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9
80년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던 시절, 경제적으로는 지금과 비교가 안되게 어려웠고, 독재정권의 탄압과 고문이 엄연히 실재하고 있던 시절. 아직 동아리라는 말보다는 서클이라는 표현이 더 많았고, 흔히 기지 바지라고 일컬어지던 남학생들의 정장 바지와 검정 물들인 군복이 점차 캐주얼 복장으로 변해갔다. 여학생들의 옷도 정장에서 캐주얼로, 신발은 구두에서 레오파드 테니스화로, 다시 나이키로 바뀌어갔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흰 고무신에 나이키 무늬를 그리고 다니는 괴짜들도 있었다.
많은 곳에 이념과 낭만의 충돌이 있었고, 세상 다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현학으로 가득 찬 학생들도 사실은 아노미 현상에 사로잡혀 갈등하고 있던 때였다. 80년대 중반에 시작된 학생운동 연합들이 아직 태동하기 전이었고, 대동제 같은 말들도 없던 시절, 그래도 우리는 70년대의 레거시라고도 할 수 있는 축제를 기다렸고, 즐겼다. 축제 기간에는 시위도 없었고, 사복경찰들도 캠퍼스에 들어와 같이 축제를 즐기는 듯했다.
이야기의 시점을 전편보다 조금 앞으로 옮긴다.
철쭉을 비롯한 봄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 화려함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계절의 길목을 열어주던 5월 어느 날, 우리 여섯 친구들은 재미있기로 소문난 연대 축제의 하이라이트, 쌍쌍파티에 모였다. 연대에 다니는 S와 B가 티켓을 모두 구해준 덕이었다. 축제 시작 전, 연대 앞의 독수리 다방에 여섯 쌍의 남녀가 조금은 어색하고 약간은 설레는 분위기로 모였다. 정장 양복에 넥타이들을 맸고, 여성 파트너들도 정장에, 머리도 미용실에 다녀온 듯 마음껏 멋을 부렸다. 서로 소개하고, 인사하고, 작은 유머에도 과하게 크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그때 누군지, 참 눈치 없는 친구가 한 마디 했다. “1학년 봄 축제 때의 파트너는 가을까지 만나는 경우가 없다는데?” 그러자 또 다들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듯 경쟁적으로 과하게 웃으며, “우리 커플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라고 호언장담들을 했다.
축제 시간이 가까워져 캠퍼스에 들어서자 대학방송 스피커에서는 ‘달무리 지는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 꽃 내음 속에 춤추는 여인 아름다워라~~’는 ‘트윈 폴리오’의 ‘축제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한껏 멋을 낸 남녀들은 마치 꽃송이들이 움직이듯 쌍쌍이 ‘쌍쌍파티’ 장소인 노천극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인기 절정이던 개그맨 주병진 씨가 사회를 본 쌍쌍파티는 무척 즐거웠다. 게임을 핑계로 파트너의 손도 잡아보고, 슬쩍 안아도 보고.
그렇게 젊은 청춘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캠퍼스에는 여전히 축제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그 해 가을, 그 여섯 쌍 중에서 만남을 이어간 커플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지 : Pixabay)
축제의 노래 - 트윈 폴리오 / 1970 (가사)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축제의 노래
원곡 : 이탈리아 칸초네 가수 밀바(Milva)의 Aria di Festa
번안곡 : 트윈 폴리오 (송창식, 윤형주)
달무리 지는 창문을 열면 싱그런 바람
꽃내음 속에 춤추는 여인 아름다워라
황홀한 달빛 꿈에 잠기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축제의 노래 함께 부르던 즐거운 날에
스치듯 만난 잊을 수 없던 그리운 여인
가버린 여인 눈에 어리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언제나 다시 오나 그리운 축제의 그 밤
금 물결 달빛 속에 춤추던 그리운 여인
사모한 마음 서글픈 정은
가실 줄 모르네
그리워서
가버린 여인 눈에 어리면
다시 또 보이네
축제의 밤
언제나 다시 오나 그리운 축제의 그 밤
금 물결 달빛 속에 춤추던 그리운 여인
사모한 마음 서글픈 정은
가실 줄 모르네
그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