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더호프 식구들이 생일에 남다른 의미를 둔 것처럼 이곳에 사는 장애인들에게도 생일은 매일의 이벤트이다. 샐리는 사람들을 만나기만 하면 반복하는 말이 있다. “션 생일이 일요일이고, Ray 생일이 화요일, 아이잭 생일은 수요일이에요” 그 얘기를 하도 들으니 사람들은 세 명의 생일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마침 오늘이 내 생일이라 아침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Happy Birthday to Ray” 한다. 샐리는 만날 때마다 축하를 해주는데, 오늘 하루만 몇 번이나 축하를 받았는지 민망할 지경이다.
아이들 키우며 직장 생활하느라 바빴던 삼십 대 때, 내가 그토록 바라던 나이는 마흔이다. 작년에 마흔이 되긴 했으나, 막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지고 평화로워질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나를 확인했다고나 할까? 만 40을 미국에서 맞이하니 감회가 새롭다. 특별한 의미를 두었으니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처음에는 우리 집 식구들에게 맛난 저녁 식사를 대접하자고 했는데, 자꾸 일이 커져간다. 고마운 사람이 한 명 한 명 늘어나서 조안, 첼시, 일리네 가족까지 초대했다.
엄마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생일이라고 하니 두 아이들이 챙겨준다.
“엄마~ 오늘은 생일이니까 손에 물방울 하나도 묻히지 마세요. 제가 다 할게요.”
“와~ 민서가? 정말~ 기대되는데”
“엄마는 시키기만 하세요. 간이나 좀 봐주시고, 아이패드로 토지를 읽어요.”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민서는 미역국을 끓이고, 나는 다른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오늘의 메뉴는 소갈비찜, 잡채, 컬리플라워 볶음, 부추무침, 호박전, 오이김치이다. 일요일에 고기도 재어놓고, 오이김치도 미리 해 났다. 초대 손님이 늘어나서 갈비찜 양이 걱정이다. 고기를 추가로 준비해서 매운 갈비찜을 만들어봤다. 야채를 손질하고 재료를 자르다 보니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간다.
음식 하느라 바쁜데 지민이가 통 보이지 않는다.
“지민아. 너는 뭐하니? 엄마 좀 도와주지 그러니~”
“엄마. 나 지금 바빠요. 엄마 도와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 뭐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주는 제 생일 선물은 바로 저 거예요. 내가 거실 정리 다하고, 바닥도 다 쓸었어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파티를 할거잖아요. 깨끗해야죠~”
“와! 우리 지민이 대단한데? 정말 완전히 깨끗해졌어. 고마워~~”
우리 집에서 제일 고생하는 윌이 우유를 짜고 돌아오면 7시가 된다. 그 시간에 맞추어서 저녁식사 시간을 잡으니 평소보다 늦은 저녁식사에 다들 배가 고픈 모양이다. 앨리네는 둘째가 아파서 결국 오지 못한다고 해서 민서 편에 음식을 챙겨서 보냈다. 일리네 식구들은 일찌감치 와서 아이들이 나랑 같이 호박전을 부쳤다. 오늘의 주인공이니 식사할 때 가운데 자리에 앉으라고 난리다. 식사기도를 할 때 지민이가 “Happy Birthday ~~”로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내가 알리고 준비하는 생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니 다른 느낌이다.
뒷정리를 할 때는 주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특별한 지시까지 내려졌다.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포도주와 맥주를 미리 준비해 두었다. 오랜만에 술을 한잔하며 조안이 궁금해하는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 정도면 아주 멋진 생일이다. 내 생일 축하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만난 자넷은 “생일이 어제였어요?”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묻는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생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봐준다.
공동식사를 하는 시간, 아이잭의 세 번째 생일과 나의 마흔 번째 생일 파티 케익이 들어온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깜짝 놀랐다. 케익에 초가 모두 7개가 꽂혀 있다. 내 것이 4개, 아이잭 것이 3개~ 내가 먼저 4개 촛불을 끄고, 아이잭이 나머지 초를 껐다. 그리고 캐서린이 북 아메리카 보랏빛 자수정과 축하 카드까지 선물해 주었다. 예전에 내가 마흔 번째 생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잊지 않았나 보다. 지금까지 내 생일 중에 가장 화려한 생일을 보낸 것 같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글을 쓰며 찬찬히 생각해 본다. 내가 너무 과하게 나의 마흔을 받아들이나? 하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안정되고, 확신을 가지며 살 수 있으리라 간절히 고대했으니까...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도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자랐고, 내 경력이 쌓였다. 그리고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앞으로도 내 삶은 완성형이 아니라,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으로 엮어질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마흔’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봤다.
‘불혹,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하여 시비 분변을 할 수 있고, 감정 또한 적절하게 절제할 수 있는 나이, 쉽게 미혹되지 않는다.’
정말 많은 뜻이 담겨 있다. 이제는 무엇을 기대하며 나의 40대를 보내게 될까?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똑같은 일상을 만날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먼 훗날에 대한 바램으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삶으로 만나져야 한다는 묵직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