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그루터기

내 젊음의 배경음악 15.

by 들꽃연인

대학 4학년이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해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번다했다. 가장 일반적인 진로는 취업인데, 군 미필 상태에서는 어려웠다. 가능한 진로는 대학원 진학과 친형이 있는 미국으로의 유학, 그리고 군대였다. 그리고 결국 돈 문제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학부 4년 동안도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쉽지 않았는데, 대학원의 비싼 학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미국에 있는 형도 경제적으로 쉽지 않을 때였고, 군 문제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의 미국 유학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돈 문제와 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은 군대를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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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군에서 구타가 있었던 시절에, 나이가 좀 든 상태에서 사병으로 가는 건 망설여졌다. 결국 육군 학사장교에 지원, 합격하고 영천에 있는 제3사관학교에 훈련을 위해 입대하게 되었다. 3~4개월의 훈련 기간을 제외하고 임관 후 3년이라는 긴 복무기간이 걸렸지만, 어찌 보면 외통수에 몰렸던 선택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느껴지던 3월 초, H와 J 등 몇몇 친구가 1박 2일로 영천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말 그대로 입영전야에 영천의 한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최백호의 ‘입영전야’를 부르며 쓴 소주를 넘겼다.


그때 H는 내게 노래 한 곡을 가르쳐주었다. 가사가 3절까지 있는, '그루터기'라는 긴 노래였다. 난 그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려고 부르고 또 불렀고, 입영 당일 아침 훈련소로 가는 버스에서 H의 휴대용 카세트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 끼우고 그 노래를 속으로 부르고 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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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훈련은 힘들긴 했지만 구타라든가, 노골적인 인격 모독은 없었다. 그래도 얼차려와 벌점은 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훈련 자체가 힘들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던 얼차려는 취침 소등 후 팬티바람에 옥상으로 집합시켜서 얼차려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소등 직후 'J에게'나 '말하고 싶어요' 등의 감상적인 노래를 스피커로 틀어서 한참 센티멘탈한 느낌에 젖게 한 후, 갑자기 음악이 툭 끊기며, "구대장이 각 내부반에 전달한다. 지금 즉시 팬티 바람에 옥상으로 집합한다. 실시!' 뭐, 이런 식이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정신력이 약하다'든가, '군기가 빠졌다'는게 이유였다. 그리고 어쩌다가는 ‘엎드려뻗쳐’ 상태에서 ‘어머님 은혜’ 노래를 부르게 하기도 했다. 그러면 많은 후보생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난 이런 감정조작이야말로 가장 비열한 얼차려라고 생각했고, 이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루터기’를 부르고 또 불렀다. 나중에 나도 다른 부대에서 구대장을 맡게 되었지만, 이때의 반발감은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 얼차려는 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훈련 마칠 때까지는 물론 임관 후 3년의 복무를 마칠 때까지도 난 ‘그루터기’의 모든 가사들을 잊지 않았다.


이제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났고, 난 그루터기 가사의 대부분을 잊어버렸다. 내 젊은 날의 순수가 세월에 닳아 사라져 간 것처럼.


(이미지 : Pixabay, 구글 이미지)


(다음 연재는 12월24일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즐기시라고 한번 연기해 12월28일에 발행하겠습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87 A05 그루터기 (남자들 노래)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그루터기 한동헌 작사, 작곡, 노찾사, 김광석, 메아리 등 노래


천 년을 굵어온 아름 등걸에 / 한 올로 엉켜 엉킨 우리의 한이

고달픈 잠 깨우고 사라져 오면 / 그루터기 가슴엔 회한도 없다


하늘을 향해 벌린 푸른 가지와 / 쇳소리로 엉겨 붙은 우리의 땀이

안타까운 열매를 붉게 익히면 / 푸르던 날 어느새 단풍 물든다


대지를 꿰뚫은 깊은 뿌리와 / 내일을 드리고선 바쁜 의지로

초롱불 밝히는 이 밤 여기에 / 뜨거운 가슴마다 사랑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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