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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타는 목마름으로

내 젊음의 배경음악 7.

by 들꽃연인

(이번 글부터는 해당 곡을 유튜브로 마지막 부분에 첨부합니다. 글과 함께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나의 대학시절은 엄혹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였다. 암살과 하극상, 학살과 독재. 이런 살벌한 단어들이 이어지던 시대였다. 대학생들은 졸업정원제라는 위협을 받아야 했으며 기관원, 사복경찰들이 캠퍼스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먼 길 가는 친구여(김민기)’, ‘나의 친구(양희은)’ 같은 노래들로 전송을 받은 젊은이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전단을 뿌리다가 연행되곤 했다.


시위로 인해 체포되어 강제 입영 당한 학생들을 전투경찰로 입대시켜, 투구와 철망으로 얼굴을 가린 뒤, 친구와 후배들이 돌을 던지는 시위대 앞으로 내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곤 했다.

대학 입학 직후, 내가 졸업한 고교 동문들과 그 지인들인 여학생들로 만들어진 독서서클에 가입하게 되었다.


내가 가입하기 전 해에 그 서클은 기관의 호된 조사를 받고 선배 한 분이 체포, 연행되는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그 서클은 운동권의 이미지는 없었고, 내가 가입할 무렵에는 독서를 핑계로 술 마시고 친목을 돈독히 하는 모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책 읽은 사람이 별로 없는 가운데에 진행되는 지루한 독서토론, 예쁜 여학생 옆에 앉으려 신경전을 하게 되는 다방에서의 티타임, 그리고 술자리로 이어지는 것이 모임의 비공식적인 공식이었다. 선배들의 주머니가 두둑한 날은 선술집으로 향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소주와 새우깡을 사 들고 가까운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으로 향하곤 했다.


모임에 처음 참석했던 날, 한잔 하러 가자고 호기롭게 나서는 선배들을 따라가다 보니, 유명한 영화감독의 이름을 붙인, ‘OOO의 카페 가장무도회’라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다. 그리고 선배들은 그 입구의 화장실로 먼저 줄줄이 들어갔다. 화려한 카페답지 않게 화장실 문은 가마니로 둘러싸놓은 곳이었다. 멍하니 서있는 날 보고 뒤따라오던 선배가 왜 안 들어가냐고 툭 쳤다. “넌 왜 안 들어가?” “안 마려운데요.” “뭐, 인마? 여기 화장실 아냐, 우리가 가는 술집이 여기야. 빨랑 따라 들어와”


그 집은 ‘가마니집’이라는 나름 유명한 선술집이었고, 4.19가 태동한 장소라는 거창한 스토리도 있는 곳이었다.

소주, 막걸리가 섞인 술좌석에, 부실하기 짝이 없는 튀김과 어묵 국물 등의 어설픈 안주가 들어왔다.


‘고스톱의 사자성어에 대한 경영학적 고찰과 전략적 어프로치’라는, 수없이 반복해 들어도 웃기던 고참 선배의 이야기와 함께 술이 몇 순배 돌자 선배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대부분 학교에서나 거리에서는 부를 수 없는, 첫 몇 마디만 불러도 사복경찰의 이단 옆차기가 날라 들어오는 노래들이었다.


선배들은 그 선술집이 마치 해방구라도 되는 듯 노래들을 불렀고, 곧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의 노래들이 합쳐지기도 했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대머리는 물러가라 훌라 훌라~’ 뭐 대충 그런 노래들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노래들 중에서도 ‘아하, 누가 푸른 하늘 보여주면 좋겠소~’ ‘검푸른 바다 위에 비가 내리면~’ ‘나 태어난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이런 노래들이 그중 음악성이 있어 보이는 노래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들이 모두 김민기의 곡들이었다.


갓 입학한 애송이 대학생이 무엇을 알았으리야 만, 선배들의 노래를 귀동냥으로 배우며 한편으로는 겁도 났고 억울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치밀어 오르는 무엇도 느껴졌다. 특히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노래는 가슴을 파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목이 말랐다.


(이미지 : Pixabay)


[김광석] 타는 목마름으로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시 (노래 작곡 : 이성연, 노래 : 김광석, 안치환 등)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서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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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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