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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내 젊음의 배경음악 6.

by 들꽃연인

한국 현대사의 많은 시간들은 처절했다. 그것은 단지 정치 엘리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국민 모두에게 아픈 기억과 쓰라린 경험의 상처를 남기곤 했다.


우리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던 해의 봄은 대학생들의 구호와 데모가로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 앞쪽을 지나가는 고가도로에 차들이 가질 못하고 서울역을 향하는 대학생들의 데모가가 가득 메워진 것은 그 소리를 듣는 소년들에게 한편으로는 겁나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피를 끓게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

결국 전국의 대학들에 휴교령이 내려지고 나라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얼마 후 광주에서 참혹한 비극이 벌어졌지만, 우린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를 해야 하는 고3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뭉쳐 다니던 우리 여섯 친구 중 하나인 B가 그 이름도 무서운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갈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국보위는 그런 일을 한 기관이 아니었고 실제로는 경찰이 했지만, 우리에게 국보위는 그런 무서운 곳으로 생각되었다.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좋고 사람 좋은 B였고, 데모를 할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는데, 국보위에 끌려갈 거라는 소식은 우리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B와 같이 과외를 한 적이 있는 다른 고등학교 학생회장과 우리 학교 학생회장을 만나도록 연결해 준 것 때문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B는 경찰을 피해있다가 며칠 후에 핼쑥한 얼굴로 학교로 돌아왔지만, 우리 학교 학생회장과 부회장인 친구들은 끌려간 후, 결국 학교에서 제적되고 말았다. 대학시험이 다가오고 있는 고3 시절 봄에 벌어졌던 이 사건은 우리 여섯은 물론, 학교 전체를 크게 흔들었다.

그러나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서울의 봄’이 광주의 참상으로 막을 내리고 군부 실세들이 강압적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던 9월 중순.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교정에서 벌어졌다. 화장실 뒤에서 담배를 피우던 우리 동급생 10여 명이 교련 교사에게 잡혔는데, 그 친구들이 그 이름도 살벌한 ‘삼청교육대’에 보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이 평소 세칭 ‘노는 애들’에 가까웠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3 생을,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삼청교육대에 보낸다는 사실에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교롭게도 잡힌 친구들은 모두 문과였고, 3학년 문과 세 반 학생 모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장에 나가 무릎을 꿇었다. 우리는 ‘친구들의 잘못을 저희가 모두 사죄드릴 테니,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의미였는데, 선생님들은 연좌 농성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교무주임 선생님이 노기 어린 목소리로 봉 걸레 자루를 잡고 ‘주동자 나와!’를 외쳤지만, 아무도 나가지 못했다. 주동자가 따로 없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움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 반 반장 모두 나와’가 이어졌다. 1반 반장이었던 나를 비롯한 세 명이 나가자 ‘싸스콰치’라는 무서운 별명을 가지고 있던 젊은 체육선생님이 우리를 체육실로 데리고 가 흠씬 두들겨 팼다. 그렇게 맞아본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지만, 억울함과 분노, 부조리함에 대한 반항심 등이 뒤섞여 그리 크게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다.


결국 열 명의 친구들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갔고, 죽을 고생을 했겠지만, 다행히 몇 주 후 돌아와 같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파란만장한 고3 시절을 끝내가면서 대학시험을 마치고, 학교 수업은 오전에만 이루어졌다.


오전 수업이 끝난 어느 이른 겨울날,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하얗게 쌓인 눈과 파란 하늘의 조화는 늘 아름다운 법이지 않은가. 우리 친구들 여섯은 사진기를 들고 경복궁을 찾아, 눈 쌓인 아름다운 고궁을 노래하며 걸었다. 그때 데이트 하던 한 쌍의 연인이 우리 노래에 감탄을 하며 우리와 같은 코스를 걸었다. 그리곤 남자분이 우리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자청하시곤, 우리 보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라고 하셨다. 나중에 사진을 인화해 보니, 둥글게 서서 ‘소나무야’를 부르는 우리 머리 위로 정말 푸르른 하늘과 소나무가 펼쳐져 있었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쓸쓸한 가을날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도

소나무야 소나무야 변함이 없는 네 빛


시리도록 슬프고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이미지 : Pixabay, 소장 사진)


소나무-독일민요-빈소년합창단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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