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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축제이야기 2 - 축제의 밤

내 젊음의 배경음악 12.

by 들꽃연인

내가 활동했던 우리 대학 방송국에는 축제와 관련해서 불문율이 하나 있었다. 축제 전날까지 파트너를 못 구한 사람이 메인 축제 당일에 종일 방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송이라고 해봐야 하루 종일 축제 관련 음악이나 조용한 세미클래식, 연주곡(당시에는 경음악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습니다만)을 방송하는 것이니 힘들건 없었다. 하지만 축제날, 파트너도 없이 종일 음악을 틀고 있는 것은 참 따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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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1학년 때는 파트너가 있었지만, 2학년 때는 축제 직전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바람에 시간적 여유가 없어 축제일 방송 담당으로 낙점되었다. 1학년이었던 남성 후배 한 명도 파트너가 없어 둘이 방송을 했다. 신청곡도 많이 들어왔는데, 종일 틀고 있는 트윈 폴리오의 ‘축제의 노래’와 ‘축제의 밤’이 연속해서 신청곡으로 반복해서 쌓이고 있었다. 후배와 난, 트윈 폴리오의 다른 노래인 ‘웨딩 케잌’을 확 틀어버릴까 하는 농담을 몇 번 반복해서 하곤 했다. ‘웨딩 케잌’은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가네 그대 아닌 사람에게로,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사랑치 않는 사람에게로~~” 이런 구슬픈 가사가 있어 제목만 보고 잘못 틀었다간 축제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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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류의 노래 중 대표적인 곡이 ‘사랑의 기쁨’이다. 제목만 보면 사랑의 즐거움을 기쁘게 노래하는 것 같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전혀 아니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이렇게 진행되기에 사실 제목을 ‘사랑의 슬픔’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번안곡만이 아니라 나나 무스끄리(Nana Mouscouri)가 프랑스어로 부른 원곡 ‘Plaisir d’amour’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 시작 전 피아노나 현악기 연주로 이 곡을 연주하는 경우가 있어 듣는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어쨌든 축제날 하루 종일 음악을 틀다 보면 다른 방송국원들이 파트너와 함께 방송국을 많이 찾아온다. 맥주 한 두 병과 새우깡 등을 안주랍시고 들고, 위문 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파트너에게 방송국을 구경시켜 주기 위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방송을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꼭 약 올리는 것 같다. 그래도 수고한다며 한두 잔씩 따라주는 맥주를 거절할 수 없어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오후쯤 되어선 알딸딸 해지곤 말았다.


어둑어둑한 밤이 되면 아예 ‘축제의 밤’ 한 곡만 계속 틀어놓는다. 그래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 시간, 모든 쌍쌍들은 그 노래를 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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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 30분쯤 지나선 우리 방송도 마무리되었다. 너저분하게 어수선해진 캠퍼스를 후배와 둘이 걸어 나올 땐 아무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우리 마음속에서 외로운 찬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미지 : Pixabay)


축제의 밤 - 트윈폴리오(1981)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축제의 밤 윤형주 작사 작곡 트윈폴리오 노래


황금빛 물결 속에 춤을 추며 노래하는 밤
희미한 달빛 아래 피어나는 축제의 밤
연인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캠퍼스엔
마음으로 악수하는 축제의 밤 깊어 가네
밤하늘에 수를 놓던 불꽃들이 사라져 갈 때
아쉬움에 안타까이 바라보는 눈길들이여
오늘 밤은 너희들의 밤
오늘 밤은 우리들의 밤
잊지 못할 축제의 밤
우리들의 이 밤 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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