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의 윤리

미다스의 손(3-4, 끝) 복구를 멈추고 회복을 배우는 윤리

by 김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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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소개
이 글은 ‘미다스의 손’ 3부 연재 가운데 네 번째이자 마지막 글입니다. 이 연재는 산불 이후 숲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복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개입이 숲의 회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태학과 지구사, 정책과 윤리의 관점에서 살펴보려 했습니다.
1편에서는 숲의 자기조직화가 지구사의 장면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숲은 중앙의 설계 없이도 형성되고, 교란 이후에도 스스로 관계망을 다시 엮습니다.
2편에서는 숲의 기반이 되는 토양을 이야기했습니다. 숲의 회복은 지표가 아니라 토양 속의 미생물, 균근 네트워크, 종자은행 같은 보이지 않는 기반 위에서 시작됩니다.
3편에서는 복구 정책이 숲의 이질성을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 글에서는 질문을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옮겨 보려 합니다. 숲을 향한 개입의 윤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행정을 상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개입이라는 문제

개입은 언제나 폭력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개입이 필요하다’는 말을 너무 쉽게 꺼내는 순간, 그것이 다시 일반 원칙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산불 이후 사면 붕괴 위험이 커진 구간, 하천 침식이 심각해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구간이 있다면 최소한의 안전 확보 조치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상당수는 애초의 도로 개설, 산지 개발, 배수 구조 변경 등 인간의 개입이 중첩된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외래 침입종(invasive species) 역시 대부분 인간의 이동과 교역, 조경 정책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해야 할 것은 ‘필요한 개입’이 아니라 ‘불가피한 대응’에 가깝습니다.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최소 조치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복기가 뒤따라야 합니다. 왜 이런 취약성이 만들어졌는지, 어떤 개발 행위와 제도적 판단이 위험을 증폭시켰는지, 다시는 같은 조건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묻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예외적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대응을 일반 원칙으로 승격시키는 순간, 숲은 또 한 번 전면적 정리와 전면적 조림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속도의 환상

속도의 환상은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산불 이후 몇 달이 지나면 자연갱신(natural regeneration)은 이미 시작됩니다. 초본이 올라오고 관목이 자라며 토양은 다시 덮입니다.

그러나 이 느린 재배열은 행정의 시간표와 충돌합니다. 행정은 연 단위로 평가되고 정책은 단기 성과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숲은 ‘빨리’ 심어야 하고 ‘빨리’ 정돈돼야 합니다.

그러나 빠름은 회복과 다릅니다. 생태계의 회복은 종의 교체와 상호작용의 축적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속도는 눈에 띄지만 관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통제의 환상

통제의 환상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제도와 계획을 통해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복잡계 이론이 보여주듯 생태계는 비선형적으로 반응합니다. 작은 변화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고, 단일수종 조림은 병해충 확산과 기후 스트레스에 취약한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통제는 안전을 약속하지만 복잡성은 안정성을 제공합니다. 이 둘은 다릅니다.


행정이라는 구조

그렇다면 문제는 행정 그 자체일까요. 행정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인가요.

막스 베버(Max Weber)가 말한 관료제(bureaucracy)는 규칙과 계산을 통해 세계를 합리화합니다. 이는 효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단순화합니다. 제임스 C. 스콧(James C. Scott)이 지적했듯 국가는 복잡한 현실을 ‘읽을 수 있게(legible)’ 만들려는 경향을 갖습니다.

산불 이후 숲의 복잡한 회복 과정을 표준화된 식재 간격과 본수, 사업 실적으로 번역하는 일은 그런 가독성의 논리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폭력은 의도라기보다 구조에서 발생합니다.

그러나 행정이 곧 폭력이라는 결론으로 가는 것 역시 또 다른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거버넌스라는 가능성

실제로 해외에서는 행정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거버넌스 실험이 이어져 왔습니다.

독일 북해 연안의 바덴해(Wadden Sea) 갯벌 복원 사례는 그 한 예입니다. 1980년대 이후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는 바덴해를 공동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과학자, 어민 단체, 시민 환경단체가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를 구축했습니다. 제방과 간척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자연 역동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조정되었고, 복원 과정에서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의 감시와 참여가 제도화되었습니다.

독일의 바이에른 숲 국립공원(Nationalpark Bayerischer Wald)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폭풍 피해 이후 전면적 정리를 요구하는 지역 여론과 달리 공원 관리 당국은 과학자와 시민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자연 천이에 맡기는 구역을 확대했습니다. 갈등은 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갱신이 실제로 숲을 재조직하는 장면이 확인되었고 정책은 점차 수정되었습니다.

이 사례들은 행정이 완전히 물러나지 않더라도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를 통해 단순화의 관성을 늦출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다스의 손을 씻을 때

우리는 산불 이후 무엇을 복구하려 하는가요. 나무인가요, 풍경인가요, 아니면 우리의 안도감인가요. 숲은 이미 다른 경로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교란은 오류가 아니라 재배열의 시간이고 토양은 그 시간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하나입니다. 그 재구성을 방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무엇이든 해야 안심합니다. 표준화된 식재와 전면적 정리는 통제의 감각을 줍니다. 숫자는 쌓이고 표면은 반듯해집니다. 그러나 반듯함은 회복이 아닙니다. 회복은 관계가 다시 얽히는 일이고 관계는 속도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미다스의 손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능력을 얻었지만 결국 먹을 수 있는 세계를 잃었습니다. 우리가 숲을 본수와 면적, 집행률이라는 황금으로 바꾸는 순간 숲의 다층적 관계망은 식탁에서 내려갑니다. 황금은 반짝이지만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선택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우리는 더 정교하게 만질 것인가요, 아니면 잠시 손을 씻을 것인가요. 불가피한 대응이 필요할 때조차 그 조건을 되짚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를 바꾸는 일까지 포함할 것인가요.

숲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장입니다. 관계는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구해야 할 것은 숲이 아니라 숲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일지 모릅니다. 황금의 눈을 거두고 흙의 시간을 견디는 눈으로 돌아갈 때 비로소 회복은 공정이 아니라 윤리가 됩니다.


용어정리

외래 침입종(外來 侵入種, invasive species)
원래 그 지역에 없던 종이 인간의 이동·교역 등을 통해 유입된 뒤 빠르게 확산하며 토착 생태계를 교란하는 생물.

자연갱신(natural regeneration)
인공 식재 없이 종자, 뿌리, 맹아 등 자연적 과정으로 숲이 다시 형성되는 과정.

천이(遷移, ecological succession)
교란 이후 식생이 시간에 따라 단계적으로 변화하며 다른 생물군집으로 재편되는 과정.

단일수종 조림(monoculture plantation)
한 가지 수종만 집중적으로 심어 만든 숲. 관리와 생산성은 높일 수 있지만 병해충과 기후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 있다.

복잡계(complex system)
많은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며 전체의 행동이 단순한 합으로 설명되지 않는 체계. 생태계는 대표적인 복잡계로 알려져 있다.

비선형 반응(non-linear response)
원인과 결과가 비례하지 않는 반응. 작은 변화가 큰 영향을 낳거나 예상과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관료제(官僚制, bureaucracy)
막스 베버가 분석한 근대 행정 체계로, 규칙·절차·계산을 통해 조직을 운영하는 제도적 구조.

가독성(可讀性, legibility)
제임스 C. 스콧이 사용한 개념으로, 국가가 복잡한 사회 현실을 행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단순하고 측정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거버넌스(governance)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지역 공동체, 전문가 집단 등이 함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다층적 관리 방식.

자연복원(natürliche Entwicklung)
독일 국립공원 정책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생태계가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 천이 과정에 따라 스스로 변화하도록 두는 관리 원칙.

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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