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시 아침이슬

내 젊음의 배경음악 13

by 들꽃연인

나는 열심히 운동하는 - sports가 아니라 movement – 친구들처럼 의식화의 충분한 세례를 받지 못했다. 물론 흔히 난쏘라 불리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입문서로 해서 ‘전환시대의 논리’니,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니 하는 책들을 읽어보긴 했다. 그러나 나중에 자주파(NL)니, 민중민주파(PD)니 하는 갈래로 발전하면서 정치에까지 참여하게 되는 그런 운동은 잘 몰랐고, 막연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거리감도 있었다.


학년이 바뀌어도 대학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주도하는 용감한 시위가 간헐적으로 벌어졌고, 교내에 있던 사복 경찰과, 시위가 발생하면 출동하는 흔히 백골단이라고 불리던 하얀 헬멧, 청바지 청자켓 차림의 경찰들이 주동자를 체포하곤 했다. 시위가 커지면 검은색 가스차를 앞세운 전투경찰이 교내로 진입했고, 곧이어 교정 전체가 (일명 지랄탄이라고 하는) 최루가스로 덮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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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87 항쟁이라고 불리던 시절보다 조금 앞선 시대였기 때문에 독재정권의 힘과 포악성은 매우 강했고,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들에 대한 진압은 잔혹했다.


어느 날 교내에서의 시위가 꽤 크게 벌어져 학생들의 거친 투석이 백골단과 전경들을 교문 밖으로 몰아냈고, 이어 가스차가 진입해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난사했던 날도 그랬다. 난 도서관 계단의 창을 통해 흥분된 분노와, 겁먹은 움츠림이 뒤섞인 묘한 기분으로 시위와 진압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위는 진압되었고, 도서관 5층까지도 최루가스가 밀려와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스크럼에 합류하지 못하는 나의 비겁한 초라함. 현실에 대한 비참함. 타는 목마름. 숨을 쉴 수 없었던 것이 내 허파였던가,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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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같이 있던 친구와, 선배를 찾아갔다. 다른 학교를 다니던 그 선배는 ‘고스톱의 ~~ 전략적 어프로치’로 모두를 웃기면서도 호방한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따뜻이 감싸주곤 했다. 그날도 패배감과 부끄러움을 안고 찾아간 나를 막걸리 한잔과 유머로 웃게 만들어주었다. 술은 술을 부르고…


과음 끝에 그 선배의 집까지 가게 되었다. 선배는 잠들기 전, 전축에 양희은의 레코드를 올렸고, 선배와 친구는 30초도 안되어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잔뜩 들이킨 술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또렷해져서 양희은의 노래들을 들었다. ‘아침이슬’이 나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노래가 내 온몸에 꽂혀왔다. 특히 ‘러움 모두 버리고~’ 부분의 가사는 이상하게 ‘러움’으로 들리며 내 몸에 전율을 일게 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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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음은 그렇게 긴 밤을 지새우며 세상이라는 광야에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밀고 있었다.

(이미지 : Pixabay)


아침이슬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아침이슬


- 김민기 작사, 작곡, 편곡

- 양희은 / 김민기 노래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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