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일본 여행 이야기
오사카 여행은 가장 친한 친구와 떠난, 정말 갑작스러운 여행이었다. 사실 ‘계획’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즉흥적이었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때마침 서로의 일정도 잘 맞았다. 나는 3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기에 그야말로 인생에서 다시 없을 ‘노는 주간’이었다. 일상이 지루해지던 어느 날, 우리는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그것도 바로 당일에. 국내 여행은 비쌌고, 마침 일본 대지진 예언 소문으로 항공권 값이 내려가 있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눈치를 보며 웃다가, 다음 날 일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사카에 도착했을 때는 한여름이었다. 땀이 주르륵 흘러내려도, 화가 나도, 그 모든 게 좋았다. ‘물 건너 일본에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도톤보리로 향했다. 첫 오사카 여행은 혼자 갔던 터라 이번에는 친구와 예쁜 사진을 꼭 찍고 싶었다. 그래서 투정을 부리며 친구를 구박하기도 했지만, 결국 좋은 사진을 많이 건졌다. 길가에 주저앉아 비를 맞으며 다음 목적지를 고민했던 순간조차 지금 떠올리면 즐거운 기억이다.
둘째 날 아침, 친구가 늦잠을 자는 동안 나는 카페에 앉아 일본어 공부를 했다. 일곱 번째 일본 여행이었기에 더 능숙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친구는 영어를 잘했으니, 나도 뭔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후 우리는 오사카의 K바에 갔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뒤섞여 한국어와 일본어를 오가며 떠들던 그곳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바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친구에게 의존했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밤을 새우며 웃고 마셨다. 새벽 7시가 넘어서야 술자리가 끝났고, 우리는 녹초가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와 크게 다투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내 마음속 서운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다독이는 친구의 모습에 결국 감동했고, 화해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깊이 느꼈다.
그러나 화해 직후부터는 또 다른 고난이 이어졌다. 잠도 못 자고, 바퀴가 고장 난 캐리어를 끌며 환승에 실패하고, 숙소 취소도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일본 길바닥에 주저앉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너무 힘들면 웃음이 나온다 하지 않던가. 우리는 그 상황에서도 크게 웃었다. 화해 직후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행복했다. 가장 육체적으로 힘든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웃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결국 교토로 향했다. 서정적인 기온 거리를 걸으며 가게에 들렀고, 카키고오리(빙수)를 나눠 먹었다. 피곤에 지친 몸을 숙소에 눕히며 한숨 돌렸다. 그러나 그날 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육체적 고통이 찾아왔다. 요로결석이었다. 20대 초반에 겪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새벽부터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며, 결국 귀국편 항공권을 끊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교토에 온 첫날이었는데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끝까지 옆에서 웃으며 나를 다독여 준 친구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알았다. 요로결석은 단순히 ‘돌’이 아니라, 기관을 찢어내며 흘러가는 돌이라는 것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여섯 번째 여행에서 나는 친구의 소중함과 함께 몸 관리를 절실히 배웠다.
그 후 나는 직장에서의 문제를 해결했고, 친구는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 일상은 그렇게 다시 흘러갔다.
몸과 마음이 들려준 여행의 언어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