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서울의 예수'와 '서울로 가는 길'

내 젊음의 배경음악 14.

by 들꽃연인

방송제 실험구성 ‘삼켜진 소리들’이 결국 진짜 삼켜진 소리가 되고 만 후, 1년이 지나 다시 방송제가 다가오자 우린 거의 매일 회의를 하며 대책을 연구했다. 그리고 정치적인, 또는 반정부적인 메시지를 직접 건드려 또 사전검열에서 짤리는 사태가 없도록 이번에는 빈부문제로 초점을 좁혀 실험구성이 아닌 종합구성이라는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그 기획, 연출을 내가 맡게 되었고, 난 정호승의 시 ‘서울의 예수’와 김민기 작사, 작곡의 ‘서울로 가는 길’이라는 노래를 두 축으로 삼았다. 거기에 빈부의 이미지 차이를 드러낼 수 있는 효과음들을 적절하게 가미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제일 큰 교회 성가대의 장엄하고 우렁찬 성가 합창과, 노인 대여섯 명이 모인 교회에서 그들이 기침하며 힘겹게 찬송가를 부르는 음향을 교차시기는 것 등의 효과였다.


정호승 시인의 ‘서울의 예수’는 강한 은유와 시대 비판을 담고 있으며, 표현 자체가 그 시절 지식인의 고뇌와 아픔을 담고 있어서 이 종합구성에 활용하기 좋은 시였다.

시 전체를 옮겨보고자 한다.

서울의 예수 정호승


1.

예수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있다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 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


2.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 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 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가 있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랑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


3.

목이 마르다 서울이 잠들기 전에 인간의 꿈이 먼저 잠들어 목이 마르다

등불을 들고 걷는 자는 어디 있느냐

서울의 들길은 보이지 않고, 밤마다 잿더미에 주저 앉아서 겉옷만 찢으며 우는 자여

총소리가 들리고 눈이 내리더니, 사랑과 믿음의 깊이 사이로 첫눈이 내리더니,

서울에서 잡힌 돌 하나, 그 어디 던질 데가 없도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운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라

눈 내리는 서울의 밤하늘 어디에도 내 잠시 머리 둘 곳이 없나니,

그대들은 나와 함께 술잔을 들고 어둠 속으로 이 세상 칼끝을 피해 가다가,

가슴으로 칼끝에 쓰러진 그대들은 눈 그친 서울 밤의 눈길을 걸어가라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벽에 귀를 기울이는 고요한 인간의 귀는 풀잎에 젖어

목이 마르다

인간이 잠들기 전에 서울의 꿈이 먼저 잠이 들어

아, 목이 마르다


4.

사람의 잔을 마시고 싶다

추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소주잔을 나누며 눈물의 빈대떡을 나눠 먹고 싶다

꽃잎 하나 칼처럼 떨어지는 봄날에 풀잎을 스치는 사람의 옷자락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나라보다 사람의 나라에 살고 싶다

새벽마다 사람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서울의 등잔에 홀로 불을 켜고 가난한 사람의 창에 기대어 서울의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싶다


5.

나를 섬기는 자는 슬프고, 나를 슬퍼하는 자는 슬프다

나를 위하여 기뻐하는 자는 슬프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는 더욱 슬프다

나는 내 이웃을 위하여 괴로워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



내 1년 후배 아나운서였던 I군이 타이틀 롤을 맡았고, 전체 작품의 분기점마다 ‘서울의 예수’ 각 부분을 멋지게 낭송했다. 엄청난 미성에, 감성 표현도 풍부해 정말 멋진 낭송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문제는 중요한 곡인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당시 이 곡은 양희은이 부른 음반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었는데, 이 버전이 영 우리 맘에 맞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곡의 작사, 작곡자이자 당시부터 학생들에게 반 신격화되어 있었던 김민기가 부른 버전도 맘에 들지 않았다. 우리는 고민하다가 아예 직접 우리 방송국원들끼리의 노래와 연주로 녹음을 하기로 했다.


학교에 피아노가 있고 조용한 회의실 사용 허가를 받은 후 피아노를 잘 치는 내 여성 동기 E가 피아노, 기타 고수인 1년 후배 S(한해 전 ‘삼켜진 소리들’의 기획 연출자)가 기타로 반주를 하기로 했다. 노래는 내 2년 여성 후배인 H가 하기로 했는데, 노래 실력으로는 서울 시내 대학가에서 최고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과 음색을 갖춘 친구였다.


엄청 무거운 릴 녹음기를 그 회의실까지 운반해서 세 사람의 노래와 반주를 녹음했는데, 결과는 기대보다 몇 배 이상으로 멋진 것이었다. 거기다가 기술부장을 맡고 있던 1년 후배 T가 기지를 발휘해, 노래를 부른 H가 스튜디오에서 자기 노래를 들으며 자기가 하모니를 입히며 녹음을 했다. 정말 최고의 작품이 나왔고 ‘서울의 예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곡이 되었다.

전체 작품이 시작될 때는 강당의 조명이 완전 암전된 상태에서 내 친구 H가 만들고 직접 부른 ‘누가 죽어 가나보다’가 연주된다. 우리 전통 가락과 현대 포크송 스타일이 퓨전으로 접목된 이 곡은 당시 암울한 시대상을 표현한 곡이어서, 관계자(?) 분들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 직접적인 반 정부 메시지가 드러나지 않아 ‘서울의 예수’는 ‘삼켜진 소리들’과 달리 사전 검열을 통과하고 방송제 당일에도 청중인 학생들의 호평 속에 무사히 방송되었다.


대학생들이 만든 방송 작품도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던 시대. 그것이 우리가 살고 헤쳐 나와야 했던 시간이었다.

(이미지 : Pixabay)


양희은 - 서울로 가는 길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서울로 가는 길 김민기 작사, 작곡


우리 부모 병들어 누우신 지 3년에 / 뒷산에 약초뿌리 모두 캐어 드렸지 /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아침이면 찾아와 울고 가던 까치야 / 나 떠나도 찾아와서 우리부모 위로해 /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앞에 가는 누렁아 왜 따라 나서는 거냐 / 돌아가 우리부모 보살펴 드리렴 /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좋은 약 구하여서 / 내 다시 올 때까지 / 집 앞의 느티나무 그 빛을 변치 마라 /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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