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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Dec 18. 2019

이런 재미도 필요하지

숲, 기니피그, 생일파티 –Bruderhof 공동체생활13

오늘 아침 식사에는 민서랑 같은 학년 미미가 우리집에 초대되었다. 제인할머니가 민서를 위해 특별히 배려해주신 것 같다. 미미는 노란 장미꽃을 선물로 가지고 왔다. 식탁에 둘러앉아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어릴 적 사진과 뉴욕 여행 사진을 함께 봤다. 민서의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제인할머니의 잔소리가 요즘 너무 싫은 민서지만, 그래도 친구를 초대해주니 신이 나나 보다.


오늘은 수요일, 3학년 이상은 9시에 학교 등교를 하는 날이다. 엄마와 청소를 하는 날인데, 도무지 청소에 관심이 없는 민서~ “민서야 우리 빨리 청소 끝내고 공동묘지에 다녀오자~ 거기 너무 예쁘다고 하던데~”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준 곳이다. 지민이도 학교에서 다녀왔는데 꽃밭이 너무 예쁘다고 한다. 산 쪽에 있다고 해서 방향을 잡았는데 가도 가도 숲이 나와서 잘못 왔나 싶다. 공동묘지 대신에 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산속에서 꼬맹이들의 목소리가 저만치 들린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아장아장 숲으로 걸어가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숲 속 수업 중인가 보다. 유아들은 대부분 자연, 모래, 동물, 그리고 목재 놀잇감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공동체에서는 엄마들도 일할 수 있도록 아기 때부터 공동 육아를 해주고 있다. 아이 양육, 장애인과 노인을 돌보는 것을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해주는 든든한 곳이다.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

“엄마~ 우리 반에 있는 기니피그 보고 가요~”

학교 앞 잔디밭 기니피그 상자 앞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지민이~ 며칠 전 기니가 반에서 안 보이자 난리가 났더랬다. “엄마~ 기니가 없어 어요~ 어떻게 해요?” 기니피그를 꺼내서 풀을 뜯어 먹이고 놀아주다가 아쉽지만 휴식시간을 갖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에게 곧 있을 작별 인사 준비를 하라고 일러주고, 나는 빨래를 하기 시작한다. 며칠간 비가 와서 빨래를 못 했더니 한 가득이다.


오늘 오후에 파티가 있단다. 원래 수요일엔 점심식사가 없고 저녁은 가족끼리 먹는 날인데, 이벤트 때문에 수-목 일정이 바뀌었단다. 점심식사를 하러 갔더니 무대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Happy Birthday Bella”

대표 목사님의 아내 Bella의 생일맞이 이벤트라고 한다. 2시 20분쯤 되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오늘을 위해서 4~5그룹이 연주, 중창, 콩트를 한다. 아주 다채롭고 순간순간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화음 사이로 평화가 느껴진다. 곁에선 티격태격하며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우리 딸들... 평화로운 것 맞지?     


순간 저만치 대표 목사님 옆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우드크러스트에 계시다는 ‘아놀드 크리스토프’ 할아버지이다. 책 사진이랑 거의 똑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메라 가져오는 건데... 특별한 날이라서 그런지 아이스크림을 나눠준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하냐고 질문을 했더니, “Just Fun!!”이란다. ‘그래... 이런 재미도 필요하지~~’ 이벤트가 끝나고 오후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날씨가 화창한 대낮에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라는 배려인 것 같다.


제인&조 부부의 두 아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다. 잔디밭에서 축구도 하고, 그네도 타고, 모래놀이도 하고... 시간이 어찌 가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첫째 아들 데이빗의 딸, 샐리는 지민이보다 1살 어린데 내성적인 성향이다. 큰 눈으로 지민이와 놀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그런데 지민이는 그런 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이다. 그걸 보는 나와 민서가 “샐리랑 좀 놀아라~”해봤자 소용이 없다. 지민이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억지로 하지 못한다. 같이 그네도 태우고 사진도 찍어주며 기분을 맞추어주려니 내가 다 힘들다.  

    

집에 돌아왔는데 조할아버지가 농장에 가신단다.

“지민이도 농장에 갈 거예요~”

“지민아. 언니가 체했는지 머리가 어지럽대. 할아버지랑 같이 갔다 오면 안 되겠니?”

“싫어요. 엄마랑 꼭 같이 갈 거예요~”

결국은 조&제인 부부와 우리 세 명까지 다섯 이서 모두 출발하게 됐다. 오늘은 카메라를 챙겨본다. 아마도 부르더호프 농장에 가는 마지막 날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송아지에게 빗질도 해주고, 소가 젓 짜는 것도 구경하고,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편 것도 보게 되었다. 나는 농장에서 아이들이 말, 소, 고양이, 공작과 노는 것을 찍는다.

     

낮에 놀아서 그런지 오늘도 야간작업이 있단다. sand water라는 아이들 모래놀이 탁자 자리를 조립하는 일을 했다. 내 옆에 지민이의 담임선생님 세라가 함께 작업을 했다. 지민이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심에는 세라선생님이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선생님의 존재가 가장 크게 다가오나 보다. 46살 독신인 세라는 참 상냥하다.

“세라선생님~ 지민이가 선생님이 좋대요. 저희 가족은 금요일에 떠나요. 많이 아쉬워요~”

“Ray~ 지민이는 학교에서 거의 얘기를 하지 않지만, 모든 일에 적극적이에요. 지민이가 그리울 거예요. 다음에 다시 꼭 방문해줘요.”     


8시가 넘어 작업을 끝내고 와서 제인할머니가 갑자기 간단하게 스낵을 먹자고 한다. 둘째 아들 부부, 그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고등학생 한 명이 방문했다. 과자, 빵, 치즈 등을 내놓으셔서 나도 김병장 비빔밥 한 개를 선보인다. 달콤한 와인도 한잔 하면서 나의 일정에 대해, 서로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며칠 전 중국에서 물난리가 나서 400명이 넘는 노인들이 죽었어요.” “배 사고가 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없나요?” 부르더호프에서 머나먼 한국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종종 질문을 받고는 했다.    

   

공동체에서는 전 세계의 소식에 대해 공유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는 함께 공동 기도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볼 수는 없지만, 뉴욕타임스나 잡지 같은 것을 통해서 세상과 교류를 하고 있다. TV, 게임 대신에 책, 가족 간의 친교가 있는 부르더호프의 생활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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