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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Dec 13. 2019

배고프지 않아요!

이곳의 생활방식을 존중하기 – Bruderhof 공동체생활11

조&제인 부부는 조할아버지의 어머니를 뵈러 외출을 하셨다. 올해 87세이신데 이삼주 째 음식을 잘 못 드시다고 한다. 죽음이 거의 다가왔고 하나님 곁으로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주 평안하시단다. 제인할머니의 엄마는 97세이신데 식사도 잘하시고 대화도 잘하신단다. 공동체에서는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잘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나이 드는 내가 좋다’라는 책도 발간했다. 나이 듦에 대해, 노년의 삶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 바꿀 수 있는 참 좋은 책인 것 같다.    

  

아침 작업을 시작하기 전, 웰컴룸에 들러 책을 몇 권 더 골랐다. 한국어로 번역이 된 책이 상당하다. 1권에 5달러를 기부하면 되니 몇 권 한국으로 선물을 보내야겠다. 아이들, 가족에 대한 책이 특히 많다. 이번 금요일에 떠나니 벌써부터 어떻게 마무리를 잘할까 머릿속이 분주하다. 아빠가 민서는 배고플까 봐 걱정, 지민이는 적응을 잘할까 걱정을 했는데... 민서는 “아빠, 저 배고프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답장도 하였다. 지민이는 언니 곁에 앉고 싶어서 떼쓰는 것이 시들해졌다. 점심시간에 전체가 기도 할 때도 조용히 해야 하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엄마에게도 고분고분, 존댓말을 사용한다. 아이들이 조금씩 적응이 되고 있다.    

  

오늘 공장에서 같이 일한 친구는 18살 지니이다. 영국 다벨공동체에서 자랐고, 작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에 갔다가 올 1월에 메이플릿지에 왔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년간 공동체에 보답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지니의 오빠는 런던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있고, 남동생이 다운증후군이어서 지니는 장애아동에게 관심이 있다. 그런데 손을 보니 반지가 끼여있지 않다. 공동체 멤버 서약을 아직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한다. 구는 작은데 시원시원 일을 잘하는 지니는 질문이 많다.

“어디에서 살아요?”

“도시인 가요?”

“서울은 높은 빌딩이 많다는데 어떤가요?”

“이곳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영국 다벨공동체에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는데 그때 들은 내용이 질문으로 바뀐 듯하다. 부르더호프 식구들에게 한국인은 친숙한 사람들이다.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아 위기 상황이 많은 나라, 최근에는 세월호 참사로 몇 백명의 아이들을 저 세상으로 보낸 나라이다. 일상이 매우 분주하고 성공에 대한 피로감을 많이 느끼는 나라인데, 공동체에 관심을 가장 많  보인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공장에서 일할 때 어떤 사람들은 “똑바로 하세요~!”, “빨리빨리 하세요~!”라는 말을 곧잘 한다. 그 말을 들을 때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5시에 일을 끝내고 아이들이랑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픈가 보다. 제인할머니가 어제 먹다 남은 김밥을 데우지 않고 내놓으셔서 아이들이 못 먹겠단다. 평생을 이곳에서 생활한 사람들에게 빵 한두 조각의 저녁식사, 한두 끼 굶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닐 것이다. 반면 집을 떠나왔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는 빵 한 조각 저녁식사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옆집 나나에게 아이들 저녁밥을 물었더니 “빵 한두 조각으로 해요. 그걸로 충분해요~ 점심때 맛있게 먹었으니까~”라고 한다. 속이 상해 불을 켜서 프라이팬에 김밥을 데워준다. 내 표정이 굳었었는지 제인할머니가 갑자기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Ray~ 오늘 저녁은 6시 30분부터 야간작업이 있어요.”

“그래요? 제인~~ 저 오늘 웰컴룸에서 인터넷 사용하기로 루크한테 허락받았는데... 시간이 별로 없네요~”

열흘만에 메일 확인도 하고 연락도 좀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30분밖에 없다니... 카톡으로 겨우 남편과 직장에 소식을 전한다. 일하러 갈 시간이 다 되어가니 마음이 너무 급해진다. 가능하면 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제일 힘든 것이 인터넷 사용이다. 아무도 없을 때 핸드폰을 들고 이 방에 들어와서 인터넷 와이파이 연결을 하고 통화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갑작스러운 야간작업 추가에 짜증이 몰려온다. ‘이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하렴, Ray~ 너 경험하러 왔잖아~~’ 나를 다독인다.  

    

엄마가 저녁에 일하러 간다고 아이들은 야단이다.

“돈도 안 받으면서 왜 가요~?”

“우리가 여기서 생활하고, 너희들 학교 가는 것 돈도 안 내는데~ 당연히 가야지. 여기 사는 사람들 다 하는 일이야~”

공장에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근처 Mount공동체 사람들까지 도움을 주러 왔다. 여기에서 만든 물건을 처음 봤을 때는 “너무 비싸요~”했는데, 원목을 수작업으로 가공하는 일을 직접 하다 보니 “비쌀만하고만~”으로 바뀌었다. 돈 많은 부자들, 특히 자녀들의 건강과 안전을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다는 것이 좀 아쉬울 뿐이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와 조&제인과 간단한 간식을 먹고 아이들 옷을 살핀다. 샤워를 하고 손빨래를 하였다. 공동체 세탁소가 있는데 거기 맡기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해서 손빨래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낮에 비를 맞으며 풀 뽑기 수업을 해서 빨 옷이 더 많다.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려고 방에 갔다가 민서가 어제 쓴 일기를 얼핏 보았다.

“거실에서 놀고 있는데, 제인이 들어가라고 했다. 제인 나쁘다!!(나쁜 말이 하고 싶지만 안 하겠음)”

상상이 간다. 나는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제인할머니는 손주들이 와서 함께 하고 있었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할머니, 요란스럽게 노는 우리 두 딸들...


‘에구... 집 나오면 고생이란다. 딸들아~~’      

아이들도, 나도 조금씩 적응을 한 것 같은데...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다. 백여 년의 삶이 그렇게 쉽게 익숙해질까? 

그냥 따라 해 보는 거야. 존중해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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