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27.
I.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 1960년판 서문 중 일부 발췌)
첫사랑이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배가 아픕니다.
첫사랑이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첫사랑이 만나자는 이야기를 해오면 머리가 아픕니다.
어느 사찰에 중년 귀부인이 찾아가 주지 스님을 만났다.
“스님, 제가 10년 전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큰 금액을 공양하면서 이 절에 모셨지요. 그런데 어머님은 정말 극락에 가셨을까요?”
스님이 대답하셨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의 것이지요.”
II.
대학입시라는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목표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한국의 젊음들은 대학입시가 끝난 직후에 진공과도 같은 일종의 anomy 상태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그때에 그들에게 벌어진 일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큰 영향과 족적을 남기곤 한다. H에게도 고교를 졸업하고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가던 그때에 충격과도 같은 두 가지 일이 벌어진다.
그 하나는, 많은 새내기들이 치기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미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H에게 첫 미팅이자 잊을 수 없는 그녀를 만난 선명한 날이었다. Y가 주선한 그 미팅엔 소나무 친구들이 나갔고, Y와 먼 친척 뻘인 그녀가 H의 파트너가 되었다. H는 그날부터 그녀의 포로가 되어 어수선한 첫 학기와 뜨거운 여름을 더욱 뜨겁게 보냈다.
그런데, 가을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녀는 H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그 이유를 H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녀는 틀림없이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어쨌든 H는 뜨거웠던 만큼 더욱 심하게 가슴앓이를 했고, 나중에 다른 여자 친구를 사귀다 헤어지고, 많은 날들이 지난 후 좋은 여자를 만나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었어도,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상처가 아리다고 한다.
산울림 -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그대 떠나는 날엔, 비가 오는가…
김창완 작사, 작곡, 산울림 노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하늘도 이별을 우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네
슬픔은 오늘 이야기 아니오
두고두고 긴 눈물이 내리리니
잡은 손이 젖어가면 헤어지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
저무도록 긴 비가 오는가
그대 떠나는 날에 잎이 지는가
과거는 내게로 돌아서 향기를 뿌리고 있네
추억은 지난 이야기 아니오
두고두고 그 모습이 새로우니
그때 부른 사랑 노랜 이별이었나
그대 떠나는 날에 잎이 지는가
처음부터 긴 이별이었네
III.
3월이면 어학이나 자격증 학원, 스포츠 센터 등에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많이 몰린다고 한다. 그건 아마 우리나라의 학기제가 3월, 9월에 시작되기 때문이 아닐까? 거기다가 1월에 뭘 시작했다가 작심삼일로 포기한 사람들이 재도전하는 때가 3월이어서일 수도 있다.
국내 최고의 명문 서울대에 입학한 H는 자랑스러운 서울대 배지를 달고 관악 캠퍼스의 교정을 들어섰다. 그때만 해도 대학생들은 젊은이들 중 아주 소수였으며, 자기 학교의 문양으로 만든 배지를 다 달고 다녔다. 나중에 대기업에 취업한 그들은 다시 대기업의 배지를 달고 출퇴근을 했다.
서울대 캠퍼스를 걷는 H에게는 여러 힘들었던 시절이 주마등같이 지나갔다. 부친은 이발사, 모친은 미용사로 어려운 집안이었고 H는 3남매의 외아들이자 장남이었다. 엄했던 부친은 나무랄 때는 곧잘 회초리를 들으셨지만, H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손수 머리를 깎아주시면서 이제는 회초리를 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지키셨다. 그 후 부친께서는 성직자의 길을 걸으시며 안양 외곽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고, H의 가족은 교회 건물에 딸린 골방 같은 사택에서 생활했다. 그래도 공부 잘하는 장남은 집안의 희망이었으며, 그의 서울대 입학은 당연히 집안의 큰 경사가 되었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이었지만, 캠퍼스는 새로이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의 활력과 푸릇푸릇 새잎들이 돋아나려 눈치를 보는 신록의 기운으로 활기가 넘쳤다. 아울러 전두환 정권이 그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던 시점이어서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어느 봄날, H가 도서관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머리띠를 두른 학생 하나가 자유와 민주의 열변을 토하며 도서관 5층 난간에서 전단지를 뿌렸다. 그에 맞추어 갑자기 모여든 학생들이 스크럼을 형성했고, 사복 경찰들도 뛰어왔다. 그때, 난간에 있던 학생이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연히 건물 아래로 몸을 던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들 어안이 벙벙했지만, 투신한 학생은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도대체 무엇이 저 젊은 생명을 스스로 던지게 하는가? 그는 자유와 민주를 얼마나 갈망했기에, 이 땅에 그것이 얼마나 메말랐기에 이런 비극이 벌어져야 하는가?
감수성 민감한 나이에 시작한 대학생활로 새로운 사고 체계를 만들어가던 H의 뇌리에 이 사건은 커다란 분수령이 되었다. 그 후 H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기 위해 폭력과 불의가 없는 나라를 찾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참으로 지난한 길이었다.
[가사/자막] 밥 딜런 (Bob Dylan) - Blowin’ in the Wind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Blowin’ in the Wind Bob Dylan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가야
Before you call him a man 진정한 남자라고 불릴 수 있을까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얼마나 많은 바다를 날아가야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흰 비둘기는 모래밭에서 잠들 수 있을까
Yes,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그리고 얼마나 많은 대포알이 날아야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영원히 포탄이 금지될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친구여 바람에 흩어지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있어
IV.
1989년 개봉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훗날 아쉽게 스스로 세상을 등진 명 배우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을 맡아 열연을 했고,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영화이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한 자성과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묻게 만든 영화였다.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맡았던 키팅 선생은 입시 위주의 보수적인 명문 사립학교에 부임한다. 그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시의 이해’라는 설명을 하는 듯하더니, 이런 쓰레기 같은 내용의 페이지는 찢어버리라고 한다. 그는 교탁에 올라가 서서, 학생들에게 세상을 넓고 다양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를 즐겨라, 너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며 Carpe diem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그에게 학생들은 점점 끌리게 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키팅 선생을 따르던 학생 중 하나가 연극 주연을 맡으면서 자신의 잠재성을 발견하지만, 하버드를 나와 의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부친과의 갈등 끝에 총으로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키팅 선생을 자살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아이의 부친과, 희생양을 찾는 학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키팅 선생은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키팅이 떠나는 날, 대신 수업을 맡게 된 교장은 ‘시의 이해’를 가르친다. 그때 사물을 찾으러 온 키팅이 교실에 들어서자, 학생들은 하나 둘 책상을 밟고 올라서며 키팅 선생에게 경의를 표한다.
H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입시만이 아닌, 세계와 인생을 가르쳐준 은사님이 한 분 계셨다. 그분은 영어 선생님이셨지만, 우리에게 영어만이 아닌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것에 대해, 또 세상을 넓게 멀리 보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신과 국가를 위하는 뜨거운 마음, 청소 하나에서도 성실을 발견하는 인성을 이야기하셨고, 우리 친구들은 고교 졸업 후 4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매년 선생님을 뵙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가 나오기 10년도 더 전이었을 때, 선생님은 시험 감독할 때 교탁 위에 올라가 앉아서 감독하는 특이한 모습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H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된 것은 고교 시절의 은사이자 같은 대학 같은 과 선배이셨던 선생님의 영향도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H는 대학 졸업 후 K중학교의 도덕선생님으로 부임했다. 영화의 키팅 선생과는 달리, 결코 명문이라고 할 수 없고, 환경도 서울 시내에서 최악 조건에 해당하는 곳이었지만, H는 키팅 선생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한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섰다. 단순히 입시만이 아닌, 인생을 가르치려고 애썼고,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제자들을 키우려 했다. 수업시간에도 가끔 교탁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며 아이들과 함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노래하곤 했다.
그러나 시절이 엄혹했다. 전교조가 처음 시작되던 무렵부터 가입하고 열심히 활약했던 H는 그곳에서 만난 연상의 여교사와 사랑을 키워 결혼했지만, 부부가 함께 해직을 당하는 역경이 찾아왔다. 지금도 불리고 있는 전교조의 노래인 ‘참 교육의 함성으로’는 H가 작곡하고, 그의 아내가 작사한 곡이다.
전교조 노래인 '참 교육의 함성으로'는 전교조 결성 직후 만들어진 것으로 전교조 행사 때마다 애창되고 있는 노래입니다.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굴종의 삶'을 떨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 일어서는 교사들의 참 교육의 열정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결성에 대한 가슴 벅찬 감동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홈페이지에서)
그 무렵, 그는 노래 하나 햇볕 한줌이라는 매우 서정적인 노래도 만들었는데, 난 그 노래가 H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듯해서 무척 좋아했다.
조경옥 노래하나 햇볕한줌 LP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노래 하나 햇볕 한 줌
주현신 작사 작곡, 조경옥 노래
작은 시냇물에 실려가는 노래 하나 드릴까요
고개 숙인 사람들, 함께 노래를 불러요
작은 들꽃 사이 스며있는 햇볕 한 줌 드릴까요
상처 입은 사람들, 서로 어르며 살아요
여린 강물 굳게 흘러서 힘찬 파도 춤출 때까지
노래 하나, 햇볕 한 줌의 사랑 나누며 살아요
작은 시냇물에 실려가는 노래 하나 드릴까요
고개 숙인 사람들, 함께 노래를 불러요
작은 들꽃 사이 스며있는 햇볕 한 줌 드릴까요
상처 입은 사람들, 서로 어르며 살아요
어둔 들녘 헤쳐 밝아올 아침, 햇살 춤출 때까지
노래 하나, 햇볕 한 줌의 사랑 나누며 살아요 노래 하나, 햇볕 한 줌의 사랑 나누며 살아요
V.
DJ 정부가 출범한 후 대부분의 전교조 해직 교사들의 복직이 이루어졌다. 부부가 다 해당되어 A급으로 분류되었던 H와 그의 부인도 당연히 복직 대상이었고 그의 부인은 복직했다. 그러나 H는 이미 다른 길을, 그것도 신과 약속을 하고 걷는 길에 발을 디딘 후였다. 국내 최고 권위의 신학대학원에 시험을 보아서 합격하고, 신대원생이자 교회의 전도사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얼마 후 그의 목사 안수식이 열렸다.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던지고 신의 종으로 서약을 하고 기름 부음을 받는 자리이다. 노량진교회에서 진행된 그의 목사 안수 예배에 참석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왜 그리 눈물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얗고 연약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의외로 강단이 있던 소년, 기타의 지판을 누르던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 설악산 비경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아빠, 땡큐’를 외치던 그의 모습에는 이미 성직자의 모습이 있었던가.
대학시절, 둘이 나란히 서서 소변을 보며, 내가 ‘우리 조상님들 말씀에 뭇 배설은 유쾌하니라’라는 장난스러운 화두를 꺼내자, ‘그~중에~ 제일은~~’까지만 노래를 하던 녀석과 개구쟁이처럼 낄낄댔었고, 내 대학방송 시절 방송제에서, ‘삼켜진 소리들은 못 나갑니다. 기재 사정 때 문 이 라 고 합니다.’라는 내 멘트에 ‘짭새들은 물러가라’고 외치던 까까머리 방위였던 그.
나의 대학 방송국 1년 후배 S와 같이 셋이서 수유리 4.19 탑에 참배를 하고, S의 집에서 이야기와 노래로 밤을 새웠다. 그리곤 H는 사라졌다. 몇 주가 지난 후 다시 나타난 그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문열의 소설 <젊은 날의 초상> 주인공의 방황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소설 주인공이 담배 수확 마을의 색시 집에서 허드레 일을 하는 방우로 지낸 것을 연상시키듯, 그는 대구의 한 경양식집에서 홀 서빙으로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하며 영혼과의 힘든 싸움을 하고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간 독일에 머무는 동안에 그는 또 한 번 자신과의 힘든 전투를 벌이기도 했었고, 사랑의 상처와 도서관 투신 사건의 충격은 그를 내내 따라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우여곡절을 접고, 이제 그는 내 개인적인 친구가 아니라 신의 종이자, 목양을 하는 성직자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감개무량하기도 하고 한없이 감상적이 되기도 했던 그 예배시간 내내 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H는 그 이후 호주 멜번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멜본한인교회에서 8 년간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본인이 교육 목사로 있었던 한국의 대형 교회로 돌아와 위임 목사(교인들의 투표로 정년까지 그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위임된 담임목사)로, 또 한국 교단의 존경받는 성직자로 현재까지 사역하고 있다.
주만 바라볼찌라 | 쉐아르 싱어즈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주만 바라볼지라
박성호 작사 / 작곡, 다윗과 요나단, 쉐아르 싱어즈 등 노래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 주시고, /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 주만 바라볼지라.
(이미지 : Pixabay, 해당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