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닫고 설탕 세 번

by 고승환
hangang.jpg 출처: Pinterest

그는 이상하리만치 눈에 잘 띄는 사람이었다. 키가 크거나 목소리가 유난히 크다거나 그런 외형의 돌출은 없었지만 그가 들어서면 공기부터 먼저 눈치를 채는 듯했다. 마치 누군가 방의 각도를 미세하게 기울여 놓은 것처럼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잡고 눈을 들어 보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도 얼굴보다 목 아래로 먼저 시선이 떨어졌다. 셔츠 단추 하나가 느슨하게 채워져 있었고 그것은 우연이라기보다 의도된 흐트러짐처럼 보였다. 그런 디테일은 대개 무심함이 아니라 취향의 일종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완벽함이란 종종 결핍을 통해 완성된다. 마치 음악에서 쉼표가 없다면 선율이 숨을 쉴 수 없듯 완벽한 정돈 속에서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린 한 가지는 전체를 더욱 완성된 것으로 만든다. 그는 그런 디테일을 아는 사람 같았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완벽함을 찾아내는 동시에 부족함을 통해 충만함을 표현하는 그런 미감을 가진 사람.


우리는 독립서점에서 마주쳤다. 서교동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었는데 천장이 낮고 책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동굴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페소아의 시집을 들고 있었고 그는 책 등이 아닌 손끝을 흘끔 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너무 설명적인 시는 피곤하지 않냐고. 그 말에는 어떤 단정함이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던 사람 같았다. 나는 무심하게 그를 흘깃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호기심과 동시에 어떤 판단을 내리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마치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예측하려 드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설명할 수 있는 자신을 갖는 편이 더 좋은 것 아니냐고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이 그와의 첫 대화였다. 첫 대화가 반드시 인연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문장이 우리를 어느 선로에 태운 것은 확실했다. 내 대답에 그는 잠시 멈춰 섰다. 페소아의 시집을 내려다보더니 혹시 불안의 서도 읽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읽었다고 답했고 그는 소아르스가 페소아보다 더 솔직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웃었다. 허구가 진실보다 정직할 때가 있다고. 우리는 처음을 만나 처음으로 대화를 하며 처음으로 웃었다. 그 웃음은 단순한 유머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서로의 생각이 맞닿은 순간에 대한 기쁨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그런 종류의 진실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며칠 뒤 우리는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먼저 연락했다. 짧은 문자였다. 카카오톡도 인스타그램 메시지도 아닌 진짜 문자였다. 카페 가실래요? 물음표 하나가 전부였지만 그 간결함에는 만나고자하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골목 안쪽에 숨어있는 작은 카페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간판도 작고 입구도 좁아서 지나가다가는 놓치기 쉬운 곳이었다. 내부는 더욱 아담했다. 테이블은 네 개가 전부였고 창문은 모두 닫혀있었다. 나는 그가 창을 열어주길 내심 바랬지만 그는 설탕을 세 번 넣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나의 컵을 훑었고 내가 커피보다 쥬스를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종류의 관찰은 낯설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아는 사람 앞에서 나는 갑자기 투명해진 것처럼 느꼈다.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나의 글을 읽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읽었다는 사실보다 어떤 글을 읽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어떤 문장에 오래 머물렀는지, 어떤 단어에 눈을 두었는지 혹은 내 문장의 쉼표 하나를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그는 어떤 글을 읽었냐는 물음에 대답 대신 왜 그렇게 자주 끝에서 시작하느냐고 되물었다. 그 질문은 내 가장 감추어둔 서랍을 조용히 열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을까? 나는 정말로 끝에서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결말을 정해 두어야, 결말을 알고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내 글쓰기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다. 작가라는 호칭이 수치스러울 때도 있죠? 나는 늘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가끔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때 그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는데 그 순간 나는 그가 내 문장의 리듬만이 아니라 숨소리의 템포까지 듣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끝에서 시작하는 게 뭔가요? 그가 재차 물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말을 알고 있으면 시작을 다르게 쓸 수 있다고 답했다. 마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삶을 새삼 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예언자네요, 아니면 신이거나. 나는 신을 시인으로 잘못 알아듣고 요즘 시는 자주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시인이 아니라 신이요라며 웃었다. 우리가 두 번째로 웃었다. 그의 웃음은 내 오해를 비웃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해조차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수용의 웃음이었다. 그의 질문은 늘 방향을 갖고 있었다. 그냥 궁금한 게 아니라 나를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말은 조용했지만 목적이 있었다.


그는 오래된 수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손때가 묻은 가죽 표지에 한쪽 모서리는 벌어져 있었다. 일본에서 산 유명한 브랜드의 수첩이라고 했다. 그는 가끔 이 수첩을 넘긴다며 머릿속보다 이 종이가 더 정직하다고 했다. 나는 수첩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날짜 없는 문장들이 이리저리 얽혀있었다. 어떤 문장의 찰나의 의식이었고 어떤 문장을 회피를 하려다 문득 부딪힌 생각 같았다. 그의 글씨는 독특했다. 또박또박하지만 어딘가 서두르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생각이 너무 빨라서 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언젠가 이걸 시집으로 묶을 생각이 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고 아마 시집보다는 유서가 될지도 모른다며 조용히 웃었다. 그의 말은 종종 담담했고 그래서 종종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연극 무대처럼 잘 짜여진 장면 같았다. 죽음에 대해 이토록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무거운 주제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올 때는 마치 날씨 이야기처럼 가벼웠다.


우리는 몇 주 동안 만났다. 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제쳐두고 그를 만났다. 때로는 산책을 했고 때로는 영화를 보았고 때로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침묵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함께 걸을 때 그는 종종 멈춰 서서 나무나 건물이나 지나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 나는 가끔 그가 미친놈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무엇을 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것을 보는 것인지.


그때는 한강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늦은 오후의 저물어가는 햇살이 물 위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봄이 깊어가는 시기였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그 대조가 아름다웠다. 그는 어김없이 멈춰 서서 물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옆에 서서 기다렸다.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시선이 물 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그를 관찰했다. 그의 옆얼굴, 그의 숨소리, 그의 손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 역시 그를 읽고 있었다. 물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세요? 그가 말했다. 그런 물이 이렇게 흘러가는 게 참 신기해요. 사람들은 이걸 매일 한강이라고 부르는데 물들은 조금 억울할지도 몰라요. 어제 한강이라 불렸던 물들은 다 떠나가고 없잖아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철학에 조예도 없고 관심도 없고 공부한 적도 없지만 종종 철학적으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게 따지면 사람도 마찬가지죠. 늘 같은 사람이 어디 있나요? 작년의 나랑 오늘의 나는 다른데 늘 고승환으로 불리잖아요. 그가 홱 돌아보며 씩 웃었다. 그 미소는 동의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가 기억을 조율하는 방식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그는 오래 남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순간을 오래 기억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세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물가에서 바라본 옆얼굴만은 선명하다. 무대가 바뀌어도 무너지지 않는 장면을 설계하는 이. 그는 어떤 순간이 지나가야만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와 함께한 순간들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우리는 함께 음악회에 간 적이 있었다. 서울의 작은 공연장에서 열린 아마추어 연주회였다. 첼로와 피아노가 브람스를 연주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곁눈질로 그를 보았다. 그의 눈은 가끔 똑바로 연주자를 응시하고 있었고 가끔 감겨 있었다. 그의 손은 무릎 위에서 지휘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올 때 그는 환하게 웃었는데 나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반응의 아름다움. 나는 그를 따라 웃었다. 우리의 세 번째 웃음이었다.


하루는 그렇게 걷다가 그가 말했다. 만약에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를 낳았다면 가장 먼저 가르치고 싶은 건 뭐예요? 나는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칠 것이라고 생각보다 쉽게 답했다. 그 대답에 그는 당신은 자기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기쁘지 않았다. 나와 닮은 사람을 내가 사랑하게 되는 건 조금 슬프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참으로 막연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내일 무엇을 할지도 확신할 수 없으면서 먼 미래에 대해서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희망일까 도피일까? 나는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읽고 나서 조금 다른 사람이 되게 하는 문장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반대로 깨끗하게 잊혀지고 싶다고 했다. 어느 날 죽게 되면 비석도 없이 반듯한 흙 속에 묻혀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나를 오래도록 생각하길 바랬지만 동시에 그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몇 주가 더 지났고 우리는 여전히 만났고 여전히 대화했고 여전히 침묵을 나누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끝의 기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단지 공기 중에 떠도는 어떤 감정이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는 지점.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지점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는 돌아서기 전 내 시집에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그는 무명일 때 받은 게 더 소중하다고 했다. 나는 웃었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나는 종이 위에 이름을 썼다. 그리고 아래에 작은 글자로 적었다.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는 그 글을 읽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그 책을 오래 간직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사인을 하면서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떠나기 전 기념품을 원하는 것 같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예상대로 연락이 뜸해졌다. 처음에는 바쁜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나는 그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그 다운 이별이었다. 말로 설명하지 않고 서서히 투명해지는 이별.


나는 그의 방식을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서 온 메시지는 짧았다. 방금 시집을 다 읽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네요. 나는 답장을 보내려 했지만 그것이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것이 슬펐고 아름다웠고 어쩐지 견디기 어려웠다.


그날 이후 나는 가끔 그를 떠올린다. 어떤 사람은 매일이 아니라 매년 생각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순간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인데 그는 그 둘의 중간쯤 어디에 있었다. 비슷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음악이 끝날 때마다 그가 떠올랐다. 느슨하게 채워진 셔츠 단추, 설탕을 세 번 넣는 커피, 음악이 끝나는 순간의 침묵.

가끔 어떤 장면은 기억 속에서도 그대로 무대처럼 남는다. 그가 결국 열지 않았던 카페의 창문, 수첩을 꺼내 펼쳐들던 동작, 조용히 건네던 질문의 방향, 한강을 바라보던 그의 옆얼굴, 음악 속에 거주하던 그의 환한 웃음, 내 이름을 받아적던 조심스러운 손놀림. 나는 그 장면들을 지금도 다르게 본다.


그는 늘 현재에만 머물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로 인해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고 어쩐지 세상에 더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남긴 말들은 종종 내 문장의 어딘가에서 부유했고 나는 그의 눈길 하나를 편집 없이 통째로 떠안게 된 글을 쓰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나는 많은 글을 썼고 작은 상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끝에서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결말을 알고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나의 방식이었고 그는 그것을 발견해 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이었다.


지금도 가끔 나는 그를 떠올린다. 그의 연락처를 알고 그가 사는 집을 알지만 나는 그를 떠올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커피에 설탕을 넣을 때, 음악이 끝나는 순간, 누군가 시집에 사인을 적어달라고 할 때. 그럴 때마다 나는 그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그 수첩을 사용하고 있는지, 여전히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지. 하지만 나는 그를 찾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다. 아름답게 끝낼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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