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버가 보살-추모교회의 음악회

베를린, 2019년 9월 3일

by kay


2019년 9월 3일 20시, 나는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 추모 교회(Kaiser-Wilhelm-Gedächtniskirche)의 푸른 스테인드 글래스 아래에서 비발디와 바흐, 그리고 모차르트를 들었다. 이 사실은 이제 바꿀 수 없다. 앞으로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사진3 소프라노 사라 구지(Sara Gouzy)의 독창 모습.JPG 2019년 9월, 카이저-빌헬름 추모 교회의 푸른 스테인드 글래스 아래에서


여행을 하면 하루하루의 선택에 더 공을 들이게 된다. 한때 유행했던 표현대로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하게 된다. 살면서 언제 베를린에 또 오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연히’ 추모 교회를 지나게 되었고, ‘우연히’ 다음날 저녁의 음악회를 알게 되었고, ‘우연히’ 숙소가 멀지 않았고, ‘우연히’ 마음에 드는 좌석이 남아있었고... 그런 모든 우연이 겹쳐 ‘베를린의 한 저녁’이라는 헤프닝이 일어난다. 그것은 다른 모든 날들도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베를린 오케스트라의 멤버들로 구성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런 정도였다. 실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완성도의 문제?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완벽한 연주보다는 기억에 남는 연주회가 된 것 같다. 내가 ‘베를린의 아주 독특한 구조와 색감의 공연장’에서 그 공연을 만났다는 요소 외에,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다’라는 요소도 그날의 기억의 한 뼘을 차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비발디의 <사계> 독주자는, 세미욘 그레비치(Semion Gurevich)라는 이름의 약간 마른 남자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연주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티튜드가 독특했다. “나의 솔로 실력과 호흡을 이 챔버가 좀체 맞춰주질 못하는군!”하는 태도가 연주 중에도 역력했다. 연습이나 리허설을 할 때에는 그런 말을 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며 템포를 맞춰갈 수 있어도 무대에서만큼은 (대부분의 경우) 서로 ‘너의 실력은 정말로 대단해! 내가 이렇게 엄지를 들어 고마움을 표시할께!’ 라는 듯한 눈빛과 제스추어를 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는데, 이 남자는 도저히 그것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실력은 더 뛰어나다니까요!” 혹은 “이 부분 원래는 잘 되었는데, 오늘 내 소리, 왜 이래?”하는 표정들이 가감없이 튀어나와서 나도 모르게 소리 없이 웃게 되었다. 다른 ‘열심히 맞춰주고 있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멤버들의 꾹 참는 표정들도 리얼하고...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무대 위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직접 겪어보았기에, 한눈에 상황이 더 잘 파악되었던 것 같다. ‘멤버들이 보살이네’, 생각했다.


이 교회에는 5000개의 파이프가 있는 카를 슈케(Karl Schuke)의 오르간도 설치되어 있는데, 이 곳에서 오르가니스트 지오르고스 프라고스(Giorgos Fragos)가 연주하는 바흐 <토카타와 푸가>를 듣게된 것도 기억에 남을 일이었다. 얼마 전 KBS클래식FM ‘콘서트 즐겨찾기’ 코너를 위해 인터뷰했던 오르가니스트 박준호 씨는, 세상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오르간 소리를 비교하고 특성을 알기 위해 유럽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로써 나도 독일 동북쪽 한 코너의 오르간 사운드를 경험해본 것이다. 따단!

이날 공연장과도 어울리고, 내 기분과도 가장 잘 어울렸던 곡은, 소프라노 사라 구지(Sara Gouzy)의 모차르트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Lacrimosa)’였다. 차분한 음색의 모차르트 <레퀴엠>은 정말 혼을 위로하듯이, 아니면 혼을 달래주듯이, 추운 날씨에 우울로 치닫는 마음을 포근한 목소리로 꼭 잡아주었다. ‘추모 교회’라는 장소의 분위기와도 잘 맞는 선곡이었음은 물론이다.


이 곡을 끝으로, 음악회의 프로그램은 더 남아있었지만, 나는 자리를 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스스로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장장 네 시간 동안 자전거 패달을 돌려야하는 ‘베를린 온 바이크(Berlin on Bike)’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고, 나는 여행의 중반부에서 조금 지쳐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추슬러야할 시간이었다. 교회 주변은 벌써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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