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잠을 뒤척인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짐을 싸서 낯선 곳으로 이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큰가 보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짐을 마저 정리했다. 아이들도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깨워서 옷을 입혔다. 아침식사 시간에 조할아버지는 특별히 더 따뜻한 기도를 해주시고, 우리가 아는 제일 간단한 노래를 불러주신다.
“Good morning to you~ Good morning to you~ Hello, Hello, Good morning to you~~”
아이들도 함께 따라 하며 흥얼거린다. 토스트와 계란 프라이, 요거트로 부르더호프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한다.
두 아이는 2주간을 함께 한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학교에 갔다. 나도 침대 시트를 걷어내고 방을 쓸고 마무리를 해본다. 박선생님 아내분이 일 나가기 전에 잠깐 들르셨다. 나를 꼬옥 안아주신다. 에구... 뭉클하다. 조금 있으니 옆 라인에 사는 할머니 두 분이 오셔서 인사를 해주신다. 남은 일정 잘 보내라며 “All the best”라고 하신다. 삶을 오래 살아온 그분들의 연륜이, 사람을 잔잔히 바라보는 표정이 내 마음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앨리스 할머니께서도 직접 작별인사를 하러 오셨다. 할머니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아~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거구나~’
8시 30분 짐을 들고 우편함이 있는 건물로 갔다. 아이들이 메이플릿지를 생각하며 그린 그림을 게시판에 걸어두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 값으로 약간의 기부도 해 본다. 이곳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다. 조&제인 부부가 함께 차로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한다. 차가 출발하기 전, 조할아버지가 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한다. 앞으로 있을 우리의 여행과 경험에 대해 축복해주시고, 건강하게 잘 마치라고 하신다. 잔잔한 따뜻함이 느껴진다.
차가 메이플릿지를 떠나려는데 텃밭들이 보인다. 민서가 한마디 한다.
“엄마. 내가 가꾼 텃밭이에요. 저기 옥수수랑...”
한쪽에는 민서네 반 친구들이 풀을 뽑고 있고, 다른 한쪽에는 지민이네반 친구들이 텃밭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안녕~ 잘 가~~”
모두들 손을 흔들어준다. 하늘도 파랗고 날씨도 너무 따뜻하다. 아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스튜어트라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첫날 조할아버지와 갔던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초코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한다.
조&제인 부부와 포켑시역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었다. 조할아버지는 기차 안까지 짐을 가져다주시고, 제인할머니는 따뜻하게 포옹을 해 주신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2주간가 드디어 끝났다. 뉴욕으로 향하는 Metro North Railroad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떠나기엔 정말 완벽한 날씨이다. 신선한 공기, 하늘에 펼쳐진 아름다운 구름 모양에 카메라 셔터가 절로 눌러진다.
뉴욕에 도착하니 비가 온다. 그랜드샌트럴역에서 택시를 타고 볼트버스 정류장으로 가야 한다. 줄을 선지 30분이 지났는데도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기다리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뉴욕이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여자는 상점 앞에 서 있었는데 어느 순간 택시를 타겠다며 고집을 부린다. 기다려서 차례가 된 사람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본인 차례라고 한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경찰이 다가오니 그때서야 고집부리던 여자가 물러난다.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몸을 보며 민서가 한마디 한다.
“엄마, 여기 사람들은 극과 극이에요. 아주 아주 뚱뚱한 사람이거나, 아주 날씬한 사람밖에 안 보여요~”
버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경찰에게 길을 물었더니 걸어가란다.
지민이는 “엄마~ 포기하면 안 돼요~”한다.
“지민아. 이건 포기가 아니야. 어떤 상황에 있을 때 하나만 고집하면 안 돼. 지금은 기다리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아서 결정을 바꾸는 거야~”
배낭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보슬비가 내리는 뉴욕 번화가를 뛰기 시작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 차를 놓칠까 봐 애타는 마음... '화장실에 가고 싶다, 배가 고프다...' 민원을 해결하느라 샌드위치 카페테리아에 잠깐 들렀다. 물어물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얼마나 안도감이 큰지, 뉴욕이라는 도시 정말 만만치 않은 곳이구나 싶다.
북쪽에 있는 위스콘신으로 떠나기 전에 뉴욕 인근 볼티모어에서 유학 중인 후배네 집에 들르기로 했다. 버스에서 와이파이가 잡혀서 “우리 버스 잘 탔어~”라는 메시지를 후배에게 남겼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차가 꽤 막힌다. 차 안에서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바쁘다. 우리를 마중 나온 형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1시간이나 기다렸단다.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는 선이~ 불고기, 깻잎, 감자조림, 된장국, 김, 오뎅볶음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지민이가 묻는다.
“엄마. 밥 먹기 전에 노래랑 기도는 안 하나요?”
2주 동안 식사 때마다 했던 과정들에 꽤나 익숙해졌나 보다.
상추에 불고기를 싸 먹으면서 지민이가 또 한마디 한다.
“아~ 토끼 보고 싶다~”
“뭐.. 토끼? 아까 길에서 본?”
“아니~~ 토끼 할머니가 보고 싶다구요~”
평소 당근이나 야채를 좋아하는 제인할머니를 토끼라고 놀리던 지민이... 나름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2주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두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