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작년 6월, 함께 일하던 선배님께 드디어 말을 꺼냈다.
"저... 할 말이 있어요."
이 순간을 혼자 상상하며 수십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더랬다.
파트장님, 그리고 상무님까지. 함께 일하던 상사들에게 1년 동안 휴직을 해야겠다며 말을 꺼내는 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말을 건네는게 떨리긴 해도 드디어 휴직을 시작하는 게 설레고 신날 줄만 알았는데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내가 더 많이 힘들었던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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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게는 죄송스러운 이야기지만) 늘 나만의 브랜드를 세상에 선보이는 일을 꿈꿔왔던 나는 지금의 회사를 3년 정도, 길면 5년을 다니고 퇴사를 할 거라며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고 다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회사를 왜 그만두려고 하며, 너는 우리집의 돌연변이 같다는, 뼛속까지 공무원인 우리 아버지에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 할거야"라며 당당하게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회사 생활의 5년 동안, 나는 내가 점점 사라짐을 느꼈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자신감은 없어지고, 이 세상에서 혼자 동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 이 옷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느낌이 온 몸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도.. 회사 생활을 그만두면 당장 대출 이자는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내가 정말 온전히 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깜냥이 되는지, 한 프로젝트당 돈을 몇 십억 쓰는 대기업 글로벌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다가 내 사업을 하게 되면 10원 한 푼도 아껴써야 할텐데.. 내가 정말 현실 감각을 모르고 겁없이 이런 생각을 하는건지. 스스로 계속 헷갈렸다.
그런 와중에 회사에서 힘든 일이 계속 닥쳤다. 계속되는 조직 개편과 내부 이슈가 있었고, 어느 날에는 이 팀으로 옮겨졌다가, 또 다른 팀으로 옮겨지고, 애착을 갖고 리드하던 일들을 넘겨야했다. 내 자신이 마치 바다 위에 둥둥 떠 다니는 나뭇가지처럼 느껴졌다. 내 정체성인 밑둥이 잘려나가고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서 그냥 직업적 역할만 남아있었다. 내 일기장에는 회사에 대한 분노와 부정적인 이야기가 쌓여갔다. 회사를 생각하면 심장이 떨리고 잠에 들지 못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로서 살기 위해서는 이 끈을 내가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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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년간의 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 1년 동안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가꿔가는 시간을 갖자고.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자고.
22년 8월 1일, 나는 1년간의 갭이어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