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 짬뽕 파스타: 무효표 이상주의자들의 정치기만

by 고승환

오늘 저녁 친구들과 나눈 대화이다. 말투가 좀 이상한데 의견이 다를 때 감정이 상해서 싸우지 않기 위해 우리끼리 형성된 쿠션어 같은 것이다. 아무튼 무효표를 던질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갑론을박이 오갔다. 무효표는 정치적 불만과 실망을 표현하는 하나의 정치적 저항 행위라는 주장과 무효표는 정치적으로 아무런 실효를 가지지 못한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설득했고 선택은 각자에 맡겼다. 하지만 대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권은 시민이 가진 가장 소중한 권리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정치적 불만과 실망을 무효표로 표현하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무효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무효표는 의도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효표를 통해 현재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이나 모든 후보자에 대한 거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효표의 수는 집계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해석되지 않는다. 실수인지, 항의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무효표가 현실에서 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려면 일정 비율 이상의 무효표 발생 시 재선거 실시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무효표 비율과 관계없이 최다득표자가 당선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무효표의 비율을 통해 선택을 유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반드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효표는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한다.


중국집을 예시로 들겠다. 당신은 친구와 중국집에 갔다. 친구가 메뉴판을 펼쳐 들며 짜장과 짬뽕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파스타가 먹고 싶다. 짜장은 어제 먹었고 짬뽕은 너무 맵다. 그래서 당신은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중국집에서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 행위를 통해 중국집에서 파스타를 파는 변화와 중국집 사장의 쇄신을 기대한다.


결국 친구는 자기 것만 주문하기로 하고 주문표에 짜장 한 개를 적어 카운터에 전달한다. 그런데 카운터 직원이 주문표를 누락하여 주방에 전달되지 못했다. 당신과 친구 둘 다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파스타 파는 날을 기다리고 친구는 실수가 발생한 것도 모르고 짜장을 기다린다. 중국집 주인은 저 두 사람이 왜 가만히 앉아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 예시를 통해 무효표 유효성 주장이 논리적 모순을 넘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변화는 완벽한 후보자의 등장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더 나은 대안을 지속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기대에 완벽히 부흥하는 완벽한 후보자와 완벽한 정당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파스타가 먹고 싶어도 중국집에 온 이상 짜장과 짬뽕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파스타라는 무효표는 짜장이나 짬뽕을 선택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현상 유지에 기여하거나 오히려 끼니를 굶어야 하는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온다. 완벽함을 추구하다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은 이상주의적 순수함처럼 보일 수 있지만 현실 정치에서 가장 무책임한 태도다.


더 나아가 당장의 선거가 아닌 차기 선거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이 주장은 조금만 살펴보면 여러 결함과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는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변화를 만들겠다는 모순적 사고이며 침묵함으로써 목소리를 내겠다든지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행동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설령 무효표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시간 지연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정치는 매 순간 국민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을 내리고 있다. 정치적 변화에 따른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안정된 기반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누가 당선되든 일상의 큰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외계층과 빈곤계층 등 정책적 변화에 민감한 계층에게는 선거 결과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 사회보장제도 변화, 주거정책 방향 등은 이들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사안이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짜장이든 짬뽕이든 당장 먹을 것이 절실하다. 파스타를 기다리며 굶을 여유는 없다.


무효표는 미래의 불확실한 변화를 기대하며 현재의 구체적 영향력을 포기하는 극도로 비합리적인 결정이자 절박한 현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치적 순수성만을 지키려는 이기적 행위에 불과함은 물론이요 지성인으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할 고통받는 자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저버리는 배신 행위다.


권리니 책임이니 하는 것들을 다 차치하더라도 역사적으로 무효표가 체계적 변화를 이끈 전례가 전무하다. 반면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한 변화의 사례는 무수하다. 모든 사회적 변화는 선거를 통한 정치적 선택과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다. 무효표의 정치적 기능에 대한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부재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된 적 없는 허황된 환상이다.


정치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감정을 무효표라는 무력한 수단으로 표출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무효표라는 환상에 기대지 말고 지금-여기에서 지금-당장 가능한 적극적 정치 참여를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시민들의 완벽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시민들이 불완전한 선택을 하며 끊임없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 사회를 계속해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오늘은 중국집에 왔으니 둘 중 하나를 먹어야 한다. 파스타를 원한다면 메뉴를 바꾸는 일에 함께 나서보자. 변화는 불완전한 선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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