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로 접어드니 휴가철 분위기가 물씬 난다. 여름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캐서린네도 1주일간 가족 휴가를 떠났고, 앨리네도 시댁 식구들 모임에 갔다. 우리 셋도 조안의 갑작 제안으로 여름휴가를 가게 되었다. ‘우리야 땡큐지 머~~ 게다가 캠핑이라니 낭만적이잖아!’ 음식부터 텐트, 슬리핑백, 랜턴, 아이스박스 쿨러를 챙기고, 쇼핑을 가고... 며칠간 준비하느라 바빴다. 아이들도 얼마나 설레는지, 출발하기 전날 밤에는 잠이 안 온단다.
금요일 아침 조안과 쌍둥이들, 나와 두 딸들, 그리고 조안네 강아지 오티스까지 모두 일곱이서 봉고차에 올라탔다. 아이들은 모두 오티스 옆에 앉으려고 난리가 났다. 8살 쌍둥이들은 시작부터 소란스럽기 그지 않다. 배고프다고 난리를 쳐서 엄마가 샌드위치를 사줬더니 한 입 먹고 안 먹는단다. 팝콘을 가지고 서로 쟁탈전을 벌이더니 심심하다고 떼를 쓴다. 정신없이 북쪽으로 3시간을 달려 미네소타에 있는 Gooseberry Fall Park에 도착했다. 미국의 5대 호수 중 하나라고 한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렀더니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는데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징징대기 시작한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캠핑장에서 무엇인가를 먹기 위해서는 불을 피워야 한다. 쌍둥이들은 갑자기 캠프파이어를 하자는 등 무조건 나무를 쑤셔대고 부채질을 해댄다. 하필이면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다 장작을 피우니 온 몸이 익어버릴 것 같다. 후라이팬을 깜빡하고 와서 그릴 위에 호일을 깔고 또띠아 피자를 만들어서 점심을 대충 때웠다. 오후에는 가볍게 폭포 구경을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물만 있으면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어서 폭포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한바탕 수영을 하고 나온 아이들은 또 배가 고프다고 성화다.
우리 아이들은 먹는 것을 가리지도 않고 잘 먹는데, 조안네 쌍둥이들은 정말 까칠하다. 내 성질을 얼마나 돋우는지 밥을 먹을 때마다 화를 참느라 애를 먹었다.
“애들아. 어제 소갈비를 재워 왔어. 이거 먹어봐.”
“싫어요. 저 고기 안 좋아해요.”
“한 입만 먹어봐. 맛있어~”
“음. 괜찮은데요? 많이 주세요.”
“여기 있어. 이거 다 먹고 더 먹고 싶으면 구워줄게~”
“음. 저 이제 먹기 싫어졌어요. 엄마~ 나 안 먹을래요!”
“그럼. 머 먹을 거니?”
“핫도그요. 소시지 사 왔잖아요?”
“그래? 너희 엄마는 참 친절하구나... 나 같으면 너희들 굶겼을 텐데...”
결국 쌍둥이들은 저녁을 먹고 나서 불장난을 심하게 하다가 엄마의 화를 좌초했다. 하루 종일 인내심을 발휘했던 조안의 강제 취침 결정에 두 녀석은 울음으로 하루를 마쳐야 했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 셋도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하고 일기 쓰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밤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정리하는 습관이 생겨서 너무 흐뭇하다.
“얘들아. 우리 잠자기 전에 캠프파이어하면서 밤하늘을같이 구경할까?”
“네. 엄마~ 조금만 보고 자요.”
“어머. 애들아. 저기 반딧불이가 있어. 어두우니까 별이 많이 보인다.”
“맞아요. 완전 보름달이에요. 근데 저기 별들은 막 움직이네요? 뭐죠?”
“아하하.. 비행기인가? 산속에 있으니 더 잘 보이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캠핑 채비를 하느라 피곤했는지 금세 아이들이 잠들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텐트 밖으로 나오니 조안이 모닥불 앞에 앉아 있다. 첫날이라 그런지 둘 다 기분이 센티해진다. 집에서 가져온 위스키를 나누어 마시며 분위기를 잡아본다.
“Ray~ 요즘 저는 법원에 자주 출석을 해요. 아이들 아빠가 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거든요. 아이들이 그 집에 가서 배가 고프다고 하면, 제가 굶겼다고 하고... 그래서 아이들이 먹는 것에 대해서 제가 쩔쩔매는 편이에요..............”
“어머. 조안~ 미안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들을 혼냈는데. 괜히 제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았나 몰라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전남편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저를 적대시해요. 그 사람은 장애인들이랑 생활하는 것을 아주 위험한 일이라고 보고, 홈스테드를 위험한 곳이라고 얘기해요. 아이들 데리고 휴가도 안 간다고 하고요.”
“아. 그래서 조안네 집에는 장애인이 없는 거군요. 여기서는 서로의 힘든 점들을 정말 많이 보듬어 주나 봐요.”
“맞아요. 저는 지금껏 이런 곳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어요. 정말 힘들 때 제가 나쁜 결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홈스테드가 힘을 낼 수 있도록 함께 해 줬어요. 그것이 지금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죠.”
조안이 갑자기 왜 캠핑을 같이 가자고 했는지, 평소 다른 스탭들보다 더 자유롭게 생활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조안이 이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바래본다.
다음날 아침식사는 모닥불에 구운 베이컨이다. 쌍둥이 형제는 처음에 4개씩 먹겠다고 장담하더니만 결국 한 개 밖에 안 먹었다. 덕분에 우리 두 딸들이 남은 베이컨으로 포식을 했다. 오늘은 어제 봤던 폭포를 지나 호수로 이어지는 강줄기를 따라 산책을 하기로 했다. 물만 보이면 가슴이 뛰는 아이들은 오티스까지강제 연행을 했다. 결국 물을 무서워하는 불쌍한 오티스는 민서를 할퀴고 도망치고 말았다. 큰 강 입구까지 나갔는데 갑작스러운 흡혈 파리떼의 출현으로 도망치듯 숲으로 되돌아오고 왔다. 저녁에 불놀이하자고 꼬셨더니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잔 나뭇가지를 엄청 많이 주어 주었다. 준비해 간 간식을 챙겨 먹고, 공던지기 놀이를 하다가 캠핑장으로 안전하게 복귀했다.
점심 메뉴는 김밥이다. 정말 고생해서 김밥을 싸줬더니 이 쌍둥이들은 또 불평을 해대기 시작한다.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우리 두 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샤워를 하고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 스케치북, 색연필을 주었더니 겨우 평화의 1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오랫동안 두 엄마가 그늘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는 것이 기적이다. 파스타를 만들어서 이른 저녁을 먹고, 노을을 보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가도 가도 숲이 나오고 탁 트인 하늘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꽤 긴 도로를 달려서 한 무더기 돌무덤을 발견하고, 그 위에서 형형색색의 노을을 만났다.
‘역시 삶은 참 다채롭구나.’를 느끼는 순간이다.
다시 모닥불 앞에 앉아 아이들과 밤하늘을 바라보며 캠핑을 마무리해 본다. 숲 속 안 캠핑장이 너무 조용한 나머지 옆 텐트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마저 소음으로 느껴진다.
이런 고요함, 저 달빛의 의연함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다. 미쿡에서 캠핑도 오다니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