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ay Dec 16. 2019

제인할머니는 선생님

문화 & 세대 차이가 힘들어– Bruderhof 공동체생활12

6월 초인데도 삼일째 비가 내려서 아침 날씨가 쌀쌀하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제인할머니도 본인 스케줄을 이야기한다.

“얘들아. 나는 오늘 학교에서 책 정리를 도와줄 거야~”

지민이가 한 마디 한다. “제인은 선생님이잖아요~”

할아버지도 한 마디 거든다.

“맞아요. 제인은 항상 선생님이에요~”

제인할머니는 지민이의 말에 좋아한다. 과거에 자신이 선생님이었던 것을 알아준다고 느낀듯 하다. 그런데 나는 좀 아쉽다. 항상 확인하고 진행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조금 더 다정한 할머니였으면 좋았겠다 싶다.     

 

어젯밤 제인할머니는 특별히 보라색 초를 꺼내 놓았다. 비 오는 아침이랑 참 잘 어울리는 색이라 생각했는데... 두 아이가  열광하는 촛불 끄기 시간에 양쪽에서 맞바람을 부는 바람에 촛농이 트림을 했다. 예쁜 식탁과 식탁보에 잔뜩 떨어진 촛농 때문에 제인할머니가 금세 화가 나서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민서에게 직접 치우라고 하니, 민서의 기분상하고 대뜸 짜증을 낸다.

“엄마, 나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어~~”

“민서야~ 어디를 가나 똑같아. 생각해봐~ 너는 언니잖아. 맨날 동생이랑 똑같이 할 거니? 지민이가 불고 있는 것을 네가 봤는데 똑같이 하다니... 봐봐 할머니 저렇게 닦고 있잖아..”

결국 민서는 제인할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제인할머니는 민서에게 사랑한다고 포옹을 했다. 마무리는 잘 되었지만, 엄마 마음은 그리 편치 못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창문틀을 닦으려고 커튼을 걷었다. 너무 세게 했는지 그 밑에 있던 램프가 떨어지더니 그만 전구가 깨지고 말았다. 깨진 전구를 치우느라 바쁘다. 청소를 하다가 청소 거리를 만든 셈이다. 관절치료 다녀온 제인할머니에게 얘기했더니 대뜸 “너무 빨리 하느라 그런 거 아니에요?”하신다.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은 안 하고 그런 말부터 하니 서운하다. 하필 공장에서도 같이 옆에서 나사 박기를 하게 되었다. 나사를 박는데 자꾸 튕겨져 나간다. 곁에 있던 제인이 “구멍 뚫을 때 옆으로 하면 안 돼요~ 그거 빨리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요며칠 제인할머니와 함께 하면서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아... 힘들다.    

  

점심 식사 메뉴로 칠면조 다리가 나왔다. 테이블별로 배정된 큰 음식 접시에서 본인이 먹을 만큼만 음식을 덜어먹는다. “지민~ 오늘은 할머니가 덜어줄게요~”하는데, “싫어요. 지민이가 덜어먹을게요~”한다. 지민이는 결국 큰 다리를 집어 들었고, 먹는 속도가 워낙 느리니 남들보다 뒤처진다. 민서는 친구 따라 식사 후 남은 음식물을 수거하러 뛰어나간다. 배가 부른 지 언니를 따라 일어나는 지민이~ 제인할머니가 대뜸 한마디 시작한다. “Ray~ 지민이는 너무 많이 펐어요. 엄마가 떠줘야 해요~” 여태까지 음식 남긴 적 없는 아이인데, 딱 한번 그런다고 이런 얘기를 해야 하나 기분이 안 좋다.    


다시 제인할머니가 조용히 곁에 오더니 얘기하신다.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민서가 숲에 갔다가 포이즌 아이비를 만졌대요. 빨리 가서 박박 문질러줘요. 주방세제가 제일 좋아요. 안 그러면 독이 몸에 퍼져서 붓고 아플 거예요~”

남은 음식물을 챙기던 민서를 잡아끌어 집으로 향한다. 제인할머니한테 질책을 받은 기분이라고 할까? 내 기분이 무지 안 좋다.  

“민서야. 너 똑바로 안 할래?” 화를 낸다.

“엄마. 내가 뭘 어쨌다고 해~ 누군 하고 싶어서 그랬나?”

아이를 씻기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친구들은 장화를 신었고, 자신은 장화가 없어서 다리 한쪽에 포이즌 아이비가 닿은 것이라고 한다. 순간 미안해진다. 내 조바심 때문에 아이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다. 오늘 저녁은 제인할머니한테 해방이다. 부부가 딸을 만나러 저녁에 외출을 한다. 옆집 나나씨 집에 초대를 받아 함께 거실에서 간단히 빵을 먹고 찬송을 불렀다. 공동체 식구들은 정말 노래를 잘한다. 대여섯 살 먹은 꼬맹이들도 화음을 정말 잘 넣어서 한 가족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데도 엄청 아름다운 소리가 들린다. 나나씨네 아이들이 지민이 곁에 앉고 싶어 난리다. 6살 딘도, 8살 에스더도 지민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당사자는 개의치 않는다. 엄마 옆에 앉는다고 한다. 역시 자기 감정이 더 중요한 지민이다. 

“얘들아. 오늘 저녁에 어른들은 모임이 있어~ 나갔다 올게~”

“싫어요. 나도 따라갈 거야~”

“안 돼. 나나아줌마가 내일 설탕물을 먹으러 오는 허밍버드 보여준데~ 우리 꼭 보자~”

“정말로요? 허밍버드 보고 싶어요~ 잘 다녀와요”     


날씨가 추워 중앙 잔디밭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밖에서 모임을 한다.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목사님이 사회를 본다. 여기에서는 목사를 세퍼드나 서번트라고 부르는데, 나이 있는 사람, 젊은 사람 골고루 해서 5~6명 정도가 있다. 목사는 남자지만 아내도 함께 공동체의 리더로 역할을 한단다. 이 분이 대표 목사이고, 공동체의 리더 격이라고 한다. 세례식도 거행했던 분이다. 오늘은 공동체에 아기가 태어난 날이란다. 전화를 연결해서 아이와 산모는 어떤지 상세히 듣고 아빠의 감사인사를 함께 나눈다. 그리고 공동체 전체 식구들이 함께 기도를 한다. 생명의 탄생에 이들이 부여하는 의미가 정말 엄청나다.     


모임이 끝나고 나나와 산책을 하고 와인을 한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떻게 둘이 만났는지 질문하다가 공동체의 연애, 결혼에 대한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여기서는 데이트 개념이 없다고 한다. 만약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면 minister에게 얘기를 해서 비밀리에 둘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리고 서로 마음이 맞으면 engagement를 하면서 둘의 만남을 공식화한다.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남자가 일어나서 여자 이름을 불러 곁으로 오게 한 다음에 서로의 관계를 밝히는 방식이다. 약혼은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약혼 전에는 스킨십, 키스도 하지 않는다. 나나는 남자를 멀리하던 사람이었는데, 남편의 관심으로 관계가 시작되었다. 막상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마음이 잘 맞았단다. 하나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표현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교육으로 흘러간다.  

“저는 여기에 와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때론 많이 놀라요. 아이들이 저렇게 조용한 것을 보고.. 하지만 때로는 좀 더 부모들이 아이에게 다정다감하게 표현하고 안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느껴요~”

“저희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조용히 할 때와 놀 때를 구분하게 해요. 물론 혼내기도 하고 조용히 하라고도 많이 하죠~ 감정표현은 저희가 좀 더 노력해야 할 점이에요~”

“지민이는 평소에는 많이 먹지 않던 아이예요. 그런데 여기서는 아주 많이 먹어요. 때론 그 모습이 슬프기도 해요. 새로운 환경에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겠죠~ 친숙한 환경을 벗어나는 것 자체에서 오는 불안감이요~”

“아이들이 힘든 것은 당연해요. 제가 볼 때는 아주 잘하고 있어요. 저는 성인이 되어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공동체를 옮겼어요. 300명이 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었어요. 언어도 같았는데도요.”

    

나나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오늘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듯하다. 그래서 저녁 늦게 돌아온 제인할머니를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었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가족을 챙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호스트 패밀리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는 제인할머니 덕에 정말 많은 가정을 방문하고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한마디는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괜찮아!!'이다.

    

직장맘의 육아휴직 레시피 – 두 아이와 미국 세 달 살기

‘구독신청, 라이킷, 공유가 작가 Ray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해요!’  







작가의 이전글 배고프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