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을 공부하며 얻은 가장 무거운 통찰은 모든 아름다움은 무죄하지 않다는 것이다. 미학이라는 것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끝없는 여정인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잔혹한 대가를 치르며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상들이 보여주는 완벽한 비례와 조화는 노예제라는 토대 위에서 꽃피운 귀족적 여유의 산물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황금비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피로 계산된 것이며 그 숭고함은 결국 제국주의적 확장의 부산물이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장엄함은 절대 왕정의 허영과 민중의 궁핍 위에 건설되었고 바그너의 오페라는 나치주의의 미학적 도구로 전용되었다.
내가 미학을 공부한 뒤로 예술작품에 대해 맥락주의 관점을 견지해 온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모든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창작된 시대와 작가의 사상 그리고 그것이 시대를 떠나 미술관에 박제될 때의 사회정치적 조건들을 반영해야 한다. 작품을 그 맥락에서 분리하여 순수한 미적 개체로만 감상하려는 작가주의적 접근은 결국 예술이 가직 사회적 의미와 역사적 책임을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다. 바그너의 음악을 순수한 음악적 아름다움으로만 접근한다면 그것이 내포한 나치즘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놓치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였다 하더라도 그 작품들이 교황청의 정치적 의도와 메디치 가문의 경제적 후원 관계 속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도 없고 무시해서도 안된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은 권력의 언어였으며 권력은 언제나 폭력과 배제를 수반했다.
그렇다면 현대에 와서는 어떨까. 현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미학과 권력의 공모 관계가 더욱 정교하고 은밀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현대 미술과 음악이 나날이 난해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예술적 실험 정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위계를 구축하려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현대 예술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포착하려는 개념미술이나 건반을 건드리지 않는 피아노 연주곡 같은 실험음악은 분명 예술사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불릴만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특정 문화적 자본을 소유한 소수의 엘리트 계층만이 접근 가능한 영역을 창출한다. 민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호와 은유로 가득한 예술은 그 자체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권력을 작동시킨다.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미학을 공부하면서 나 역시 이러한 지식 제도권의 권력 작동 방식에 편승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제도 속에서 사고하고 글을 쓰며 오늘날의 권력 구조를 공고히하고 나아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코 자본주의 권력에는 편승할 수 없을 것이다. 창조하는 자는 언제나 향유하는 자에게 지배당하기 때문이다. 내가 저항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지식 권력이 자본의 욕망과 손을 잡는 순간 예술은 타락하고 사유는 경직된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예술 중에서도 지금껏 문학은 권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작동해왔다는 것이다. 문학은 노예제를 공고히 하지 않았고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서서 폭력과 억압에 균열을 내는 목소리였다. 문학은 언제나 권력의 주변에서 목소리를 내었으며 그 목소리는 언제나 제도보다 멀리 파고들었다.
그렇다고 문학이 마냥 숭고하지는 않다. 문학 역시 국가의 이데올로기 선전에 사용되기도 하였고 전쟁을 찬양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학이 가진 본질적 특성은 권력 지향적 기능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문학은 창작에 있어서 언어라는 가장 민주적이고 저렴한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 건축이나 미술과 달리 문학은 오직 경험과 감각만을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정교한 텍스트를 생성해도 인간의 구체적 경험에서 나오는 진정성은 대체될 수 없고 쇼츠와 릴스가 아무리 발달해도 깊이 있는 성찰과 감정을 담아내는 문학적 언어의 힘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결국 문학은 우리가 미학과 권력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되 권력에 포섭되지 않는다. 예술적 탁월함을 지향하되 소통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개인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지 않는다. 문학을 읽고 쓰는 행위 자체가 이러한 균형 잡힌 미학적 실천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아름다움의 죄를 인식하면서도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결정한 성숙한 미학적 태도의 구현이자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