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끝에서 만난 나

두 번째 일본 여행 이야기

by 김희연

내 두 번째 일본 여행 이야기는 강릉에서부터 시작된다. 친구에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왔다.​“1박 2일로 강릉 가서 따로 놀고 올래?​“ 사실 당황스러웠다. 같이 가서 따로 논다는 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친구도 혼자 여행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 왔다 갔다 하기에는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오사카 여행을 이틀 앞두고 강릉으로 떠났다. 혼자만의 긴 시간을 갖게 된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인생에서 다시 없을 정도로 게임에 빠져 있었다. 친구들과 모여 앉아 게임을 하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휴학 중이던 나에게는 가장 큰 일탈이었다. 매일 친구를 만나고, 밤을 새우고, 잠깐 눈을 붙이면 다시 게임을 했다. 부끄럽지만, 내 인생의 작은 한 장면일 뿐이다. 그렇기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방탕한 나날은 방탕한 대로 즐거웠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도 돈은 벌었고, 그 돈으로 여행 기회를 노렸다. 게임에 미쳐 있었던 건 맞지만, 일본어 공부도 매일 1시간씩은 했다. 물론 비중은 맞지 않았다. 게임은 하루 8시간 이상, 일본어는 고작 1시간. 그래도 매일 공부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려고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게임으로 채워진 시간이 늘 좋았던 건 아니다. 정말 말 그대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나는 이러려고 휴학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다시 나를 찾기 위해 오사카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강릉과 오사카를 합치면 6일이 넘는 일정이었다. 짐은 많았지만, ‘이번에는 게임이 아니라 여행이다’라는 설렘이 앞섰다. 출발 당일 친구를 만나 서울역으로 향했고, 도착하기까지 먹을거리도 즐기며 강릉에 도착했다. 강릉역 앞에서 친구와 헤어진 나는 작년에 갔던 강문해변으로 향했다.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같은 음식을 먹으니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강릉에 나만의 장소가 생긴 기분이었다. 바다 앞에 앉아 책도 읽었다. 낭만적일 줄 알았는데, 해가 지자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책을 코앞에 들이대기도 했다. 그래도 바다를 바라보며 책을 읽을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는 건 아니다. 나는 그렇게 강릉을 느꼈다.


그날 밤, ‘강릉골방’이라는 혼술 바에 갔다. 따뜻한 팝송이 흐르고, 짧은 영상을 보며 그곳의 일기장에 글을 남겼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푸념을 털어놓고, 또 누군가는 그 글에 감상을 남겼다. 낯선 이들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묘한 위로였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강릉역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즐겁게 놀았다며 웃었다. 인천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유명한 카페 세 곳을 돌며 작은 ‘카페 투어 퍼레이드’를 했다. 예쁜 사진을 찍고 인증샷도 남겼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깨달았다. 둘이 여행을 가서 각자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혼자 여행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다면, 친구와 함께 같은 지역에 머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친구와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겐 곧바로 내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짧게 눈을 붙인 뒤, 공항으로 향했다.



오사카에 도착하자 후쿠오카에서 맡았던 것과 같은, 일본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다.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에서만 맡을 수 있는 향이다. 후쿠오카 여행에서는 일본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매일 1시간씩 공부해온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고, 일본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문법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언어는 단순한 공부가 아니라 ‘몸으로 학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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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도톤보리 바로 앞에 있었다. 맛집 웨이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3박 4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도톤보리를 걸었다. 지금 다시 가도 길을 기억할 수 있을 정도다. 밤마다 일본 유흥가를 구경했고, 길거리 음식도 다양하게 맛봤다. 꼬치 한 개에 100엔 정도 하는 가게에서 생맥주와 함께 먹은 꼬치는 기분을 날아갈 듯 좋게 만들었다. 동생과 영상통화도 했다. 도톤보리 강가의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국 굿즈를 사 오는 숙제만 짊어졌지만, 가족과 연결된 그 순간은 따뜻했다.


후쿠오카에서의 시행착오 덕분인지 이번 여행은 훨씬 준비된 모습이었다. 방탕했다며 나를 질책하던 나는, 결국 방탕함이 있었기에 성취감도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방탕한 생활을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방탕했던 날들이 있었기에 내일의 나를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완벽하고 성장한 모습만이 ‘나’는 아니다. 때로는 구석에 숨어 있는 모습까지도 내 일부다. 그 모든 나를 받아들이고, 내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나의 두 번째 일본 여행 이야기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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