? 일단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우주공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힘'들이 온갖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빅뱅으로부터 팽창하고 있는 우주의 힘, 각각의 별과 행성이 가진 중력과 운동에너지, 원심력 등등. 또 우주 공간에서 우리가 다른 별들을 관측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별로부터 출발한 빛이 우주공간을 날아와 우리의 망막에 맺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빛이라는 물질'이 이동할 수 있는 전자들도 흐르고 있는 우주다. 비어있는 공간이지만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일단은 대충 이해해보자. 그럼 어쨌든 그런 알 수 없는 것들로 구성된 매트리스 위에 지구라는 공을 올려놓는 상상은 할 수 있을테다. 많이 무거운 공을 올려놓으면 매트리스가 많이 파일테고, 덜 무거운 공에는 덜 파이겠지.

그럼 그 매트리스 위로 작은 구슬을 하나 굴린다고 해보자. 요긴하게 잘 굴려서 B 위치를 지난다면 지구나 달의 중력에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다 A 위치로 굴러들어갔다고 해보자. 그럼 지구의 질량으로 시공간이 일그러져 생긴 중력 때문에 지구 쪽으로 끌려들어간다. 이때 구슬이 굴러가던 힘이 별볼일 없으면 그대로 굴러들어가 지구에 부딪힐테고, 그건 곧 운석이나 유성에 해당한다. 어찌어찌 중력을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이 힘이라면 끌려들어가지는 않은 채 지구 주위를 빙글빙글 돌게 될테고, 그럼 위성이 되는 거다. C의 위치를 지난다면 달의 질량에 의한 중력의 영향을 받을 거고, 그럼 똑같이 달에 부딪히는 운석이 되거나 달의 위성이 될테지.


자 그럼 이 매트리스 위에 올려놓은 공의 무게를 미친듯이 늘려보자. 위에서 누른다는 느낌으로. 엄청나게, 막 땀 나게, 얼굴 시뻘개지도록, 이 공으로 매트리스를 짖이겨버리겠다는 심보로 누르면, 정말 매트리스가 뚫려버릴지도 모른다. 블랙홀이다.

(이미지출처: http://scienceblogs.com/startswithabang/2012/05/10/why-youll-never-escape-from-a/)


/ 블랙홀
블랙홀은 압도적으로 거대한 질량의 별이 만들어낸 강력한 중력 현상이다. 이 중력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면 가장 빠른 물질인 빛도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 눈에 무언가가 보인다는 것은, 그 물체로부터 출발한 빛이 날아와 우리 망막에 맺히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블랙홀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 빛은 중력을 탈출하지 못하고 결국 우리 눈까지 이를 수 없다. 때문에 이에 해당하는 영역은 그저 새까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블랙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매트리스 비유'를 계속 가져온 나머지, 마치 블랙홀이 2차원 평면을 뚫고 지나간 구멍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우주 공간은 2차원 평면이 아니라 3차원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우리에게는' 3차원이다), 구멍이 아니라 시커먼 공에 가깝다. 거대한 질량을 지닌 검은 별이 있는 것이다. 그 별의 중력이 빛까지도 붙잡고 있기 때문에 별에 해당하는 영역은 그저 시커멓게만 보이고, 그래서 구멍처럼 보일 뿐이다.

빛이 블랙홀 중력의 영향권 안에 들어서도, 비교적 바깥 쪽에서는 중력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중심부까지 끌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질량이 시공간을 왜곡시킨다고 말했고, 가장 거대한 중력인 블랙홀은 검은 구멍 주변의 시공간을 거대하게 왜곡시킨다. 이렇게 일그러진 시공간에서는 빛의 운동 역시 일그러진 시공간을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블랙홀 주변의 빛은 휘어져 보인다.
이를 중력렌즈 효과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블랙홀 이미지 주변에 일그러져 있는, 그래서 마치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빛은 사실은 블랙홀 뒤쪽에서 오고있는 빛이다. 영화 [원티드]에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눈앞에 매달린 돼지고기 주변으로 총알을 휘어 쏘는 기술을 익힌 것처럼, 원래대로 직선운동을 했다면 보이지 않았어야 하는 지점의 빛이, 블랙홀에 의해 휘어진 시공간을 거쳐 망막까지 도달한 것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cfhtlens.org/public/what-gravitational-lensing)

http://www.youtube.com/watch?v=2-My9CChyBw
이 동영상을 보면 중력렌즈 현상이 아주 간단하게 이해가 된다. 역시 현상을 이해할 때는 동영상이 짱짱맨이다.
머리로 그려보는 것과, 직접 눈에 보이도록 표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일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러니 [인터스텔라] 제작팀이 블랙홀 이론을 화면으로 구현하면서 블랙홀 현상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졌을 수 밖에 없겠다. 머리로 이해가 돼야 눈으로 보이게 만들지.
근데 사실 실제로 중력렌즈 효과가 저런 상상도처럼 관측되기는 어려울 듯 하다. 우주에서 관측되는 은하 사진들은 개미 똥구멍 만하게 보이니까(...) 저렇게 보이려면 은하와 블랙홀과 관측자의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가까워야 하는데, '은하'라는 단위의 천체가 그 거리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천체들 사이의 거리는 상상 이상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서울의 내 책상 위 귤 하나가 우리 태양계의 태양이라고 했을 때, 가장 가까운 다른 태양은 아마 부산쯤 있을 듯 하다. 서울에 있는 내 책상 위의 귤과, 부산 어딘가에 떨어진 귤 사이만큼의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암흑이다.

별이 아니라 은하의 경우는 더하다. 내 책상 위에 있는 동그란 접시가 우리 은하라고 한다면, 가장 가까운 다음 은하는 티벳 히말라야 산자락 어딘가에 떨어진 접시쯤 될게다. 사실 우주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그냥 '텅 비어있는 공간', 'SPACE' 그 자체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이 정도 밀도로 존재하는 천체들에 과연 '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기는 하는 걸까.)


어쨌든 실제 우주에서 촬영한 중력렌즈 현상은 이런 모습이다.

(이미지출처: http://www.stsci.edu/~inr/thisweek1/thisweek099.html)

솔직히 그냥 좀 구리지 않은가. 물론 이걸 관측해낸 천문학자들에겐 엄청 흥분되는 사진일테지만. 우리는 천문학자가 아니고 그래서 우리는 저런 저해상도의 천문학 사진에는 흥분하지 않기 때문에 감독은 우리를 흥분시킬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영화 속에서 쿠퍼 일행이 만나는 블랙홀, '가르강튀아'다. '가르강튀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블랙홀의 이미지를 표현할 때 활용되는, 블랙홀 너머의 천체가 보이는 중력렌즈 효과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그러기에는 카메라가 엄청나게 가까이 접근했으니까.
그동안 블랙홀의 이미지를 구현해낸 작업들 중, 이 정도 거리에서 본 모습을 시도한 적은 없었을테니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는게 아닐까. 거대한 중력에 의해 왜곡된 공간, 그 휘어진 공간 주변을 회전하는 빛의 공전, 그리고 그 속에 모든 빛을 빨아들인 검은 중력체의 모습이 [인터스텔라]에서 만날 수 있는 블랙홀의 모습이다.

...원래는 영화에서 나온 시공간과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시작했는데 정작 거기까지는 가지도 못한 채 너무 길어져 버렸다. 안그래도 블로그에 글 자주 안쓰는데, 그나마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글이 너무 길다고 그동안 원성이 자자했었어서, 오늘은 이쯤에서 끊고 다음에 마저 이어서 써야겠다

(바로 다음 글에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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