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25.
(앞편으로부터 계속됩니다.)
3막
I.
첫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지나서 또 한 곳의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직 제조업의 경험이 일천한 그였기에 잘 나가는 회사는 당연히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어느 중견 그룹사의 망가진 자회사 한 곳을 맡아달라는 의뢰였다.
회사는 재무부터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이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였고, Y는 그 하나하나를 손보며 직원들을 교육해 가기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쉽게 가르쳐 나갔으나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을 초청한 줄 알았더니 교수를 데려왔다’라며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Y는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직원들을 이끌어 나갔고, 직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배운 부분의 프레임이 실제 일하는 현장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대표인 Y에게 신뢰를 갖게 되었다.
몇 년 만에 회사를 정상화시키자, 그룹에서는 다른 또 하나의 망가진 자회사를 맡아주었으면 하는 부탁을 해왔다. Y는 이 회사의 직원들에게도 교육을 시키면서 그 내용이 현장에서 실행되도록 지도했다.
그러자 변화를 체감한 직원들이 Y에게 계속해서 교육을 요청했는데, 이미 진행한 내용을 한번 더 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그래서 Y는 자신이 매회 교육한 내용을 A4 용지 3~4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해 회사 인트라넷에 띄우고 그곳에서 직원들이 자유롭게 내용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내용이 쌓여가면서 무려 180여 회에 이르게 되었고 회사는 점점 여러 면에서 내용이 좋아졌다.
II.
두 번째 회사 턴어라운드 직후 가장 난도가 높았던 시화공단의 한 회사를 3년 반 동안 경영했다. 이전에 배우고 경험했던 지식을 총 동원해야만 했고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회사를 완전 정상화시키는 가장 큰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 회사 경영 이후에 2년 정도의 기간에 Full time job은 잠시 내려놓고, 그동안 ‘착한 경영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그간 쌓인 지식과 노하우를 나누며 전파하는 일을 시작했고 그 활동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Y는 자신의 경영이론에 <착한 경영>이라는 naming을 했다.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해나간다는 그의 신념에 어울리는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의 명함에도 <착한 경영 연구소>라는 title이 들어가게 되었다.
착한 경영의 모토는 ‘선한 영향력의 선순환으로 탁월함을 이루는 경영’이다 선한 영향력의 열매는 더디 열리지만 그 어느 것보다도 풍성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편 Y는 그동안 직원들을 교육하면서 썼던 칼럼들을 다듬고, 또 없던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추가하여 2015년 <경영학 사용설명서>라는, 56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어려움에 빠진 조직을 탁월한 조직으로 변화시켰던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경영 방법, 경영의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원리를 실천하는 방법, 유능한 경영자로 성장해 나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Y는 이 책에 대해 쉽게 쭉 읽히는 책이라기보다는 항상 곁에 두고 꾸준히 학습해 나가야 할 학습서라고 말했다. 나도 친구가 지은 책이라 한번 완독하긴 했는데, 나처럼 독서근육이 어느 정도 갖춰진 사람도 한 번에 쭉 읽어나가긴 쉽지 않은 책이었다.
Y는 그 이후 지금까지 여러 교육기관에서 경영자들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와 경영 코칭을 진행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회 예배시간에 강연을 한 적도 있었다.
몇 년 전부터는 한 특장차 업체의 CEO를 맡아 공주에 근무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에 올라와 대기업인 K그룹에 대한 외부 컨설팅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내 굴지의 IT기업으로 꼽히는 K그룹은 한때 모두의 찬탄과 경이를 자아내는 곳이었으나, 여러 법적인 문제와 경영 이슈가 얽혀 국회와 언론으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주로 법조인들로 이루어진 컨설팅위원회에서는 K그룹의 준법과 신뢰회복을 위한 일들을 주로 하고 있고 Y는 유일한 비즈니스 업계 출신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매주 금요일에는 다른 형태의 지식 나눔과 경영자 코칭, 강연 등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고 있다.
나는 지난해 봄, 고도(古都)에서의 봄을 느끼고 싶어 6박 7일의 일정으로 경주, 부여, 공주를 여행한 적이 있다. 마지막 일정이었던 공주에서 Y와 긴 시간의 저녁을 나누었다. 참 이상하게도 Y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절친으로 지내왔건만, 단 둘이 저녁을 나누며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Y는 우리의 대화 후에, 신변잡기 없이 한 시간 이상 수다를 떨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교양이라고 했다.
혼자 지내는 주중 저녁시간에, 성경을 필사하고 독서로 지식과 지혜의 깊이를 쌓는 Y의 내공이 더욱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엔 공중부양도 하게 되려나?
Y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와 노래방에서 자주 하모니를 맞춰 불렀던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The Mamas & The Papas - California Dreamin'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California Dreamin
John & Michelle Phillips 작사, 작곡
Mamas & Papas 노래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모든 잎사귀는 낙엽이 되고 하늘은 잿빛으로 변했지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난 산책을 나갔어 어느 겨울날에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만약 내가 LA에 있었다면 편하고 따뜻했을 텐데
California dreamin'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캘리포니아의 꿈을 꾸네 이런 겨울날에
Stopped into a church I passed along the way
교회에서 발걸음을 멈췄어 지나가던 길에
Well, I got down on my knees And I pretend to pray
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척했지
You know the preacher likes the cold He knows I'm gonna stay
전도사는 추운 날씨를 좋아해 내가 머무를 걸 아나 봐
California dreamin'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캘리포니아의 꿈을 꾸네 이런 겨울날엔
(간주)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낙엽은 지고 하늘은 잿빛으로 변했지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난 산책을 나갔어 어느 겨울날에
If I didn't tell her I could leave today
만약 내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난 오늘 떠날 수 있었겠지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California dreamin')
캘리포니아 꿈을 꾸네 이런 겨울날에 (캘리포니아 꿈을 꾸네)
On such a winter's day, (California Dreamin') On such a winter's day
이런 겨울날에 (캘리포니아 꿈을 꾸네) 이런 겨울날에
4막
인생을 4막으로 분류해 본 사람은 Y 자신이었다.
1막은 부모님의 슬하에서 사회에 진출할 준비를 하는 시기.
2막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나 자신의 의지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또는 다른 사람의 지시나 의지에 따라 일하는 시기.
3막은 드디어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타인도 자신의 의지에 영향을 받도록 하는 시기.
4막은 톱니바퀴 같던 사회생활에서 내려와 비교적 여유 있게 지나온 또는 남은 인생을 관조하며 스스로의 삶을 정리해 나가는 단계. 경우에 따라서는 3단계를 거치지 않고 2단계에서 4단계로 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평생 2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도 있을 수 있다.
이 같은 분류에 따르면 Y는 지금 3단계의 절정에 있다고 하겠다. 한국사회에서는 대부분 일자리에서의 은퇴를 2단계 또는 3단계의 마지막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다섯 친구 중에선 B가 가장 먼저 4단계에 접어들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나와 S, 그리고 H와 Y는 아직 3단계에 있다.
우리 친구들은 좀 다르지만, 내 과거 직장의 동료들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완전히 내려놓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많은 경우 경제적인 여유가 없거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하지 않는 삶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둔 후에 새 직장을 얻고, 심지어 명함까지 새로 만들어 돌리게 되면 다들 능력 있다고 칭찬하며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통계에서 한국과 유사성 지수가 가장 높은 유럽 나라는 프랑스라고 나왔던데, 어떻게 산출된 결과인지 모르지만 난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 일단 대표적으로 프랑스는 정년 연장을 한다고 데모하는 나라이고, 한국 노조들은 정년 연장을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는가?
각자의 상황과 인생에 대한 판단이 다르기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늦은 나이까지 일을 계속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경우, 첫째, 경제적인 현금 흐름의 지속적인 창출 유지, 둘째, 사회적 지위의 유지가 가장 중요한 동인이라고 생각된다. 이 외에도 직장생활을 멈추는 것에 대한 불안감, 취미나 여가에 대한 경험 부족 등도 꼽을 수 있겠다.
경제적으로 다급한 경우는 예외로 하자. 그게 아닌 경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그게 직장생활이든 아니든, 여가 선용이나 취미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등산을 안 좋아해서 직장에서 단체로 가던 등산을 가장 힘든 업무라고 생각했던 나 같은 경우는 산에 오르는 건 취미생활이 아니다. 가끔 부인의 강권에 이끌려 마지못해 온 듯한 표정이 역력한 분들이 음악회에 와서 고개를 떨구며 조는 모습을 보면, 나에게는 즐거운 여가가 누구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글을 쓰고 그것을 브런치나 블로그에 게시하는 것, 좋아하는 음악들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듣는 것, 페이지가 지나가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소중하거나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 등도 내가 좋아하는 여가 활동이다.
Y가 인생 4막에 접어든다면 그는 어떤 모습일까?
일단 음악을 좋아하고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친구이니까 당연히 그런 일상이 생각나고,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도 포함될 것 같다. 남들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예상되는 것은 가르치는 일이다. Y는 자신의 학습으로 얻은 것들, 특히 어렵고 까다로운 것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능력의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회사의 CEO활동 중에도 그런 과정을 계속해왔지만, 그건 Y가 잘하는 일이자 좋아하는 일이다.
Y가 인생 4단계에서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즐기며 여러 고난과 우여곡절을 지내왔던 지난날을 웃으며 돌아보길 바란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편안함과 정겨움 속에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미지 : Pixabay)
김민기 - 친구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친구
김민기 작사, 작곡, 노래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눈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