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의 마지막 여행 11.
젊은 시절, 회사에서 유럽 배낭여행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가족 동반 없이 직원들로만 동반자를 편성해서 가는 보름 정도의 여행이었는데,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선물이었다. 유럽은커녕, 해외여행 자체가 매우 어렵던 시절이라 그 기쁨은 비교할 수 없었고,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젊기도 했었지만 한 순간 한 순간이 아쉬워, 배당을 메고 거의 뛰다시피 여행을 했고,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이동하는 기차에서 햄버거로 때우고는 했다. 15박 16일의 기간 동안 7개국 18개 도시를 돌았으니, 얼마나 전투적으로 여행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때는 그럴 때였다. ‘이제 가면 언제 오리’라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었고, 희박한 기회는 잔뜩 욕심을 부리게 해, 한 곳이라도 더 보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 압권은 프라하에서 빈으로 이동하는 밤 기차에서 벌어졌다. 기차가 중간에 나뉘어 앞쪽은 부다페스트로, 뒤쪽은 빈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동행인 선배와 나는 부다페스트로 가는 칸에 탔다. 중간에 승무원이 이를 알려주면서 빈으로 가려면 다섯 칸 뒤로 가라는 것이었다. 놀라서 이동해 보니, 여섯 개씩의 좌석으로 나누어져 있는 콤파트먼트는 다 문이 잠겨있어서, 잠은커녕 어디 앉을 곳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나마 넓은 곳인 화장실 앞 빈 공간에서 냄새를 참으며 앉아있다가 눕다가 그랬다. 몸도 피곤하고, 기분도 더럽고 그랬다.
도착시간이 한 시간쯤 남았을 때 승무원이 콤파트먼트를 돌면서 <Guten Morgen!>하면서 자리를 만들어줬다. 자던 사람들이 잠이 덜 깨 투덜대는 표정으로 일어나 앉아줘서 한 시간가량을 앉아서 자고 왔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빈에 도착해 기차역 앞의 공원 벤치에서 노숙자처럼 몇 시간을 자고 나서야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젊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다시 찾은 2017년의 스위스, 18년 스페인, 19년 이탈리아 모두 빡빡한 일정이었다. 그동안 해외 출장을 그렇게 많이 다녔고, 관광도 많이 했는데, 점령군 스타일의 여행은 나아지질 않았다. 이런 스타일의 여행에 대한 반성을 하고, 이번에는 정말 여유 있는 여행을 하자고 생각하며 일정을 부러 길게 잡았다. 그런데 실제 여행은 다시 또 tight 하고 힘든 스케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비행기 예약을 한 후, 세부 일정을 확정해 가는 도중에 가보고 싶은 곳들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람 없고 한가한 이른 시간에 일정을 시작해 일찍 끝내고 쉴 생각으로 계획하였지만, 실제는 빨리 시작해 늦게까지 다니는 일정이 된 날도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계획을 짜 놓은 일정을 cancel 하거나 변경하지 못하고 다 소화하려고 한 욕심 때문이다.
이날, 빈 4일 차도 사실 오후 4시쯤에 보티프 성당에서 일정을 마쳤거나 늦어도 훈데르트바서하우스까지만 갔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계획된 일정대로 가자’, ‘트램 타고 가까이까지 왔으니 프라터 놀이공원까지 가자’고 고집을 피우다가 잔뜩 지치고 말았다. 프라터의 놀이기구를 즐길 나이는 아니지만, 영화 Before Sunrise에서의 프라터 대관람차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한번 타보자고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트램 종점에서 내렸는데, 대관람차 까지는 걸어서 20 ~ 25분 정도 걸리는 부담스러운 거리였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가보자고 가다가 완전히 파김치가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탄 직육면체 모양의 관람차가 아닌, 동그란 관람차를 탔다. 그나마 영화에 나온 대관람차는 서서 타는 것인데, 우리는 앉아서 탔으니 차라리 잘됐다고 해야 할까?
괜히 멀리까지 가서 View도 별로, 재미도 별로인 대관람차에 실망해,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 이제는 전투적으로 관광지를 점찍고 다닐 나이도 지났고, 여유 있고 품위 있게 여행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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