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그리고 여행의 끝

라이프치히, 2019년 9월 6일

by kay



베를린 온 바이크(Berlin on Bike)는 웹사이트 https://berlinonbike.de/en/ 를 통해서 언제든지 예약할 수 있다. 자전거를 좋아한다면, 그리고 베를린 장벽을 포함한 베를린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4시간의 베를린 투어는 베를린이 파리의 다섯 배 이상 크다는 사실을 두 발과 허벅지로 느끼도록 하여주며, 자동차 투어로는 알 수 없는 베를린 자전거 라이더들의 터프함을 몸소 체험토록 해 준다. (다가오는 버스에 핼멧도 없이 맨몸으로 맞서며 우회전하는 베를리너들!) 11시 30분 시작한 Berlin’s Best(베를린 최고다) 코스는 예정 종료시간 2시 30분을 1시간 초과한 3시 30분에 마무리 되었고, 나는 5시 30분 기차를 타고 1시간여를 달려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라이프치히 역에는 여러 광고판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야겠다. 나는 라이프치히와 그 거룩한 이름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모든 음악인들의 ‘아버지 바흐’만을 생각했지, 게반트하우스(Gewandhaus)라는 또 다른 큰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기차역의 빨간 네온사인이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너 이거 놓쳤지?’ 나는 플랫폼에서 트렁크를 잡아 내리자마자 전화기 먼저 꺼내들었다. 한시가 급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공연... (검색, 검색...) 그러다 짜잔! 음악의 신이 말했다. ‘내 너를 가장 좋은 자리에 앉혀주마’.

게반트하우스 콘서트홀 전경2.JPG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Gewandhaus)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영국에서 열리는 ‘BBC프롬스’라는 125년 역사의 클래식 음악 행사 참가를 막 마치고 돌아온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Andris Nelsons)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가 들려줄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의 교향곡 8번(Symphony No. 8 (1890 version, ed. Nowak))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의 의미는, 지금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지휘자의 가장 좋은 컨디션을 원정 경기가 아닌, 홈그라운드 조건으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Andris Nelsons)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Gewandhausorchester Leipzig)

‘신중해야 해!’ 나는 핸드폰 화면 안의 몇 안 남은 예매 가능 좌석 표시를 보면서,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콘서트홀 좌석 선택에 있어, 1층 가운데 카테고리에 가장 가깝다든지, 맨 앞줄에 가장 가깝다든지 하는 획일화된 기준은 없다. 홀마다, 연주되는 곡마다, 협연자 유무에 따라, 심지어는 계절에 따라서도 음향과 쾌적함은 달라진다. 게다가 이 홀은 내게는 처음이니 더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좌석 배치도는 물론 홈페이지의 사진까지 구석구석 살피며 소리를 상상해봤다.






가능한 좌석 중 망설여지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었다. 웅장하고 긴 브루크너 8번을 마치 지휘자의 자리에서 듣는 것처럼 ‘폭발력 있게’ 들을 것이냐(지휘자의 뒷모습에서 직선을 그어 7-8번째 줄의 자리. 지휘자의 지휘 모습이나 표정도 좌우를 돌아볼 때 자세히 볼 수 있다), 아니면 흔히 ‘로열 박스’로 표기되는 한층 높은 곳의 측면 테라스의 맨 앞칸이냐(음향이 좋은 홀이라면 오히려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가 밸런스 있게 도달한다)였다. 나의 선택은 두 번째. 일단 긴 곡을 지나치게 앞에서 들으면 듣다가 피곤이 몰려오는 수가 있고, 홀의 음향 특성에 따라 관악기나 제1 바이올린 소리가 두드러지게 올라올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선택은 나에게는 적합했다. 아무튼 최대음량으로 듣기는 싫었으니까. 게반트하우스 홀은 음향이 너무나 뛰어나서 2층 테라스석에서도 오케스트라 소리가 굉장히 가깝게 들렸으며, 풍부하면서도 소리가 뭉치지 않게 잘 들렸다. ‘이래서 게반트하우스, 게반트하우스 하는구나’라는 말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물론이요, 홀에서도 여실히 느껴졌다. 홀 내외부의 디자인적인 아름다움보다는 홀 음향에 감탄했다. 단지 하나 의문스러웠던 부분은, 연주가 시작되어도 전혀 어두워지지 않는 객석이었다. (더 밝아졌는지도?) 세상에 태어나 들어가 본 모든 음악회장 중에서 가장 객석이 밝은 곳이었다. ‘왜지?’ 연주 내내 어색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독일 내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나와 몇몇을 빼면 흰 머리의 노부부들이 대다수였던 우리 ‘콘서트 고어(concertgoer)’들은, 어느 관객이라도 다른 관객을 또렷이 관찰할 수 있는 조명 아래, 브루크너를 감상했다. 밝은 조명 탓에 조금은 피곤했던 80여분의 긴 브루크너 연주(중간중간 눈이 피곤해질 때면 눈을 감고 들었다)가 끝나자 박수와 환호가 길게 이어졌다. 지난 드레스덴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유럽 관객도 잘 하는 연주에는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아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힘차고 열렬한 박수로 격려함을... 연주를 마친 안드리스 넬손스도 기쁜 모양이었다. 8월 23일의 ‘BBC프롬스’ 로열 알버트 홀 연주도 좋은 평가를 받고 9월 5일 다시 홈타운에 서서 환호를 받으니 기쁠만도 했다. 홀과, 연주와, 곡에 감탄하며, 나도 손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라이프치히 J.S.바흐의 묘

박수를 치면서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느꼈던가’ 돌아보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감흥은 내 인생에 어떤 자국을 남길 것인가? 다른 모든 경험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알 수 없다. 여행을 떠나기 전 충동적으로 예매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박수를 받는 이 연주자들은 먼 옛날부터 이곳 독일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또는 내가 앉아있는 이 장소가 내가 마음속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가고 싶다고 바라던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먼 하늘 우주에서 어떤 별과 어떤 별이 만날 때, 나는 거기에서 시원한 빗소리 같은 박수 소리가 날 것만 같다. 그리고 혹시 거기에 소리가 없다면 머리카락이 희어지도록 오래,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싶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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