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위에 쌓인 하루

일본 여행 그 후 이야기

by 김희연

일곱 번의 일본 여행은 내게 도전의 무대였다. 하지만 여행이 끝났다고 해서 내 삶의 여정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얻은 도전의 힘은 한국에서도 계속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무대는 멀리 떨어진 나라가 아닌, 바로 홍천강이었다.


마지막 마츠야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일곱 번의 여행이 남긴 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자 삶을 버티게 해주는 기둥 같은 힘이었다. 그 시간들은 내 안에 튼튼한 기둥을 세워주었고, 나는 그 위에 새로운 장식을 얹어가야 했다. 인생이란 결국 기둥과 장식의 균형일지도 모른다. 기둥만 단단하다면 외롭고, 장식만 화려하다면 금세 무너진다.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 우울은 깊었고, 스스로의 이기심 때문에 혼자가 되었다고 믿으며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의 만남은 내 삶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땀 흘리는 걸 싫어하던 내가 배드민턴을 치고,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작은 나무 조립을 하며 웃음을 되찾았다.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 속에서 ‘함께’라는 단어가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다. 상실의 슬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덮어줄 새로운 기쁨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홍천으로 향했다. 낚시를 좋아하는 지인 덕에 처음으로 낚시를 해봤다. 아버지와 멀었던 나에게 낚시는 낯설고 서툰 경험이었지만,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좋아한다면 그저 하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얻은 첫 번째 깨달음이었다. 홍천강에서의 낚시는 내게 특별한 낭만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가성비 여행을 핑계로 차박을 계획했다. 잦은 일본 여행으로 지갑은 얇아져 있었지만, 먹는 것만큼은 아끼지 않기로 했다. 강가에 도착해 돗자리를 펴고, 각자 자리를 잡아 일을 나눠 맡았다. 나는 고기를 굽고, 친구들은 준비해온 재료를 꺼내고,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핸드폰도, TV도 없는 하루였지만 우리의 젊음은 오히려 뜨겁게 불타올랐다.

밤이 되자 우리는 별을 올려다봤다. 내가 일기장을 꺼내 방문록처럼 한 줄씩 적게 했는데, 친구들은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글을 남겼다. “싫었는데 막상 써보니 마음이 정리된다”는 말에 나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기록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상처가 흉터로 바뀌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는 듯했다.


밤은 깊었지만 우리의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차박을 계획했지만, 결국 누구도 잠들지 못한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새벽이 밝자마자 우리는 강으로 뛰어들었다. 소문처럼 강은 깊고 거칠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열심히 수영하며 강 끝자락까지 가보려 했지만, 절반쯤에서 멈췄다. 실패라기보다는 도전이었고, 그 순간은 충분히 특별했다. 맨발에 느껴지는 진흙과 돌들은 새 자국을 남겼다.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실컷 놀고 난 우리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운전대를 잡아준 형 덕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홍천은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작은 시골 마을일지 몰라도, 내게는 새로운 섬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홍천에서 돌아온 나는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오래전부터 관심 있던 동북아의 역사와 인문학. 이전에는 상처로만 소모하던 에너지를 이제는 자기 계발로 바꾸고 싶었다. 물론 언어 공부는 쉽지 않았다. 다른 문화와 생각의 차이가 뚜렷하게 느껴졌고,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본 여행에서 배운 건 바로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마음가짐이었다. 그 마음 하나로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충분했다.


홍천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다.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엔 따갑던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딱지가 앉고, 딱지가 떨어지면 흉터로 자리 잡는다. 흉터는 지워지지 않지만,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증거다. 그리고 그 흉터들은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일곱 번의 일본 여행이 내게 도전의 무대였다면, 홍천은 흉터를 받아들이고 여유를 배우는 자리였다. 나는 이제 이 흉터들과 함께 앞으로의 길을 걸어가려 한다. 다음 여행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길 위에 설 때,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음은 첫 여행 에세이를 마무리하는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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