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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Dec 20. 2019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아

인사, 공동묘지, 바비큐 -Bruderhof 공동체생활14

조할아버지가 키우고 있는 닭들이 이제 막 알을 낳기 시작했단다. 제인할머니가 방금 낳은 신선한 계란을 가져오셔서 삶아 주신다. 아침부터 신이 나 있는 지민이와 제인할머니 사이에 감도는 묘한 아슬아슬함~ 혼내는 표정을 하다가도 아랑곳하지 않는 지민이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리는 제인 할머니, 제인할머니의 엄격함이 통하지 않는 지민이^^ 이제는 어딘지 모르게 둘이 잘 어울린다. “지민아~ 너 제인할머니랑 좀 더 있다가 올래?” 장난기 섞인 말까지 해 본다.     


오늘은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 아이들과 호스트 패밀리 사이에서 항상 긴장하고, 무언가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밤에 추워서 파카까지 껴입고 웅크리고 잠을 자다가 알람 소리에 침대에서 떨어지기까지 하였다. 2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날이 다가왔다. 오늘 점심은 식사 대신 전체 미팅을 하는 날이라고 한다. 조할아버지께 미리 작별인사를 전할 시간을 요청했더니 사회자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 어젯밤 준비한 인사말을 낭독하기 시작한다.       


“이번 기회는 제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입니다. 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사회복지사로서 어떻게 일할 지를 찾기 위해 저는 이곳에  왔습니다. 다른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식구들의 사랑과 배려 덕분애 이 도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10년 전부터 이 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 참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아마도 신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감사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잔디, 바람, 하늘, 일몰, 연못, 은행나무, 꽃, 새, 새들의 노래, 모래, 공작, 기니피그, 소, 고양이, 딸기, 말, 닭, 노래와 기도 소리, 그리고 반짝이는  창문과 바닥들... 무엇보다도 공동체 식구들 모두에게 고맙습니다.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모두가 기뻐해 주시고 친절히 답해주셨습니다. 모두들 저의 선생이셨습니다. 1월부터 연락을 했던 루크씨와 박선생님께 고맙습니다. 특별히 제 호스트 패밀리 조&제인에게 감사 인사드립니다.

공동체 식구들의 환대, 초대, 웃음, 노래, 조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번 경험은 제 가족이 3개월 여름 동안 이국에서 지낼 여정뿐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바탕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는 남편과 함께 방문하겠습니다. 또 뵈어요."   


아이들과 다 같이 일어서서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모두 박수를 보내준다.

“Ray와 민서, 지민이 앞으로 남은 일정 잘 마치기를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곳에서의 경험을 가족, 친구들과 잘 나누어 주세요”

조할아버지도 한 말씀해 주신다.

“Ray의 감사인사 고마웠어요. 어떤 것을 전하고 싶었는지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오후 일정이 남았다. 식당 청소 후 여자화장실 대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벽과 바닥을 박박 문지르기 시작한다. 오돌토돌한 벽은 브러시로 빡빡 문지르고, 부드러운 벽은 걸레로 문질렀다. 이러다가 페인트가 벗겨지면 어쩌나 걱정되지만... 하라는 대로 빡빡 문질러 본다. 일회용 장갑을 꼈는데 하도 힘을 줘서 그런지 어느새 손가락이 다 나와 버렸다. 18살, 22살 청년들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는다. 무릎을 꿇고 장갑도 안 끼고 몇 시간 동안 화장실 청소를 하는 그들을 보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4시쯤 간식을 먹었는데 미샤가 공동묘지에 가자고 한다. 얼마 전에 길을 잃어버린 얘기를 했더니 데리고 가려나 보다. 공동묘지는 농장과 반대방향에 있었다. 가는 길에 방학을 맞이한 고등학생들이 어른들의 일을 도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든든함이 느껴진다. 아주 조용한 길을 따라가니 빗장 문이 보인다. 20~30여분이 묻혀 있는 묘지라고 한다. 무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심어져 있고, 이름이 쓰여 있다. 미샤가 책자를 꺼내와서 묘지에 묻힌 한 명 한 명 소개해 준다. 사진과 출생연도, 사망연도, 가족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떠난 갓난아기의 무덤도 있었다. 공동체에서는 이 묘지에 와서 조상들의 삶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공동체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또 감동을 받는다.    

  

저녁식사는 박선생님의 초대를 받았다. 낮에 들에서 꺾어온 꽃을 꽃병에 담고, 한국에서 가져온 오징어포를 챙겨 들었다.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날에는 주재료를 공동체 식당에서 챙겨준다고 한다. 햄버거가 나왔는지 집집마다 마당에서 장작불을 때서 고기 굽는 모습이 보인다. 오랜만에 나물, 깻잎절임, 된장찌개, 김치, 김까지 맛볼 수 있었다. 상추에 쌈을 싸서 쌈장까지 곁들여 야외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이것저것 챙겨 주시고, 물어봐 주신다.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두 아이들이 신이 났다. 지민이는 엄마를 고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모. 어젯밤에는 엄마가 저희를 놔두고 야간작업을 하러 갔어요. 언니가 아팠는데도 갔다니까요? 도우미를 엄마로 바꾸어달라고 했는데 말 안 들어줬어요.”

지민이의 톡톡 튀는 행동과 거침없는 말에 웃어주시는 박선생님 가족~  

박선생님께서 마음을 표현해주신다.

“기왕이면 공동체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에서야 초대를 했어요. 저희는 10년 전에 부르더호프를 처음 방문했어요. 열흘만에 이 곳의 삶이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 구나를 느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천국은 아니에요.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하하하”     


만날 때마다 마음으로 인사로 챙겨주시던 그 모습에서 묵직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나도 공동체를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 박선생님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만나려고 노력했었다. 오래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도 존재만으로도 의지가 되었던 분들~ 따뜻한 눈길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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